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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병철 안

220904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롬 8:31-39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신다(31-34절)

앞서서 사도 바울은 우리의 곤고하고 척박한 성화의 환경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영광스러운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이 이루어진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미리 아셨고,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미리 정하셨고 미리 택하셨으며, 택하신 자들을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자들을 영화롭게 하시는 분이라고도 하였습니다(29-30절).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바울은 이렇게 되묻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31절). 이것은 의문문으로 된 선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신다(God is for us).”는 이 한 마디에는 복음의 모든 것이 담겨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미리 예정하시고, 우리에게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고,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시고, 믿음으로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게 하신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니 누가 우리를 대적할 수 있겠으며, 누가 우리의 구원을 방해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분입니다(32절).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시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니 하나님께서 어찌 그 아들과 함께 우리의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선물)로 주지 않으시겠습니까(32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아끼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의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혀 주눅이 들 필요가 없습니다. 자신의 무능을 탓하며 자책하거나 부모를 탓하며 원망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우리를 위하여 아무 것도 아끼지 않고 선물로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가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삶에 대한 모든 회한(한탄)과 원망과 자책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우리를 택하신 분이요, 의롭다 하시는 분이십니다(33절). 하나님께서는 순전히 은혜로 우리를 택하여 주셨고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 때문에 우리를 의롭다 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니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고발)할 수 있겠습니까? 누가 우리를 정죄할 수 있겠습니까(34절)? 죽으실 뿐만 아니라 다시 일으킴을 받으셔서 하나님 우편에 계시면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그리스도 예수님이 계시니 누가 우리를 정죄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십니다(God is for us)!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35-36절)

사도 바울은 또 다시 묻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이것 역시 의문문으로 된 선언입니다. 아무 것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특별히 여러 고난과 시련 속에서 우리는 이 말씀을 생각해야 합니다.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35절)은 성도들이 성화의 싸움에서 만나게 되는 대표적인 고난과 시련들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시편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36절; 시 44:22). 이스라엘 백성들은 비록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었지만 그들의 외적인 형편은 비참하여 마치 하나님께 버림을 당한 것 같이 느끼며 탄식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죄를 지어서 매를 맞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종일 주를 위하여” 믿음을 지키며 살다가 고난을 받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이 바로 지상을 살아가는 신자들의 성화의 형편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연약한 우리는 이 땅에서 믿음을 지키고 성화를 이루며 살아가고자 할 때에 우리 안에 남아있는 죄와 이 세상의 거대한 악과 비참을 인해서 끊임없이 탄식하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의 섭리로 우리에게 허락하시고 일어나게 하시는 모든 일들 가운데에는 하나님의 섭리의 밝은 면도 있지만 어두운 면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종종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 너무나 견디기 힘든 일들, 너무나 원망스러운 일들,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할만한 현실들을 만나게 됩니다. 여기에는 우리의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과 심지어 우리의 죽음도 포함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롬 8:28). 만물이 다 우리 것이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환경과 우리가 만나게 되는 모든 현실이 다 우리 것입니다(고전 3:21-23). 모든 것이 다 우리의 구원에 필요하고, 다 자타의 구원에 유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현실들이요, 그 모든 현실들은 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우리를 섬기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다 이해하지 못할 현실들도 사실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이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것이 다 우리의 것입니다. 잎새와 풀, 비와 가뭄, 풍년과 흉년, 먹을 것과 마실 것, 건강과 질병, 부와 가난, 생명과 죽음 참으로 이 모든 것이 우연이 아니라 아버지와 같은 그의 손길로 우리에게 임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손 안에 있으며, 아무 것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27-28문답).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37-39절)

그러므로 이 모든 일에 있어서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이길 것이고, 넉넉히 이길 것입니다(37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가 만나게 되는 어떠한 현실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도 없고 오히려 우리를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로 더욱 가까이 이끌 것입니다(38-39절). 우리의 성화의 싸움은 반드시 승리로 끝날 것입니다. 악한 자가 우리를 만지지도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무엇을 두려하겠습니까? 사도 바울이 38절을 시작하면서 문장의 주어를 1인칭 단수로 바꾸어 “내(I)가 확신하노니!”라고 했던 것처럼, 이것을 우리 자신의 개인적인 확신과 고백으로 삼읍시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십니다. 그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고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이 확신을 가지고 우리의 남은 때를 담대하게 살아갑시다. 성도의 미래는 확실한 미래입니다. 우리에게서 이 미래를 빼앗아갈 수 있는 피조물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며(31절),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며(33절), 누가 정죄하며(34절),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습니까?(35절)


매튜 헨리 목사님은 임종 직전에 가족들에게 성경을 달라고 부탁했던 휴 케네디라는 스코틀랜드의 한 성도 이야기를 전해주었습니다. 성경을 받아든 그는 기력이 너무 쇠하여서 성경을 읽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가족들에게 “로마서 8장을 펴서 내 손가락을 8장의 마지막 부분인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가 나오는 부분에 올려달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자, 내 아들들아,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 하실 것이다. 나는 오늘 아침을 너희와 함께 했지만, 오늘 저녁에는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게 될 것이다.” 하고 죽음을 맞이했다고 합니다. 우리도 우리의 손가락을 로마서 8장 위에 올려놓읍시다. 살든지 죽든지 우리가 주님의 것이요, 아무 것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하면서 성화의 싸움을 흔들림 없이 싸우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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