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13:8-10
본문의 주제는 “사랑”입니다. 사랑이라는 주제는 갑작스러운 주제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이미 로마서 12장에서 우리에게 신자들과의 관계(3-13절)나 불신자들과의 관계(14-21절)를 사랑으로 해나가야 할 것을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13장에서는 불신자와의 관계의 대표적인 한 예로 위정자들을 대할 때에 기본적으로 그들을 귀히 여기며 순복해야 할 것을 교훈했습니다(1-7절).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8절)는 권면으로 시작되는 오늘 본문은 로마서 12-13장의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마무리가 됩니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그 무엇도 빚지지 말라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8절)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너희는 서로 사랑하는 것 말고는, 그 누구에게든지 그 무엇도 빚지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 누구에게든지(Μηδενὶ), 그 무엇도(μηδὲν)” 빚지지 말라고 강조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의 빚 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그 어떤 빚도 지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의 빚을 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말로 다 할 수 없는 큰 사랑의 빚을 진 사람들입니다. 이제까지 하나님에게 받은 사랑은 물론이고, 사람에게 받은 사랑도 심히 큽니다. 우리 모두는 일평생 갚아도 다 갚을 길이 없는 사랑의 빚을 진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부모님들과 가족들에게, 교회와 성도들에게, 이름도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우리는 갚을 수 없는 사랑의 빚을 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의 빚 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그 무엇도 빚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빚지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신용카드를 사용하거나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때에도 자기의 능력 범위 안에서 하는 것이 좋습니다. 자기의 능력 범위를 벗어나서 빚을 내면서까지 큰 사업을 하거나 큰 수입을 얻으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다가 예상대로 수입을 얻지 못해서 파산하게 되면 많은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주고 맙니다.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 빚도 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빚지다”라는 뜻의 헬라어 동사 오페일로(ὀφείλω)는 “빚지다(owe)”라는 뜻도 가지고 있지만, “~을 해야 한다(ought to)”는 뜻으로 더 자주 사용됩니다. 그래서 이 “오페일로” 동사를 “~을 해야 한다”는 뜻으로 번역하면, 8절 말씀은 “너희는 서로 사랑하는 것 말고는, 그 누구에게든지 그 무엇도 하지 말라”는 뜻이 됩니다. 이 말씀은 결국 다른 사람을 사랑만 하고, 사랑하는 것 말고는 그 누구에게도 “다른 짓”을 하지 말라는 명령입니다.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고전 16:14)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신자에게든지 불신자에게든지 그 누구에게든지 사랑하는 것 말고는 그 무엇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남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우리의 사랑의 대상은 “남”입니다.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8b절)고 하셨습니다. “남”이란 문자적으로는 ‘다른 이’(헬라어로 헤테론)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만나게 되는 “모든 사람”이 다 “남”입니다. 여기에는 신자나 불신자나 모두 포함됩니다. 어떤 율법 교사가 예수님께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눅 10:29)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한 선한 사마리아인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 거의 죽게 되었을 때, 그곳을 지나가던 제사장과 레위인은 그를 보고도 피하여 지나갔지만 한 사마리아인은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그의 상처를 치료해주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준 것을 말씀하시고는, 그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고 되물으셨습니다(눅 10:25-37). 이로써 예수님은 우리의 이웃이 별세계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나는 사람이 다 우리의 이웃이고, 우리가 그에게 자비를 베풀 때 그는 우리의 이웃이 되고 우리는 그들의 이웃이 된다는 진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가 만나게 되는 모든 사람들이 바로 우리가 사랑해야 할 우리의 이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남”입니다. “남”은 나와는 “다른(헤테론)”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나와 모든 것이 다릅니다. 사람들은 자기와 다른 사람들을 별로 안 좋아합니다. 서로 사랑해서 결혼한 부부도 살아보면 많은 부분에서 안 맞습니다. 많은 부분에서 다르고 안 맞습니다. 하지만 사랑은 나와 다른 “남”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나와는 성격도 다르고 스타일이 다르고 말투도 다르고 자라온 배경도 다르고 신앙 정도도 다르지만, 나와 다른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모두 내 마음 같지가 않고, 모두 내 마음에 차지 않고, 모두 내 상식과 기대에는 못 미칩니다. 때로 우리를 깊이 실망시키고 우리에게 손해를 끼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 사랑스러운 사람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남”, 곧 나와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마 5:47)고 하셨습니다.
또한 우리의 사랑의 대상은 “이웃”(10절)입니다. “이웃”이라는 말의 헬라어 “플레시온(πλησίον)”은 본래 “근처의(near), 가까이에(close by)”라는 뜻의 명사적 부사입니다. 우리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의 이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까이에 두셔서 가정과 교회와 사회와 세상에서 늘 마주치게 하시는 사람들이 우리의 이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우리에게 붙여주시고는 그들을 사랑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갚을 길이 없는 사랑의 빚을 진 자들이기에 사랑하도록 붙여주신 우리의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은 주님의 명령이요 새 계명입니다(요 13:34). 특별히 우리가 사랑해야 할 가장 가까운 이웃은 우리의 가족과 성도입니다. 그들을 먼저 아끼고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거나 나쁜 일을 하지 않고 오히려 선을 행합니다. 이것이 참된 사랑의 속성이고 사랑의 방식입니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10절)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악을 행하고 해를 입히고 싶겠습니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영적, 신앙적 손해를 끼치고, 정신적, 감정적인 상처를 주고, 명예에 손상을 입히고, 신체적 위해(危害)와 경제적 손실을 주고 싶겠습니까?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상대방의 진정한 유익을 도모하는 것입니다.
참된 이웃 사랑은 이웃에게 살인하지 않는 것이고 간음하지 않는 것이고 도적질하지 않는 것이고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십계명의 둘째 돌판의 내용을 요약하면서 결국 이 모든 계명들은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말씀 가운데 다 들었다고 하였습니다(9절). 우리가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 사람을 해하고 죽이겠습니까? 사랑하는 자의 것을 도적질하며 탐내겠습니까? 사랑하는데 상대방에게 간음의 죄를 짓고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그런 것은 정상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않습니다. 그래서 사랑은 하나님의 계명의 강령이며 율법의 완성입니다(10절).
우리는 왜 이렇게 사랑만 하며 살아야 합니까?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갚을 길이 없는 사랑의 빚을 진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맙시다. 사랑하는 것 말고는 그 누구에게도 그 무엇도 하지 맙시다. 우리가 사랑의 빚진 자들이 된 것처럼, 우리의 이웃들을 사랑함으로 그들을 사랑의 빚진 자로 만듭시다.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말고 선을 행함으로 모든 면에 유익을 끼치는 사랑을 합시다. 특별히 우리와 가까운 이웃들을 사랑하고 믿음의 형제들과 서로 사랑합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인 것을 모든 사람에게 알리고 복음을 빛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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