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9:28-42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 왜 그렇게 소중하고 복된 것인지를 잘 알아야 합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 나 같은 죄인들을 위하여, 죄인들을 대신하여 죽으신 죽음이라는 것을 믿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과,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것과, 장사되신 사건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영광(28-30절)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에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먼저 제 육시(정오)부터 구시(오후 3시)까지 태양이 빛을 잃고 하늘이 어두워져서 온 세상이 캄캄하게 되었습니다(눅 23:44). 이는 아모스 8:9의 말씀을 응하게 하시는 일이었습니다. 또한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부터 찢어졌습니다(눅 23:45). 이는 그리스도의 육체가 성전의 휘장처럼 찢겨져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것을 제하여 주셨음을 말해줍니다(히 10:19).
또한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가상칠언이라고 불리는 일곱 말씀을 통해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을 생각하시며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으로서 끝까지 죄인들을 위하여 기도하신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함께 십자가에 달린 강도에게 구원을 선언해 주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 세 번째로는 모친 마리아에게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라고 하시고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는 “보라 네 어머니라”(요 19:26-27)고 하셨습니다. 이는 자신이 “여자의 후손”(창 3:15)이신 것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시는 말씀인 동시에, 모친에 대한 사랑과 위로를 전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네 번째로는 성부 하나님을 향하여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5) 하고 부르짖으셨습니다. 이는 시편 22:1의 예언의 말씀을 응하게 하시는 말씀인 동시에, 그가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께 버림 받으셨음을 알려주시는 말씀입니다.
다섯 번째는 “내가 목마르다”(요 19:28) 하신 것입니다. 이것 역시 시편의 말씀을 성취하신 일이었습니다(시 69:21). 이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지옥 고통을 겪고 계셨음을 말해줍니다. 여섯 번째로 “다 이루었다”(요 19:30)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맡기신 모든 일들을 다 이루셨고, 율법의 모든 요구를 다 이루셨습니다. 일곱 번째로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 23:46)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약속된 그리스도심을 증거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십자가에 달리신 동안에도 자신의 영광을 밝히 나타내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의 영광(31-37절)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은 그리스도 자신의 무엇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이십니다. 그에게는 십자가를 지고 물과 피를 다 쏟으셔야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그가 죄인 취급을 받으며 죽임을 당하신 것은 우리를 위함이었고,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었습니다(사 53:5). 죽음은 죄에 따른 형벌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당했어야 했던 죽음을 대신 죽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음을 분명히 하시기 위하여, 그의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않게 하셨습니다(36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월절 어린양의 뼈를 꺾지 말라고 명령하셨고(출 12:46; 민 9:12), 장차 오실 메시아의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않을 것을 예언하셨습니다(시 34:20).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임 당하신 예수님의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않게 하심으로써,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죽임 당하신 유월절 어린양이심을 우리에게 확인시켜주듯이 보여주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음을 더욱 분명히 하시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몸이 창에 찔리게 하셨습니다. 한 군인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고, 그곳에서는 물과 피가 쏟아져 나왔습니다(요 19:34). 이것 역시 성경을 응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일찍이 스가랴 선지자는 메시아가 그렇게 찔리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고(슥 12:10), 그때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열리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슥 13:1).
부자의 묘실에 장사되신 그리스도의 영광(38-42절)
그리스도의 장사되심에서도 그리스도의 영광이 밝히 드러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가 죄인들을 위하여 죽임을 당하셨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증하시기 위하여 한 번도 사람을 장사지내지 않은 부자의 묘실에 그리스도가 장사되게 하셨습니다. 모두 두려워서 아무도 예수님의 시신을 거두어가려고 하지 않았을 때, 니고데모와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님의 시체를 십자가에서 내리고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근이나 가지고 와서 예수님의 시신을 세마포에 싸고는, 바위를 깎아서 만든 새 무덤에 예수님의 몸을 장사지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가 구원하실 모든 죄인들을 대신하여 그 무덤에 들어가셨습니다.
그가 부자의 묘실에 장사된 것은 이사야 53장의 말씀을 성취하는 일이었습니다. 저주의 죽음인 십자가와 부자의 묘실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십자가형을 당한 죄인을 고귀하게 장사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사야 선지자는 한 사람이 죄인 취급을 받아서 죽임을 당한 뒤에 부자의 묘실에 장사될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사 53:9). 이는 메시아의 죽음을 똑똑히 알아보게 하려는 장치들 중 하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이 바로 이사야서에 예언된 그 고귀한 죽음임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과연 그리스도는 그렇게 장사되었습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영광은 그의 장사되심에서도 드러났습니다.
우리를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를 생각하라
여러분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장사되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았습니까?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죽음을 여러분의 것으로 받아들이십시오. 죽음에 매여 있던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이 아닙니까?(히 2:9-15) 그러니 그리스도의 죽음에 연합함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얻으십시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의지하지 않고 우리의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더욱 사랑하십시오. 우리는 십자가에서 죽임 당하신 그리스도를 어떤 마음으로 대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생각할 때에 팔짱을 끼고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듯이 태연합니까? 우리가 정말로 그리스도의 죽음을 나를 위한, 나를 대신한 하나님의 어린양의 죽음으로 알고 믿는다면 그리스도를 가장 사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암브로스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뜨거운 사랑을 요구한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으려는가? 그렇다면 당신에게 묻겠다.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누구를 사랑하려고 하는가?”([예수를 바라보라](2), 122-3).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그리스도를 생각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사십시오. 우리를 이토록 사랑해주신 그리스도를 생각하십시오. 그리스도를 생각하라는 것은 단순히 머리로 생각만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의 뜻을 생각하고 그를 위하여 무엇이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나 같은 자를 위하여 죽으신 그리스도를 위하여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생각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사는 복된 우리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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