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12:1-2
로마서 12장은 "그러므로"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로마서 12:1의 “그러므로”는 로마서의 새로운 단락을 여는 중요한 “그러므로”입니다.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는 앞의 내용과 뒤의 내용을 연결시켜 주는 접속사입니다. 사도 바울은 앞에서 영광스러운 구원의 도리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얻는지,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그의 모든 은덕에 참여함으로 죄 사함과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증거했습니다. 그런 후에 사도 바울은 이 모든 구원의 일들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는 송영으로 11장을 끝맺었습니다. 따라서 로마서 1-11장에 사용된 문장들은 대부분 영광스러운 구원의 도리에 대해 진술하는 직설법 문장입니다(롬 1:16-17, 2:13, 3:20-24, 4:13, 5:19, 6:1-2, 7:24-25, 8:28,31,37, 9:16,20, 10:13-15, 11:33-36 등). 그러나 로마서 12장에서부터는 “명령법” 문장이 대거 등장합니다(롬 12:2,3,9-13 등). 그러므로 로마서 12-16장은 위대한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감사의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교훈하는, 매우 실천적인 단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단순히 아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을 믿는 것이고, 믿는 대로 사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부터는 바로 그러한 실천적인 영역에 있는 여러 주제들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너희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로마서 12:1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대원칙을 천명하는 일종의 선언문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1절). 모든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따라야 할 삶의 큰 원리는 한 마디로,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제물)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너희 몸을 제물로 드리라”는 것은 짐승을 잡아서 제단 위에 올려드리는 구약적 제사를 드리라는 것도 아니고, 우리 몸 자체를 죽여서 드리는 인신 제사를 드리라는 것도 아닙니다. “너희 몸”을 “살아있는 제물(living sacrifice)”로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몸”은 우리의 존재 전체, 우리의 삶 전체를 대표하는 말입니다. 곧 “너희의 온 삶을 살아있는 거룩한 제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로 드리라”는 말입니다. 마르틴 루터는 이 구절을 해설하면서 “우리 자신이 바로 이 참된 제물이다”라고 했습니다(로마서 주석, 212).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여기에서 “너희 몸”이라고 하신 데에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생각뿐만 아니라 우리의 실제 행동과 삶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우리 “몸”을 거룩한 제사로 드리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영적”인 예배라는 말입니다.
또한 “몸의 제사”는 우리가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제사입니다. “영적”으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 “로기코스(λογικός)”는 “합당한, 합리적인(reasonable), 이성적인(rational)”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신 하나님께 우리의 온 삶을 드리는 것은 지극히 합당하고 이성적인 것입니다. 만일 누군가 우리에게 우리의 죽을 병을 고칠 수 있는 값비싼 약을 값없이 주어 우리를 살려주었다면, 우리는 그 사람에 대해서 일평생 감사하고 고마워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큰 죄악과 영원한 비참에서 건져 죄 사함과 영원한 생명, 곧 구원이라고 하는 고귀한 선물을 값없이 주셨으니(시 49:7-8) 우리는 일평생 그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그를 섬기며 그에게 절하며 그에게 경배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합당한 예배요 참된 예배요 영적 예배입니다. 예배란 하나님께 엎드려 절하며 경배하는 것입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
우리 자신을 거룩하고 살아있는 제사로 하나님께 드리기 위하여 먼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본받다(conform)”라는 동사는 “(규칙이나 관습에) 따르다, 순응하다(be obedient)”는 뜻을 가집니다. 이는 “이 세대에 동화되지 말라”(표준성경)는 말로도 번역됩니다. 이 세대(this age) 곧 이 세상(this world)에 순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포로로 끌려가서 살았던 바벨론과 같은 세상입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인정하지 않고 믿지 않는 세상입니다. 이 세상의 가치관은 성경의 가치관과 정반대이고 이 세상의 문화는 성경의 문화와 정반대입니다. 이 세상은 이 세상만의 방식이 있습니다.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은 바로 이런 세상의 한복판에 놓여 있습니다.
비록 우리는 이러한 세상 속에서 살고 있지만 동시에 “하나님 앞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불경건한 세상 속에서 살고 있지만, 세상이 불경건하다고 해서 우리도 덩달아서 불경건하게 살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 속에서도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은 신앙을 따라 살지 말고 세상의 방식을 따라 살도록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을 끊임없이 부추기고 위협하며 도전할 것입니다. 이러한 세상의 거센 파도와 비바람은 끊임없이 불어올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지키면서 영적 삶을 살아가려면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이 세상에 순응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세상 사람들과 늘 불화하면서 살라는 것은 아닙니다. 이 세상 속에서 살되 이 세상의 방식대로 살지 말고 세상의 풍조를 따라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세대는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이며(빌 2:15), 악하고 음란한 세대입니다(마 16:4).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
또한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계속해서 새롭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계속해서 마음이 더 밝아져야 하고 더 새로워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비록 거듭났다 하더라도 우리의 마음은 여전히 어둡고 어리석고 부패하여 엉뚱한 생각을 하고 엉뚱한 마음을 먹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새로움(newness)으로 또는 마음의 갱신(renewal)을 통해 변화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변화를 받으라는 말은 “변화되고(be transformed)”, “개혁되라(be reformed)”는 뜻입니다.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계속 개혁해 나가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개혁주의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마음이 개혁되려면 무엇보다 지성이 진리로 밝혀지고 새로워지고 각성되고 개혁되어야 합니다. 존 머리가 말한 것처럼 “지속적인 사상의 갱신”(로마서 주석, 604)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관점과 가치관이 진리로 점점 개혁되고 새로워져야 합니다. 그렇게 개혁된 마음이라야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2절)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성경에 계시된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하나님의 뜻과 명령이 무엇인지를 바로 알고, 거기에 입각해서 우리 각자의 삶의 다양한 환경과 형편을 간파하고 우리 각자를 향하신 구체적인 하나님의 뜻, 곧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까지 우리는 우리의 몸을 어떻게 사용하였습니까? 우리의 삶에 주어진 기회를 어디에 어떻게 사용했습니까? 함부로 사용하지는 않았습니까?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립시다. 이것이 최고의 영적 예배입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되고 개혁되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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