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작성자 사진병철 안

211010 다윗의 애가

삼하 1:17-27


다윗의 애가의 배경

사무엘하 1장은 다윗의 애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인하여 이 애가를 부르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오랫동안 미워하며 죽이려고 했던 사울이 그의 세 아들과 함께 블레셋 군대와의 전쟁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슬퍼하고 금식하면서 이 애가를 불렀습니다. 사울이 블레셋 군대와 전쟁을 하고 있었을 때, 다윗은 블레셋 사람들의 땅인 가드로 정치적인 망명을 가 있었습니다(삼상 27장). 하마터면 다윗도 그 전쟁에 참여해서 자기 동족 이스라엘 백성들과 맞서서 싸울 뻔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섭리로 그런 상황을 막아주셨습니다(삼상 29장). 블레셋의 장군들의 반대로 전쟁에 참여하지 못하게 된 다윗은 자기 부대를 이끌고 시글락으로 되돌아갔고, 블레셋의 군대는 길보아 산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전투를 벌였습니다.


다윗이 시글락으로 돌아왔을 때, 시글락은 아말렉 사람들에 의해 완전히 약탈을 당하고 성은 다 불타버린 뒤였습니다. 평소 다윗으로 인해 많은 피해를 입었던 아말렉 사람들이 다윗에게 복수를 했던 것입니다(삼상 30장). 이에 다윗은 군대를 거느리고 아말렉 사람들을 추격하여 아말렉 진영으로 내려갔습니다. 다윗과 그의 부하들은 승리에 도취되어 있던 아말렉 사람들의 진영을 쳐서, 그들을 진멸하고 또 사로잡혀갔던 부녀들과 모든 양떼와 소떼와 재산을 다 되찾고 시글락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는 사이, 사울이 이끌던 이스라엘의 군대는 길보아 전투에서 블레셋 사람들에게 크게 패하였고, 사울과 함께 사울의 세 아들(요나단, 아비나답, 말기수아)이 전사했던 것입니다. 다윗은 블레셋과 이스라엘 사이의 전쟁이 어떻게 되었는지 아직 소식을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사울의 진에서 한 소년이 도망하여 다윗에게 나아왔습니다. 그 소년은 다윗에게 이스라엘의 패전을 알리면서, 사울과 요나단도 죽었다고 보고하였습니다(4절). 그 청년은 자신이 우연히 길보아 산에서 사울 왕을 만났는데, 부상을 당하여 큰 고통 가운데에서 자신을 죽여달라는 요청을 받고 그를 죽인 후에 그 머리에 있는 면류관과 팔에 있는 고리를 벗겨서 가져왔다고 하였습니다(6-10절). 이 아말렉 청년은 자신이 다윗의 정치적인 정적이었던 사울을 제거했다는 소식을 들고 가면 다윗에게 큰 상을 받을 것으로 기대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이스라엘 군대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패하고 사울과 요나단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자기 옷을 찢고 저녁까지 슬퍼하여 울며 금식하였습니다(11-12절). 그리고 다윗은 사울을 죽였다고 주장했던 그 아말렉 청년을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죽인 죄로 처형하였습니다(13-16절). 다윗의 애가는 바로 이런 배경에서 지어졌습니다.

