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 4:13-22
보아스와 룻이 결혼한 후 잉태하여 오벳을 낳다(13-17절)
오늘 본문은 룻기의 아름다운 결말입니다. 모압 여인 룻은 베들레헴 사람들의 축복 속에서 구속자 보아스와 결혼하였습니다(13절). 하나님은 그들에게 복을 주셨고 그 가정에 아들을 허락하셨습니다. 신자의 자녀는 교회의 미래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 위에 구원의 일들을 펼쳐 가실 때에는 언제든지 지상의 성도들, 곧 교회를 사용하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땅 위에서 잠시 동안 살 뿐입니다. 우리가 이 땅을 떠나면 이 세상에는 우리의 자녀들이 남아서 믿음을 지키고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지키고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그러므로 언약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크신 선물입니다(시 127:3).
룻이 아들을 낳았을 때, 베들레헴 성읍의 여인들은 나오미와 함께 기쁨을 나누면서, 그 아이가 나오미의 “생명의 회복자”와 “노년의 봉양자”(15절)가 될 것이라고 말하며 나오미를 축복했습니다. “생명의 회복자”라는 말에서 “생명”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영혼”을 의미하는 “네페쉬”로, 나오미의 영혼에 기쁨과 활력을 주고 나오미의 노년에 그녀를 돌보고 봉양할 아이가 되기를 원한다는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나오미에게 이런 큰 기쁨을 “일곱 아들보다 귀한 자부”(15절) 룻을 통해서 주셨습니다. 베들레헴의 여인들은 아이의 이름도 지어주었는데, 그 이름은 ‘오벳(Obed)’이었습니다. ‘오벳’이란 ‘종(servant)’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종이 되라고 이런 이름을 지어주었을 것입니다.
오벳은 이새를 낳았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18-22절)
겉으로만 보면 오벳은 평범한 한 사내아이였지만, 룻기의 저자는 오벳이 역사에서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베레스로부터 다윗까지의 계보를 알려줍니다(18-22절). 베레스의 가문에서 태어난 오벳은 이새를 낳았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습니다. 그러니까 룻과 보아스는 오벳을 낳음으로써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왕 다윗의 증조모와 증조부가 된 것입니다.
룻과 보아스는 자신들이 낳은 아들이 장차 다윗 왕가를 이룰 것을 알고 아들을 낳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그저 그들의 평범한 일상을 살았을 뿐입니다. 룻은 룻의 일을 하였고 보아스는 보아스의 일을 하였습니다. 보아스는 나오미의 토지를 구속하였고 룻을 구속하여 룻과 결혼하였습니다. 보아스와 룻은 결혼한 후 경건한 자손을 주시기를 구하였고, 하나님께서는 룻으로 잉태하게 하셨습니다. 아들을 낳은 뒤에는 그 아이를 열심히 키웠습니다. 얼마나 평범한 일상입니까? 그들은 오벳이 장차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 다윗의 할아버지가 될 것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다만 그들은 이 아이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는 종, “오벳”이 되기를 소원하며 기도했을 뿐입니다. 나오미나 룻이나 보아스는 이 아이에게 신앙적 유산을 물려주기 위해 온 힘을 기울였습니다. 집안마다 대대로 내려오는 유산(inheritance)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땅만 유산이 아니라 소위 신앙적 유산(legacy)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조상들이 죽었지만 그들이 살아있었을 때에 가지고 있었던 생각, 그들이 견지했던 믿음, 그들이 남긴 신앙의 족적들, 그들이 보여주었던 신앙적 기백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룻과 보아스의 신앙적 유산이 오벳과 이새와 다윗에게 주었을 신앙적 영향력이 얼마나 컸을지 생각해 보십시오. 다윗이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던 골리앗을 대적하여 물맷돌 다섯 개를 주머니에 넣고 나가서 싸울 때, 다윗이 사울의 추격을 피해서 광야에 거할 때, 다윗이 압살롬의 반란으로 인해서 예루살렘 성을 울며 빠져나갈 때, 우리아의 아내 밧새바를 범하는 죄를 짓고 하나님 앞에서 회개할 때, 인생의 고비고비마다, 다윗은 어렸을 때부터 들었던 증조모 룻과 증조부 보아스의 신앙을 생각하지 않았겠습니까? 룻과 보아스의 삶은 다윗에게만 영감을 준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룻기를 읽으며 신앙생활에 격려와 위로와 힘을 얻어온 수많은 신자들에게 큰 신앙적 유산을 남겼습니다. 그들은 죽었으나 오히려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후대에 어떤 신앙적 유산을 남겨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과 후대들에게 어떤 신앙적 기백을 보여주고 있습니까?
