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3:1-8
사람들은 자신들의 불신앙에 대하여 수많은 핑계들을 내세웁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고 선언했을 때, 유대인들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만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할례자나 무할례자나 결국 다 같은 죄인이라면, 우리가 이제까지 언약 백성으로서 율법을 지키고 할례를 시행하며 살아왔던 것은 다 무의미하다는 말인가?” 바울은 유대인들의 이러한 불신앙의 핑계를 간파하고 마치 유대인들의 생각을 대변해 주듯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뇨?”(1절). 바울은 유대인들이 가진 많은 특권들 중에서도(롬 9:4-5), 가장 으뜸이 되는 특권으로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것을 꼽았습니다(2절).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던 유대인들(1-2절)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것은 굉장한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는 어떤 참된 지식에도 스스로 이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이 하나님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알게 해주시기 위해서 자신을 계시해 주셨고, 그 계시의 내용이 말씀으로 기록되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존재와 성품과 뜻에 관하여 바르게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만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곧 “내가 누구인지” 바르고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인생의 의미와 목적이 무엇인지, 인간은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를 알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지혜로는 이것들을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만 모든 인생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인 것과 그 죄의 결과가 비참과 사망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만 구원에 대해 알 수 있고,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들을 계시로 우리에게 알려주시기 전까지, 우리는 아무 것도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 유대인들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맡아가진 사람들이었으니, 그들은 얼마나 큰 특권을 받아가진 사람들입니까!
유대인들의 불신앙과 하나님의 신실하심(3-4절)
그러나 이러한 특권들은 자동적으로 그들에게 유익이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유대인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약속된 유업을 얻어야 하는(어쩔 수 없이 얻을 수밖에 없는) 그런 식으로 약속을 주시지 않았”습니다(루터의 로마서 주석, 84). 유대인들의 문제는 그들이 그렇게 놀라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아가지고 있었지만, 그 말씀을 믿지 않았다는 데 있었습니다(3절). 물론 모든 유대인이 믿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떤 유대인들은 참되게 믿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유대인들은 말씀을 믿지 않았습니다(3절).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말씀을 주신 것은 그들이 그 말씀을 듣고 말씀의 참 뜻을 깨달아서 그 말씀을 믿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외형적으로는 말씀을 맡아가지고 있었지만 그 말씀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귀한 하나님의 말씀은 유대인들에게 큰 유익을 주지 못했습니다. 이는 마치 좋은 책을 많이 사서 읽지는 않고 책꽂이에 꽂아두기만 한 것과 같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지금 허락되어 있고 우리가 이제까지 복음을 들었다면, 그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 복음을 믿지 않는다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우리에게 진귀한 보석을 값진 것으로 여기지 않고 그것을 던져버리거나 잊어버리고 살고 있다면 그 보석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은 무엇입니까?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을 들었다면 우리는 그 복음을 믿어야 합니다.
이제 바울은 되묻습니다. 누군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이 믿을 만한 분이 못 되는 것이냐고 말입니다(3절). 만일 우리가 누군가에게 호의를 가지고 어떤 것을 약속하였는데, 상대방이 우리의 호의를 의심하고 믿지 못하여 우리가 약속했던 좋은 것을 받아누리지 못했다고 한다면, 우리가 신실하지 못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4절). 사람의 불신앙이 하나님을 신실하지 못한 분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십니다(3절). 의심하고 믿지 않은 것은 사람들이었지만 하나님은 참되시고 신실하신 분입니다. 바울은 시편 51:4을 인용하면서, 주께서 말씀하시는 모든 것은 의로우며 주의 모든 판단은 순전하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 다 의로우며, 하나님께서 판단하시는 모든 판단과 판결은 다 순전하여 모든 변명에 대하여 늘 이기십니다.
불신앙에 대한 여러 핑계와 궤변들에 대한 바울의 대답(5-8절)
복음을 믿지 않았던 유대인들은 또 다시 바울의 말을 꼬투리 잡고 궤변을 늘어놓을 것이 분명했습니다. 바울은 그들의 생각을 간파하고 다시 이렇게 묻습니다. “만일 우리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낸다고 한다면, 우리에게 진노하시고 벌을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신 것인가?”(5절). 만일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았다가 심판과 벌을 받았다면 하나님을 향해 불의하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의 죄와 죄에 따르는 형벌의 문제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약속을 믿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심판과 벌을 받게 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도 인간이 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고 있다가 죄에 따르는 형벌을 받고 하나님의 진노 아래 처하게 되었다면 하나님이 불의하신 것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6절). 오히려 하나님의 의로우심이 더욱 드러날 뿐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불신앙에 대해 진노하시고 형벌하심으로써 하나님의 공의의 영광을 더욱 밝히 나타내십니다.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며 의로우십니다. 만일 하나님이 불의하신 분이라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세상을 심판하실 수 있겠습니까(6절)?
그러자 또 다른 궤변이 등장합니다. “만일 나의 거짓됨 때문에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게 드러나서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간다면, 왜 내가 여전히 죄인으로 판결을 받아야 합니까?”(7절)라고 말입니다. 이는 자신들의 불신앙을 인해서(즉, 나의 거짓됨 때문에)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욱 풍성하게 드러났다면, 결국 자신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 자들이니 죄인 취급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만일 그들의 주장이 옳다면, 요셉을 미디안의 상인들에게 팔아넘겼던 요셉의 형들은 하나님의 칭찬을 받아야 하겠습니까? 그것은 궤변입니다.
만일 그들의 궤변이 옳다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고 하는 주장까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8절). 실제로 어떤 이들은 바울이 이런 주장을 하고 다닌다는 가짜 뉴스를 만들어서 비방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의 영광을 나타내는 선을 위하여 우리가 악을 행하자! 우리가 악을 행해야만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 있게 될 것이고, 우리가 벌을 받아야만 하나님의 공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될 것이니, 악을 행해서 하나님의 공의의 영광을 드러내자.”는 말이 정당합니까? 이것 역시 궤변입니다. 그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정죄를 받고 심판을 받아 마땅하다고 했습니다(8절).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맡겨주셔서 참되신 하나님과 하나님의 구원에 대하여 바르게 알 수 있게 해 주신 것에 감사합시다. 복음을 들을 때에 예사로 듣지 말고, 이것을 모두 우리의 것으로 삼읍시다. 믿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불신앙의 모든 핑계와 궤변들을 버립시다. 어떤 변명도 하나님을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가 믿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이 불의한 분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잘 이해하고 굳게 믿고 우리의 삶에 잘 적용할 수 있게 해주시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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