다윗의 애가의 내용

다윗의 애가(19-27절)를 찬찬히 읽어보면, 다윗의 신앙과 인격이 어떠하였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인하여 탄식하며 “이스라엘아, 너의 영광이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도다”(19절) 하고 애가를 시작합니다. 다윗은 이 일을 가드와 아스글론 거리에 전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할례 받지 못한 블레셋 사람의 딸들이 즐거워하며 개가를 부를 것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속이 상했기 때문입니다(20절). 또한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이 방패를 놓치고 피 흘리며 죽어간 길보아 산들을 향하여 그곳에 우로가 내리지 않으며 밭의 소산이 그치게 되기를 원한다고 하였습니다(21절). 길보아 산에게 무슨 잘못이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는 사울과 요나단이 죽을 때에 길보아 산은 도대체 무엇을 했느냐고 시적으로 그들을 책망하면서 다윗의 슬픔을 표현한 것입니다.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이 이스라엘 나라를 위하여 용맹하게 싸우며 충성했던 때를 추억했습니다. “원수들을 치고 적들을 무찌를 때에, 요나단의 활이 빗나간 일이 없고, 사울의 칼이 허공을 친 적이 없다.”(22절, 새번역). 그들은 독수리보다 빠르고 사자보다 강했습니다(23절).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을 사랑하여 끝까지 아버지와 함께 했고, 그래서 죽을 때에도 서로를 떠나지 않았습니다(23절). 비록 사울이 그의 인생의 마지막 시기에 불신앙적인 모습을 보이고 또 악신이 들어서 잘못 판단했던 때도 많이 있었지만, 사울은 이스라엘을 위해 여러번 목숨을 내놓고 싸웠고, 그로 인해 이스라엘의 딸들은 화려한 붉은 옷과 금노리개 장식을 달 수 있을 정도로 평안하고 풍족한 시절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24절).

특별히 다윗은 요나단의 죽음을 인한 자신의 고통을 토로하였습니다. “오호라 두 용사가 전쟁 중에 엎드러졌도다 요나단이 너의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25절). 다윗은 요나단을 “내 형”이라고 부르며 요나단의 죽음을 애통해하면서 요나단의 죽음을 생각하면 너무 고통스럽고 자기의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진다고 했습니다(26절). 다윗은 요나단을 향해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승하였”(26절)다고 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윗은 두 용사 사울과 다윗의 죽음을 다시 한 번 슬퍼하면서 애가를 마칩니다(27절).

다윗의 애가의 교훈

다윗이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애가는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줍니까?

첫째, 다윗은 이 애가를 통하여 자신이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통치를 굳게 믿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위에 남겨두신 것과, 자신이 아직 왕이 되지 못한 데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정치적인 정적이었던 사울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할 수 있었습니다.


둘째, 다윗은 이 애가를 통하여 자신이 사울을 한 사람으로 사랑하고 존중했음을 보여줍니다. 다윗은 사울을 귀히 여겼고 특별히 사울은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서 세워주신 왕이었기에 더욱 그를 존중하고 사랑했습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귀히 여겨야 합니다. 물론 사울에게는 허물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의 죽음 앞에서 그런 것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의 안 좋은 점을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별로 좋은 태도는 아닙니다. 우리는 인간에 대한 존중과 존경과 예의와 사랑을 점점 찾아보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자기와 입장이 조금만 다르면 조롱, 욕설, 비방을 퍼붓습니다. 정당한 비판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당한 비판은 경멸이나 조롱이나 증오나 저주나 욕과는 다른 것입니다. 이는 경건한 성도의 모습은 아닙니다. 비록 사울은 자신을 오해하고 미워하였지만 다윗은 사울이 끝까지 잘 되기를 바라며 그를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다윗 편에서는 사랑의 끈을 놓지 않았기에 그들은 서로 사랑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셋째, 다윗은 이 애가를 통하여 요나단을 향한 특별한 사랑을 보여줍니다. 요나단은 외로웠던 다윗의 인생에서 다윗을 이해해주는 거의 유일한 친구이자 동역자였습니다. 요나단은 왕자였고 다윗은 초라한 목동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관계를 떠나서 신앙 안에서 만나서 진정으로 서로를 축복하며 서로를 응원하며 신앙 안에서 우정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요나단의 황망한 죽음 앞에서 그토록 슬퍼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 안에서 우정을 나눌 수 있는 한 사람의 신앙의 친구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그들이 떠난 후에 그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를 깨닫고 슬퍼하기 전에 신앙의 친구들을 소중히 여깁시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와 통치를 굳게 믿읍시다. 사람에 대한 존중과 사랑의 끈을 놓지 맙시다. 특별히 신앙의 친구를 귀히 여기고 성도의 교제를 소중히 여깁시다. 다윗의 애가는 성도의 죽음에 대한 애도를 표현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났을 때에도 남은 성도들이 우리의 죽음을 이렇게 애도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갑시다.



조회수 30회댓글 0개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Comments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