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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병철 안

[22년 여름성경학교] 요나 3장

바다에 던져져 생사의 기로에 섰을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어떻게 비참한 처지에 있었는지, 그리고 그때에 하나님을 기억하며 기도했다는 사실과 그 결과 요나를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찬송하였습니다. 하지만 요나의 기도에는 중요한 내용이 빠져 있었습니다. 즉, 그는 자기 죄를 고백하거나 하나님의 용서의 은혜를 구하지 않습니다. 요나는 하나님께서 위경 중에 있는 자기 생명을 보존해주신 것은 감사했으나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했고 하나님의 은혜를 부분적으로만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과정 중에 있는 요나를 사랑하셨고, 그를 다시 물밖으로 나오게 하셨습니다.



1-2 주님께서 또다시 요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어서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이제 내가 너에게 한 말을 그 성읍에 외쳐라."

이렇게 큰 물고기 뱃속에서 살아나온 요나에게 또 다시 하나님의 말씀이 임합니다. “너는 어서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이제 내가 너에게 한 말을 그 성읍에 외쳐라.”(2절) 하나님께서는 처음 요나에게 하신 명령과 동일한 명령을 요나에게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 하셨던 명령을 취소하거나 바꾸지 않으시고 요나에게 순종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종종 우리 부모님들은 처음 우리에게 하셨던 말을 바꾸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가 부모님이 말씀하신 대로 하기 싫어하거나 불순종할 때에 우리가 좀 더 쉽게 부모님의 말씀을 따르도록 하시려고 그렇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친구들은 부모님의 말씀을 즐거운 말씀으로 따르려 하지 않고 오히려 습관적으로 불순종하는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이것은 매우 잘못된 태도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는 결코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양보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대항하여 우리 자신의 생각이나 뜻을 앞세우고 하나님을 이기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물론 부모님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불순종하고 우리 자신의 사사로운 생각과 마음을 좇아 고집을 피우는 태도는 우리 자신을 괴롭게 할 뿐입니다. 요나를 보십시오!



3-4 요나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곧 길을 떠나 니느웨로 갔다. 니느웨는 둘러보는 데만 사흘길이나 되는 아주 큰 성읍이다. 요나는 그 성읍으로 가서 하룻길을 걸으며 큰소리로 외쳤다. "사십 일만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진다!"

이처럼 다시 한 번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에 요나는 순종합니다. 이때 요나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기쁨과 감사로, 스스로 원하는 마음으로 니느웨로 향했을까요? 니느웨에 있는 영혼들이 구원얻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마음으로 나아갔을까요? 안타깝게도 요나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물론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이 처음 임했던 1장에서와는 달리 이번에는 일단 순종하는 것 같습니다. 요나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길을 떠나 니느웨로 향합니다. 그리고 이런 요나를 통해 니느웨에서는 매우 놀라운 일들이 벌어집니다.

니느웨는 매우 큰 성읍입니다. 당시 매우 큰 세력을 자랑했던 앗시리아의 수도답게 니느웨는 도시 전체를 둘러보는데 꼬박 3일이나 걸릴 정도로 매우 큰 도시였습니다. 축구 코트를 1,000개 정도 붙여놓은 면적의 거대한 도시였고 그 안에는 공중 정원과 저수지, 공원, 수로와 큰 도로, 이중으로 된 성벽, 도서관, 앗수르 왕이 머무는 궁전 같은 매우 웅장한 건축물들이 가득찬 도시입니다.

이런 도시에서 요나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사십 일만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진다!” 하나님께서 처음 요나에게 니느웨에 전하라고 하신 말씀은 무엇이었을까요? 확실한 것은 요나가 니느웨에 전하고 있는 것처럼,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진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니느웨에 심판이 임할 것을 전하실 때에는 분명 그들의 회개를 촉구하는 내용도 함께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심판하실 생각이었다면, 이런 말씀을 굳이 니느웨에 전하지 않으셨어도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요나는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온전히 전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는 그저 “사십 일만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진다!”라고 외쳤습니다. 회개를 촉구하거나 하나님의 용서의 은혜와 같은 내용들은 전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요나의 불성실함을 보여주는 증거가 또 있습니다. 니느웨는 매우 큰 성으로 3일 길을 꼬박 다녀야 성 전체를 다 돌아볼 수 있는데, 요나는 겨우 하룻길만을 다니며 말씀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즉, 요나는 여전히 니느웨 성 사람들이 죄에서 돌이켜 살게 되기를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5 그러자 니느웨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그들 가운데 가장 높은 사람으로부터 가장 낮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두 굵은 베 옷을 입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처럼 불성실한 선지자가 불완전한 말씀을 받은 니느웨 백성들의 반응입니다. 니느웨 백성들의 반응은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니느웨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그들 가운데 가장 높은 사람으로부터 가장 낮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두 굵은 베 옷을 입었다.”(5절) 니느웨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들은 선지자의 외모를 보고 선지자와 그의 말을 무시하거나 가볍게 여기지 않았고 오히려 선지자가 전하는 말씀을 들었고 그 말씀을 보내신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또한 니느웨 백성들은 금식을 선포하고 가장 높은 사람으로부터 가장 낮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다 굵은 베 옷을 입었습니다. 금식과 굵은 베옷을 입는 것은 앗수르 사람들의 관습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관습입니다. 하지만 니느웨 사람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관습으로가 아니라 요나를 보내신 이스라엘 하나님께 합당한 모습이 무엇인지를 찾아 그 방식대로 하나님께 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6-9 이 소문이 니느웨의 왕에게 전해지니, 그도 임금의 의자에서 일어나, 걸치고 있던 임금의 옷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잿더미에 앉았다. 왕은 니느웨 백성에게 다음과 같이 선포하여 알렸다."왕이 대신들과 더불어 내린 칙명을 따라서, 사람이든 짐승이든 소 떼든 양 떼든, 입에 아무것도 대서는 안 된다. 무엇을 먹어도 안 되고 물을 마셔도 안 된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모두 굵은 베 옷만을 걸치고, 하나님께 힘껏 부르짖어라. 저마다 자기가 가던 나쁜 길에서 돌이키고, 힘이 있다고 휘두르던 폭력을 그쳐라. 하나님께서 마음을 돌리고 노여움을 푸실지 누가 아느냐? 그러면 우리가 멸망하지 않을 수도 있다."

