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10:14-15
오늘 본문인 로마서 10장 14-15절은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구원으로 이끄시기 위하여 통상적으로 어떤 방식을 사용하시고 어떤 과정을 거치시는지, 즉 우리의 믿음과 구원의 과정을 규명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앞의 13절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13절과 함께 묶어서 읽는 것이 좋습니다. 로마서 10장 13-15절은 한 개의 선언문과 네 개의 의문문, 그리고 한 개의 감탄문으로 구성됩니다. 사도 바울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13절)고 선언한 후에, 이 선언의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서 사슬처럼 연결된 네 개의 질문들을 쏟아냈습니다(14-15a절). 그리고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15b절)라는 감탄문으로 이 단락을 맺고 있습니다.
먼저 바울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13절)고 선언하였습니다. 구원이란 죄와 불의와 사망에서 건짐을 받아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과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든 비참에서 건짐을 받는 것, 하나님과 원수된 상태에서 건짐을 받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것이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만이 이런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주의 이름을 불러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바울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하여 네 개의 연속 질문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바울의 첫 번째 질문은,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14절)입니다. 이는 주의 이름을 부르려면 “믿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주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예수님을 자신의 주로 시인하고 주님에 대한 바른 신앙고백을 가지고 예수님을 향해서 “주여” 하고 부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냥 입으로 “주여, 주여” 하고 외치는 것이 아니라, 주를 믿는 믿음을 가지고 바른 신앙고백에 근거하여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말합니다(롬 10:9 참조). 주를 믿고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을 받을 것이지만, 주를 믿지 않아서 주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롬 10:11; 사 28:16 참조).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 받는 것이며, 그리스도를 참되게 믿는 자는 주의 이름을 참되게 부를 것입니다.
듣지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14절)라고 답하였습니다. 통상적으로 믿음은 복음을 들음으로써 생겨납니다(롬 10:17).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 곧 복음을 듣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입니다. 복음을 듣는 일은 우리의 구원에 필수적인 행위요 필수적인 일입니다. 그래서 마귀는 우리로 하여금 말씀을 듣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온 세상이 합력해서 우리가 설교 말씀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우리의 형편과 환경은 예배에 집중하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잘 들을 수 있는 은혜를 늘 간구해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의 자녀들이 말씀을 잘 들을 수 있게 해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을 설교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자리로 잘 이끌고 나와야 합니다. 강압적으로가 아니라 사랑으로 그들을 잘 이끌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설교 말씀을 잘 들을 수 있도록 돕고,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이 다른 사람들의 말씀 듣는 일을 방해하는 자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지 못하게 방해하는 일은 다른 사람의 구원을 방해하는 일입니다.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복음을 들을 수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14절)라고 답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곧 복음을 들을 수 있으려면 말씀을 전파하는 자가 있어야 합니다. “전파한다”는 헬라어 단어는 “설교한다, 전도한다”는 말로도 번역되는 “케루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word, language)”이라고 하는 신비한 수단(매체, medium)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셨고, 그 말씀을 기록의 형태로 우리에게 주셨고, 다시 그 기록된 말씀이 설교의 형태로 우리에게 선포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설교되고 전파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설교와 전도)의 사역이 흥왕하게 되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중에서 신실하고 충성된 설교자들을 계속 일으켜주시기를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딤후 2:1-2). 왜냐하면 복음을 신실하게 전하는 자가 없다면 아무도 복음을 들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성도들이 전도의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복음을 잘 전해야 하지만, 특별히 복음을 전하도록 공적으로 부름을 받고 세움을 받은 설교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실하게 전해야 합니다. 이 일에는 많은 도전과 난관이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잘 전해지고 잘 가르쳐져야 합니다(딤후 4:2 참조). 우리가 모두 다 설교자가 되고 선교사가 될 수는 없겠지만 우리 중 누군가는 여전히 복음을 위해서 자신의 삶을 전적으로 헌신하는 설교자가 되어야 합니다. 전하는 자가 없으면 듣지 못하고, 듣지 못하면 믿을 수 없고, 믿지 못하면 주의 이름을 부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그렇다면 전파하는 자들은 어디에서 나옵니까?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15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에게 복음이 전파될 수 있는 것은 말씀의 설교자들과 전도자들을 보내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행위로 인하여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귀에 복음이 들려지게 되기까지 수많은 일들을 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원 전에 우리의 구원을 작정하시고 예정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시고 선택하셨으며,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존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결정적으로 우리에게 설교자들을 보내십니다. 이 땅에 복음이 전파될 수 있었던 것은, 복음을 전하는 설교자들을 하나님께서 보내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설교자들과 전도자들을 보내셨기에 우리에게 복음이 선포되었고, 우리 귀에 복음이 들려졌고, 우리에게 믿음이 선물로 주어졌고, 믿게 된 우리는 주의 이름을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설교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게 담겨있습니다.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사도 바울은 이사야 52:7을 인용하여 감탄문으로 이 단락을 맺고 있습니다.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15절). 기쁜 소식(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잃어버린 자들을 찾아 산을 넘는 자들의 발길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그 발길이 있었기에 이 땅을 살아가는 오늘 우리들에게도 복음이 전해졌고, 그리하여 우리는 구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발은 아름답습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고 복음을 설교하는 일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입니다. 전파하는 자가 없으면 아무도 구원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일은 전적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설교자와 전도자들을 보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시다. 우리에게 복음이 끊임없이 선포되고 있지만 들으려고 하지 않고 믿으려고 하지 않았던 우리의 죄악을 회개합시다. 우리의 발이 좋은 소식을 전하는 아름다운 발이 되고 우리의 입이 복음을 더욱 힘 있게 전하는 아름다운 입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