어둠 속 한 줄기 빛
룻기의 시대적 배경은 사사 시대입니다. 사사 시대는 어두운 시대였습니다. 그때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들이 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반적으로 하나님을 멀리 떠났고 영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문란했고, 또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도 혼란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징계로 인하여 주변의 다른 민족들로부터 압제를 받으며 고통스러워하였습니다. 사사 시대는 한 마디로 어둡고 암울한 시대였습니다.
하지만 룻기의 말씀을 상고하는 동안, 우리는 잠시 사사 시대를 잊어버릴 수 있었습니다. 나오미와 룻과 보아스의 아름다운 신앙 스토리를 읽으면서, 사사 시대가 잠시 멈춰진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어떻게 이런 아름다운 신앙 이야기가 사사 시대에 나올 수 있었습니까? 누가 이 일을 하신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입니다. 룻기는 룻의 이야기나 보아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룻기는 하나님의 이야기입니다. 룻기는 하나님께서 그토록 어둡고 혼란했던 시대에도 어떻게 구원의 일을 놀랍게 행하셨는지를 증거해주는 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사 시대와 같이 어두운 시대에도 나오미나 룻이나 보아스와 같은 신앙의 사람들을 일으켜주셨습니다. 그 면면을 볼 때 유다 지파는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운 것이 많은 지파였습니다. 유다나 다말이나 엘리멜렉이나 나오미나 기생 라합이나 룻이나 모두 연약하고 어리석고 부끄러운 것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사용하셔서 다윗의 가문을 이루셨고, 동시에 우리의 영원하고 완전한 구속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유다와 그의 아들 베레스의 때부터 보아스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오벳의 때부터 다윗에 이르기까지 구원의 일을 흔들림 없이 하고 계셨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도 사사 시대 못지않게 어둡고 혼란한 시대입니다. 우리 시대는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경건한 시대입니까?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는 또 얼마나 혼란하고 암울합니까? 코로나는 또 어떻습니까? 지금의 코로나19만 끝나면 이 세상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세상이 될 수 있을까요? 지금 온 세계는 기후 변화로 인해서 전에 없던 재해들(폭우, 폭염, 산불, 각종 전염병)로 큰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앞으로 또 어떤 전염병과 재해들이 우리에게 닥치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시대의 영적, 도덕적인 형편은 더 어둡고 암울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이 어두운 세상 속에서도 여전히 구원의 일을 변함없이 행하고 계십니다. 룻기는 믿음으로 살면 결국은 잘 먹고 잘 살게 된다는 것을 가르치는 책이 아닙니다. 룻기는 이 어두운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이 다스리시며 하나님이 구원하신다는 것을 말해주는 책입니다. 하나님께로 피하고 믿음을 견지할 것을 말해주는 책입니다. 하나님께서 돌보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의 구원을 위해서 일하십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위대합니다. 구원하실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중단 없이 일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이 이 어두운 세상의 한 줄기 빛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세상의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어둠 속 한 줄기 빛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신실한 교회들 역시 어둠 속 한 줄기 빛입니다. 우리도 어둠 속 한 줄기 빛으로 살아갑시다. 우리는 모자라고 연약하지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실 때에만 이 일이 가능합니다. 누군가 우리 시대를 돌아볼 때 “아, 이렇게 혼탁했던 시대에도 이렇게 아름다운 신앙의 이야기들이 있었구나!” 하는 증거를 받는 복된 가정, 복된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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