6-9절은 니느웨의 왕이 보인 반응도 묘사하고 있습니다. 니느웨 백성들뿐만 아니라 니느웨의 왕이 보여준 태도는 더욱 인상적입니다. 니느웨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이 왕궁에 있던 왕의 귀에 들어갔을 때, 그는 왕의 자리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잿더미에 앉습니다. 왕이 왕복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으며 잿더미에 앉는 것은 자기 자신을 지극히 낮춘 겸비의 표현이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있는 그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모든 백성들에게도 조서를 내렸습니다. 조서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왕이 대신들과 더불어 내린 칙명을 따라서, 사람이든 짐승이든 소 떼든 양 떼든, 입에 아무것도 대서는 안 된다. 무엇을 먹어도 안 되고 물을 마셔도 안 된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모두 굵은 베 옷만을 걸치고, 하나님께 힘껏 부르짖어라. 저마다 자기가 가던 나쁜 길에서 돌아키고, 힘이 있다고 휘두르던 폭력을 그쳐라. 하나님께서 마음을 돌리고 노여움을 푸실지 누가 아느냐? 그러면 우리가 멸망하지 않을 수도 있다.”(7하-9)

니느웨 왕은 백성들에게 아무 것도 먹지 말도록 하였습니다. 사람 뿐만 아니라 짐승까지도 물조차 마시지 않게 하였습니다. 먹고 마시는 것은 우리 생명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동시에 큰 기쁨을 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니느웨 왕은 이러한 본능을 억제하고 하나님께만 모든 것을 의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는 사람과 짐승 모두에게 굵은 베 옷을 걸치고 하나님께 힘껏 부르짖으라고 호소합니다. 오늘날에는 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당시는 신의 존재를 받아들일 뿐 아니라, 특히 다신론이 팽배해 있던 시대입니다. 그런 시기에 이방 나라의 선지자 하나가 와서 자기 신의 말씀을 전한다고 하여 그 말을 듣고 자기 신을 버리고 선지자가 섬기는 이방 신께 부르짖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또 니느웨 왕은 이렇게 힘껏 하나님께 부르짖을 뿐 아니라, 그들의 악한 행위에서도 돌이킬 것을 촉구하였습니다. 그는 회개란 제사나 서원을 지키는 하나의 외적인 의식이 아니라 삶의 변화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요나서의 저자는 요나입니다. 제가 만약 요나라면 제가 어떻게 니느웨에 이르렀고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는지를 설명하는 데에 많은 분량을 할애했을 것 같은데, 요나는 니느웨 사람의 반응, 그 중에서도 니느웨 왕의 반응을 매우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왜 요나는 이렇게 했을가요? 무엇을 요나는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우리는 니느웨 백성들과 왕의 회개를 보면서 2장에서의 요나의 회개를 비교하게 됩니다.

2장에서 요나는 하나님께 자기 생명을 건져주신 사실을 감사하지만, 정작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태풍을 보내시고, 선원들의 질책을 통해 요나를 꾸짖으시며, 제비를 통해 요나의 죄를 지적하시지만 정작 요나는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바다에 던져진 요나는 그제서야 기도를 시작하지만, 그의 기도 안에서 우리는 진정한 회개를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반면 니느웨 백성들은 이방 나라에서 온 초라한 선지자, 그것도 불성실한 선지자의 불완전한 전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온 마음으로 회개하고 있습니다. 금식을 선포하고 굵은 베옷을 입고 하나님께 힘껏 부르짖고 있습니다. 말로만이 아니라 그들의 손과 발로 짓고 있는 모든 악한 길에서 돌이키고 있습니다.

베옷을 입고 금식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할 사람, 자기가 가던 나쁜 길에서 돌이켜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요나입니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요나는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용서하시고 돌이키시는 은혜에 대해 불평하며 불만을 쏟아놓습니다(4:1-3).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런 요나를 버리거나 심판하지 않으시고 오래 참아주시면서 그를 설득하십니다(4:4-9).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하나님의 백성과 선지자가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가 다른 이방인들보다 더 잘 순종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까? 더 선하고 의로운 사람이기 때문입니까? 더 회개를 잘 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요나에게서는 결코 그 이유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요나를 하나님의 백성과 선지자가 되게 하신 이유를 요나가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만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가 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우리가 교회 밖에 있는 다른 친구들보다 더 착하고 정직한 사람이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친구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만한 저급한 사람이고,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만한 자질을 갖춘 사람이기 때문입니까? 우리에게 어떤 자격과 공로가 있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얻어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는 그 사랑을 받을 뿐이고 그 사랑을 발견할 뿐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선함과 의로움을 자랑할 것이 아니라 니느웨 사람들처럼 우리의 죄인된 것을 날마다 인정하고 하나님의 은혜만을 의지하며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요나와는 비교할 수 없는 뛰어난 선지자,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못난 선지자인 요나와 완전히 다른 선지자이십니다. 그분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즐거이 순종하셔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증거하셨습니다. 자신의 온 삶을 통해,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뜻을 우리에게 보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삶과 죽음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를 깨달아 우리도 하나님께로 돌아갑시다.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어니와 요나보다 더 큰이가 여기 있으며.”(마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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