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 20:24-42
다윗을 질투하고 증오한 사울
사무엘상 18-20장의 주요 등장인물은 사울 왕과 사울의 아들 요나단, 그리고 다윗입니다. 요나단은 사울과 다윗 사이에 끼어 있었습니다. 요나단은 사울의 아들이면서 동시에 다윗과는 둘도 없는 친구였습니다. 하지만 사울이 다윗을 증오하고 죽이려 했기 때문에 요나단은 이 둘 사이에 끼게 되었습니다. 사울은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나라를 왕에게서 떼어서 왕보다 나은 왕의 이웃에게 주셨나이다”(삼상 15:28)라는 사무엘의 선언을 들은 후부터 “왕보다 나은 왕의 이웃”이 누구일지를 경계하며 계속 찾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왕의 이웃”이 누구인지 그 윤곽이 점점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바로 다윗이었습니다. 특별히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블레셋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을 때,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삼상 18:7) 하고 노래하였을 때, 사울은 불쾌하여 심히 노하였고 이때부터 다윗을 질투하고 견제하기 시작했습니다(삼상 18:8). 사울의 신경은 날카롭게 곤두섰고, 급기야 사울은 악신이 들려서 자기를 위하여 수금을 타고 있던 다윗에게 두 번이나 창을 던져 죽이려고 했습니다(삼상 18:10-11).
사울은 다윗과 함께 지내는 것이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죽게 하기 위해서 꾀를 내어 자기의 딸 메랍을 주겠다고 제안하면서 다윗을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게 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그러자 사울은 말을 바꾸어 메랍을 다른 사람과 결혼시켰습니다. 사울은 또 다른 딸 미갈을 주겠다고 제안하면서 이번에는 블레셋 사람의 양피 100개를 요구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다윗은 성공했고, 사울은 미갈을 다윗에게 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사울의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울은 다윗을 더욱 미워하게 되었습니다(삼상 18:29-30).
결국 사울은 다윗을 죽이기로 마음을 먹고 그의 모든 신하에게 다윗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요나단은 다윗을 심히 사랑했기에, 요나단은 먼저 다윗을 숨게 한 뒤에 아버지에게 가서 다윗을 변호하면서 다윗을 죽이는 큰 악을 행하지 못하도록 사울을 말렸습니다. 사울은 요나단의 말을 듣고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다윗을 죽이지 않겠다고 맹세한 후에, 다윗을 다시 불러서 자기를 섬기도록 하였습니다(삼상 19:1-7).
하지만 돌아온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과의 싸움에 나가서 또 다시 큰 승리를 거두고 돌아오자 사울은 다시 악신에 사로잡혀서 다윗에 대한 극도의 질투와 증오와 분노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삼상 19:9). 그리하여 사울은 또 다시 다윗에게 단창을 던져 다윗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그 자리를 피하여 자신의 집으로 몸을 피했고,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 한다는 소식을 미리 알게 된 미갈의 도움으로 다윗은 죽음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도망자 신세가 된 다윗은 사무엘이 머물고 있던 라마로 갔습니다. 사울은 라마로 자객을 보내어 다윗을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막으셨습니다. 사울은 세 번이나 자객들을 보냈지만 그들에게 하나님의 신이 임하여 그들이 선지자들처럼 예언을 하게 되면서 번번이 암살에 실패하였습니다. 이에 사울은 자신이 직접 라마로 가서 다윗을 죽이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사울에게도 여호와의 신이 임하였고, 사울은 사무엘 앞에서 예언을 하되 종일종야에 벌거벗은 몸으로 눕게 되는 수치를 당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의 계획을 꺾으신 것입니다.
