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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병철 안

221016 이스라엘의 불신앙

이스라엘의 불신앙

롬 10:16-21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의 불신앙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당시 복음은 로마 제국 전역으로 빠르게 퍼져나가면서 많은 이방인들이 그리스도께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조상 대대로 하나님을 믿고 섬겨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복음을 거부하고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방인들은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부하고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는 현상을 보며 의아하게 생각하면서 복음에 대한 확신을 잃어버리고 낙망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언약 백성이라는 사실만을 맹신하고 거기에 안주한 나머지, 자신들의 불신앙을 계속해서 정당화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의 불신앙의 문제를 반드시 다루어야 했습니다.


주여 우리의 전하는 바를 누가 믿었나이까?(16절)

바울은 먼저 “그러나 저희가 다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였도다”(16a절)라고 하였습니다. 즉 모든 유대인들이 다 복음에 순종하지는 않았다는 말입니다. 물론 모든 유대인들이 다 복음을 거부하고 다 복음에 불순종한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열두 제자들도 모두 유대인이었고 사도 바울도 유대인이었으며, 예루살렘 교회 역시 주로 유대인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유대인들이 모두 다 복음을 순종하고 그리스도를 믿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들보다는 믿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다수였습니다. 이처럼 복음이 전파된다고 해서 복음을 들은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복음이 전파될 때에 복음에 불순종하는 자들이 많이 있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유대인들조차도 다수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의 불신앙은 그렇게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곧바로 이사야 53:1을 인용하였습니다. “이사야가 가로되 주여 우리의 전하는 바를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16b절).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복음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복음을 전하면서도 “주여 우리의 전하는 바를 누가 믿었나이까?”라고 탄식해야 했습니다. 이사야가 생각할 때에 아무도 자신이 전하는 복음을 믿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믿는 자가 적었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의 불신앙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바울 당대의 유대인들의 불신앙도 바로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17-18절)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왜 믿지 않은 것입니까? 그들이 믿지 못했던 것은 그들에게 복음이 들려지지 않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은 말씀을 듣기는 들었지만 거기에서 그리스도를 듣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17절)고 하셨습니다. 진정한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그리스도에 관한 말씀, 곧 참된 복음)”을 듣는 것으로 말미암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는 것이 맞지만, 아무 말이나 들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것을 통해서만(διὰ) 참된 믿음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설교자들은 그리스도를 설교해야 합니다. 모든 설교는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이어야 하고 그리스도를 들려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구약성경에서 정말로 들어야 하는 복음의 핵심인 그리스도를 듣지 못했고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했기에 그들은 믿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지 못했던 것은 그들에게 들려져야 했던 복음이 선포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18절). 바울은 그들에게 복음의 말씀이 충만하게 선포되었다고 말하면서, 시편 19:4을 인용하였습니다.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뇨 그렇지 아니하다.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18절). 시편 19편은 온 우주 만물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일반계시로서 우리에게 주어졌음을 노래하는 시편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구절을 인용하면서 구약시대와 비교했을 때, 복음은 온 세상에 훨씬 더 충만하게 선포되고 있음을 강조합니다. 특별히 유대인들을 향해서는 그들이 핑계할 수 없을 정도로 더욱 충만하게 복음이 증거되고 있었습니다.


내가 백성 아닌 자로써 너희를 시기 나게 하리라(19-21절)

이스라엘의 불순종에 대하여 모세는 일찍이 신명기 32장에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내가 백성 아닌 자로써 너희를 시기 나게 하며 미련한 백성으로써 너희를 노엽게 하리라”(19절; 신 32:21). 신명기 32장은 가나안 입성을 목전에 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장차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들을 대하실 것인지를 경고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아닌 것으로 하나님의 질투를 일으키면 하나님도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자들로 백성의 질투를 일으키실 것이며, 이스라엘이 허무한 것(우상)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격발하면 하나님도 우준한 민족(이방인)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의 분노를 격발하겠다고 하셨습니다(신 32:21).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장차 복음을 믿지 않을 것을 아셨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이 복음을 거부하고 그리스도를 믿지 않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을 가까이 하시고 자기 백성으로 삼으심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의 질투를 일으켜서 이스라엘이 다시 하나님께로 돌이킬 수 있도록 하시겠다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또한 바울은 이사야 65:1-2을 인용하였습니다. 이사야는 담대하게 외치기를, 하나님께서는 구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찾은바 되고 하나님에게 문의하지 않는 자들에게 나타나시는 분이라고 하였습니다(20절; 사 65:1).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듭거듭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외면하였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향해 “내가 여기 있노라, 내가 여기 있노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사 65:1). 하나님은 구약시대 내내 불순종하고 자기 생각을 좇아 불선한 길로 행했던 패역한 백성에게 종일 그의 손을 벌리신, 그런 분이십니다(21절, 사 65:2).


지금도 많은 이들이 복음을 듣고도 복음을 거부하고 그리스도를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에 우리의 가족들과 이웃들이 계속 복음을 거부하고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다고 해서 낙망하지 마십시오. 유대인들조차도 다수가 복음을 거부하고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뿌리 깊은 불신앙입니다. 인간의 뿌리 깊은 불신앙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지금도 구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찾은바 되고 문의하지 않는 자들에게 나타나십니다. 하나님은 유대인들을 한 번도 포기하신 적이 없었고 마찬가지로 이방인들을 버리신 적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믿지 않는 자들에게 종일 손을 내미시면서, “내가 여기 있노라, 내가 여기 있노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힘써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전하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리 많은 말을 해도 아무 것도 말하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모든 설교와 전도가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 되게 해주시기를 늘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말씀을 신실하게 전하는 교회로 서고 이 강단에서 그런 신실한 설교자가 끊임없이 유지될 때, 우리 가운데에서 계속해서 믿는 자들이 일어날 소망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믿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낙망하지 마십시오. 예전부터 그러한 불신앙은 늘 있어왔습니다. 인간의 뿌리 깊은 불신앙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신 적이 없고,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택하신 자들이 있으니, 더욱 힘써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혹시 복음을 넘치게 듣고도 유대인들처럼 아직도 복음을 거부하는 분들이 있다면 그리스도께로 나아오십시오. 주님께서 펴신 팔로 여러분을 영접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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