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하 22:1-7
사무엘하 21-24장은 사무엘하의 결론부로, 다윗의 통치시기에 있었던 다양한 일들을 회고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사무엘하 22장은 다윗의 시편으로, 다윗이 자신의 지난날을 회고하면서 하나님의 모든 은혜에 대해 찬송하는 내용입니다.
다윗을 괴롭게 한 대적들의 손과 사울의 손(1절)
이 시편은 여호와께서 다윗을 모든 대적의 손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신 그 날에 다윗이 지은 시편이었습니다(1절).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무엘하의 저자가 다윗의 인생을 회고하면서 다윗의 삶을 마무리하는 이 결론부에 이 시편을 다시 배치시킨 것은 이 시편이 다윗의 삶 전체를 대표하고 요약하는 시편으로 적절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 다윗은 “대적의 손”과 “사울의 손”을 인해서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위험을 겪어야 했습니다(1절). 우리는 자주 이런 생각을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아니었나? 그런데 왜 다윗에게는 그토록 많은 대적들과 고난들이 있었는가? 왜 우리의 삶에는 이토록 많은 역경과 어려움이 있는가? 세상에는 왜 이렇게 불공평한 일들이 많이 있는가?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왜 불의한 자들이 득세하도록 허용하시는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들에게 왜 이렇게 힘든 시간들을 허락하시는가?”
하지만 만일 하나님께서 이 세상 역사 가운데에서 모든 악인들을 일일이 심판하셨다고 한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역사 속의 수많은 사람들이 멸절되었을 것이고, 이 세상의 역사는 유지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세상 끝날까지 남아서 구원을 받아야 할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이 복음을 듣고 구원받을 기회조차 얻지 못했을 것이고, 지금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나서 이렇게 복음을 듣고 구원 받을 수 있는 순서가 우리에게 돌아오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악을 허용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 가운데 하나님의 지혜로운 섭리로 이루어지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때때로 우리는 우리의 삶에 역경이나 대적자들이 전혀 없이 천국 같은 환경에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하지만 이는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혹 이 땅에 참된 신자들만 남는다고 하더라도 우리 안에 여전히 죄가 남아있고 이 세상은 여전히 비참 아래 있기 때문에 세상은 절대로 천국 같을 수가 없습니다. 또한 이 땅에서의 삶이 천국 같다면 우리의 믿음은 연단을 받지 못하고 자라지도 못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늘 천국 같기만 하면 우리가 징계를 받아야 할 때에도 징계다운 징계를 받지 못하여 방종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이 천국 같이 변하기를 바라는 것은 매우 비현실적이고 비성경적인 기대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대적의 손과 사울의 손을 피할 수 없습니다(1절).
피난처이신 여호와께로 피한 다윗(2-7절)
하지만 다윗에게는 대적의 손과 사울의 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를 붙드시는 여호와의 손이 있었습니다. 다윗은 마치 큰 파도가 이는 바다를 항해하는 돛단배처럼 위태로운 상태에 있었습니다(5-6절). 다윗은 그러한 환난 중에서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셨습니다(4,7절). 곤고한 날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서 한 가지 위로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다윗은 이 모든 시간들을 지난 후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생생하게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높은 망대시요 나의 피난처시요 나의 구원자시라 나를 흉악에서 구원하셨도다”(2-3절).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언제나 피난처가 되어 주셨습니다. 다윗의 삶은 계속 피난처로 피난하는 삶이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 땅에서 피난처를 늘 필요로 합니다. 여호와를 자기 피난처로 삼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우리는 환난날에 우리가 얼마나 무력한 자들인지를 절감하게 되고 그제서야 하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피난처가 되심을 깊이 깨닫게 됩니다.
다윗의 피난처와 의지가 되어 주신 하나님(8-46절)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피하는 자들에게 피난처가 되어주십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신음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과 그의 언약을 인하여 그리고 이 세상의 악에 대하여 분노하시며 일어나시되, 그의 전능의 능력과 위엄을 가지고 일어나셔서 그의 자녀들을 보호하시고 그들의 구원이 이루어지도록 하시며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원수들의 공격을 막아주시고 화살을 날려 악인들을 흩으시며 하늘에서 뇌성을 발하시며 그들을 꾸짖으십니다(8-16절). 하나님께서는 하늘을 가르고 오셔서 손을 내밀어 우리를 붙드시고 많은 물에서 우리를 건져내시며 재앙의 날에 우리의 의지가 되십니다(17-20절). 하나님의 도움은 실제적인 것이며 강력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능의 능력으로 우리를 보호하시고 구원하시고 도우십니다. 하나님은 강하고 위대하신 분입니다. 하나님과 같이 강한 분이 없고 하나님과 같이 우리를 사랑하는 분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피하는 그의 모든 백성들에게 피난처가 되어주십니다. 다윗은 환난 속에서 믿음으로 행했고, 그런 다윗을 하나님께서는 그의 신실하심과 자비하심으로 상대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자가 믿음으로 행했을 때 이를 기뻐하시고 그의 행보에 복을 주십니다(21-28절).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등불이시니 여호와께서 나의 흑암을 밝히시리이다.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진으로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벽을 뛰어넘나이다...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며 우리 하나님 외에 누가 바위뇨!”(29-30, 32-33절).
하나님은 또한 다윗을 강하게 해주셨습니다(34-40절). 하나님은 다윗을 강하게 하셔서 다윗의 대적자들로 도망가게 하셨습니다(41절). 다윗의 대적자들에게는 구원자가 없었고(42절), 다윗은 그들을 땅의 티끌같이 부스러뜨렸습니다(43절). 여호와께서는 다윗을 그 모든 다툼에서 건지시고 보존하셔서 열방의 으뜸을 삼으셨고, 전에 다윗을 대적하던 이방인들은 쇠미하여 그 견고한 곳에서 떨며 항복하여 나왔습니다(44-46절).
여호와는 살아계시니 나의 바위를 찬송하리라(47-51절)
다윗은 이 시편을 마무리하면서 그리고 자신의 삶을 회고하면서 “여호와는 생존하시니 나의 바위를 찬송하며 나의 하나님을 높일 것이라”(47절)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환난날에 우리 자신이 얼마나 무력한 자들인지를 절감하게 하시고, 우리의 참된 피난처가 누구시며 우리의 바위가 누구신지를 생생하게 깨닫게 하십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생생하게 경험한 후에, 하나님을 “나의(my) 하나님”이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반석, 나의 요새, 나를 건지시는 자, 나의 하나님, 나의 피할 바위, 나의 방패, 나의 구원의 뿔, 나의 높은 망대, 나의 피난처, 나의 구원자”라고 했습니다(2-3절). 하나님 외에 이런 피난처가 누구입니까?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입니까? 하나님 외에 여러분의 보장이 되시는 분이 누구이십니까?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능히 보호하실 수 있는 강하신 분입니다. 우리를 그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을 우리의 피난처로 삼고 하나님께 피난합시다. 그리스도께 피합시다. 그리스도 외에 다른 피난처가 없습니다. 이 하나님을 우리의 피난처로 삼고 이 하나님을 자랑하고 우리의 바위이신 하나님을 찬송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이 시편이 우리의 평생의 삶을 요약하고 대표하는 시편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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