다윗을 사랑하여 다윗을 돕고 보호한 요나단
다윗은 라마에서 빠져나와 다시 요나단에게 찾아와 이렇게 하소연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였으며 내 죄악이 무엇이며 네 부친 앞에서 나의 죄가 무엇이관대 그가 내 생명을 찾느뇨?”(삼상 20:1). 라마에서는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하심으로 다윗이 화를 면했지만, 다윗은 앞으로 언제 어떻게 죽을지 알 수 없었습니다(3절). 그래서 다윗은 요나단에게 말하기를, 월삭이 되면 왕과의 식사 자리에 앉아야 하지만, 사울이 자신을 죽이고자 하는 마음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지 그 여부를 확인하기 전에는 참석할 수 없겠으니 사울의 마음을 확인한 후에 자신에게 알려 달라고 하였습니다(4-6절). 이에 요나단은 이를 약속하고 다윗과 함께 들판으로 가서 맹세하면서, 사울이 마음을 돌이켜 다윗을 죽일 뜻을 접었다는 것을 확인하면 요나단이 화살을 쏜 후에 아이를 보내어 화살을 찾아오게 할 때에 소리를 지르는 것으로 암호를 삼기로 했습니다. 만일 요나단이 ‘화살이 네 이편에 있으니 가져오라’고 외치면 이는 다윗이 안전하다는 뜻이니 안심하고 돌아오라는 신호였고, ‘보라 화살이 네 앞편에 있다’고 외치면 이는 다윗이 위험한 상태이니 도망을 가라는 신호였습니다(19-23절).
성으로 돌아온 요나단은 월삭을 맞아 아버지 사울과 함께 식사 자리에 앉았습니다. 다윗이 첫째 날에 이어 둘째 날에도 식사 자리에 나오지 않자, 사울은 다윗의 자리가 왜 계속 비어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요나단은 다윗이 베들레헴 자기 집에서 제사할 일이 생겨서 제사를 지내게 해달라고 부탁하여 자신이 허락하였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사울은 분노하면서 험악한 말로 요나단을 이렇게 책망하였습니다. “패역부도의 계집의 소생아 네가 이새의 아들을 택한 것이 네 수치와 네 어미의 벌거벗은 수치됨을 내가 어찌 알지 못하랴”(30절). 이어서 사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새의 아들이 땅에 사는 동안은 너와 네 나라가 든든히 서지 못하리라... 그는 죽어야 할 자니라”(31절). 사울의 논리는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면 자기의 가문은 왕권을 유지할 수 없을 테니, 다윗을 죽여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울의 목적은 자기와 자기의 자손들이 대대로 왕권을 유지하고 누리는 것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왕권 유지에 최대의 걸림돌이 되는 다윗만 죽이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에 요나단은 사울에게, 도대체 다윗이 무슨 죽을 죄를 지었느냐고 반문하였습니다. 요나단이 다윗의 편을 들고 다윗을 변호하자 사울은 분노하여 요나단에게 단창을 던져 죽이려 했습니다(32절). 사울에게 남은 것은 권력에 대한 욕망과 광기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요나단은 사울과는 달리 다윗을 사랑했습니다. 요나단의 사랑은 단순한 우정이 아니었습니다. 요나단이 다윗을 사랑한 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택하여 이스라엘의 왕을 삼으시고 장차 다윗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이루어가실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한편 요나단은 다윗을 그토록 사랑하였지만, 아버지 사울을 버리거나 떠나지 않고 아버지의 곁을 끝까지 지켰습니다.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이 더 큰 악에 빠지지 않도록 곁에서 충언하고 설득하고, 왕자로서 아버지를 도와 이스라엘을 어떻게든 지키고 세워가려고 한 것입니다.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을 사랑했습니다. 이는 아버지가 훌륭했기 때문이 아니라 아버지가 자기의 아버지였기 때문입니다. 훗날 요나단은 아버지와 함께 전쟁터에 나갔다가 사울과 같은 날에 전사합니다(삼상 31장). 하나님께서 왜 다윗의 둘도 없는 친구이자 동역자인 요나단을 젊은 나이에 데려가셨는지 그 이유를 우리는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것은 죽음을 둘러싸고 있는 하나님의 주권의 신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의 생애는 길게 허락하시고 어떤 사람의 생애는 짧게 허락하십니다. 우리는 사람의 죽음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살되, 믿음으로 살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요나단은 짧은 삶을 살았지만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요나단을 생각합시다. 하나님의 대의, 복음의 대의는 생각하지 않고, “나에게 유리한가 불리한가? 나에게 손해인가 이익인가?”를 따지면서 사람을 상대하거나 일을 처리하지 맙시다. 다윗이 왕 되기를 바라면서 다윗을 보호하고 도우면서 다윗의 친구가 되었던 요나단을 생각합시다. 우리가 하나님을 중심하고 하나님을 위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들과 친구가 될 것입니다. 우리도 누군가에게 요나단과 같은 친구와 동역자가 되게 해주시기를, 또한 우리에게도 요나단과 같은 친구와 동역자를 허락해 주시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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