본 문 다니엘 3장 1~30절
읽을말씀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시더라도 왕이시여, 우리는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않고 왕께서 세우신 금 형상에게 경배하지도 않을 줄 아십시오”(다니엘 3장 18절).
다니엘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6장은 다니엘과 세 친구의 “이야기”이고, 7~12장은 네 가지 “묵시적 환상”을 담고 있습니다. 이들 이야기와 환상을 통해, 다니엘서가 전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입니다. 그것은 바로, 악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이 모든 것의 주관자가 되시며, 최후의 승리자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다니엘의 세 친구의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느부갓네살은 자신의 제국을 위협하는 실체를 보았습니다(참고. 2장). 언젠가 무너질지 모르는 제국에 대한 불안감에, 그는 극단적인 국가숭배 정책을 도입했습니다. 바로 거대한 금신상을 세워, 온 백성으로 하여금 그 앞에 경배하게 하는 일입니다. 금신상에게 절하는 행위는, “신들에게 하는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왕에게 경의를 표하는 의식이었습니다. 곧, 금신상에게 절하는 것은 “(이방)신과 왕의 주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왕의 명령을 따를 때,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이와 같은 왕의 명령을 거부하였습니다. 물론, 세 친구는 자신들이 처한 상황의 현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바벨론의 침공으로 예루살렘이 멸망하였고, 하나님의 백성은 바벨론으로 끌려가 그들 가운데 살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이 끝날 때까지) 바벨론에서 사는 것이 (예레미야와 같은 선지자를 통해 선포된)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다니엘을 비롯하여 세 친구는 바벨론에 살면서 갈대아인의 언어와 문화를 배웠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지혜와 지식으로, 바벨론의 왕과 나라를 섬겼습니다. 세 친구는 그들이 처한 현실, 곧 느부갓네살 왕이 바벨론을 통치한다는 것을 인정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은 느부갓네살 왕이 하나님을 대신하여 경배를 받을 만한 신적인 존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있어 자신들이 처한 모든 상황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셨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며,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만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유일한 분이심을 믿었습니다.
이들의 이러한 행위는 즉시 느부갓네살 왕에게 알려졌습니다. 왕은 분노하여 세 친구를 불러들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세 친구는 금신상에게 절하기를 거절하면서, 자신들을 구원해 주실 하나님에 대한 굳은 믿음을 드러냈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만약 하나님이 자신들을 지금 구원해 주시지 않는다고 해도” 금신상에게 절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세 친구는 하나님이 원하신다면, (얼마든지) 자신들을 구원하실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만약 하나님이 그분의 뜻을 따라 자신들을 구원하지 않으신다고 해도,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을 신앙했습니다. 세 친구는 죽음을 이기는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믿은 것입니다.
결국, 세 친구는 맹렬히 불타는 용광로에 던져졌습니다. 그들이 타는 동안 느부갓네살 왕은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내, 그는 용광로 속에 세 사람이 아니라 “네 사람”이 결박이 풀린 채로 불 가운데로 다니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특별히 네 번째 사람은 신들의 아들과도 같았습니다.)
마침내 느부갓네살은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이 오직 유일하신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다니엘서를 통해, 우리는 삶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아래 있으며, 이 땅 가운데 가장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다스리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러한 하나님에 대한 확신과 신뢰는, 우리로 하여금 미래에 대한 소망을 줄 뿐만 아니라, 현재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안내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다니엘과 친구들이 처했던 것 같은 극심한 박해를 받지는 않습니다(물론, 세계 곳곳에는 여전히 이와 같은 박해를 받는 성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에 못지않게 하나님을 적대시하거나, 욕심과 탐욕을 따르는 세상의 문화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달콤한 사탕과 같은 세상의 유혹은 우리의 영혼에 훨씬 치명적일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통치를 믿지 못한다면, 결국 우리는 교회와 세상을 나누게 됩니다. 교회에서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지만, 세상에서는 세상의 가치를 따라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가장 작은 부분일지라 하더라도, 모든 것이 하나님의 다스리심 아래 있습니다. 가정뿐만 아니라, 유치원, 학교, 직장에 이르기까지, 또한 교회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교육, 예술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내는 모든 삶의 영역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왕 되심을 드러내야 함이 마땅합니다. 말씀을 따라 삶의 기준을 세우고, 그것을 최고의 가치로 삼아 우리의 말과 행동으로 드러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상황이 (다니엘의 세 친구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가 바라고 원하던 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나의 일터가 바뀌고, 학교가 바뀌고, 나라가 바뀌지 않습니다. 심지어 때로는 죄와 악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눈으로 볼 때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나 상황조차, “하나님께서 그것을 허락하셨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때로는 악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하나님께서 세상의 죄와 악에 대하여 방관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미 우리 주 예수님께서 그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늘에 오르셔서 지금도 온 세상을 통치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은 죽음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음조차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마지막 날, 하나님은 모든 악을 멸절하시고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실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의 최후 승리를 선포하실 것입니다. 이와 같은 소망 아래, 오늘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귀한 한 날을 살아내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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