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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병철 안

230430 바울의 세 가지 소원

롬 15:22-33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남은 삶에 대한 소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몇 가지 소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제까지 바울은 예루살렘에서부터 일루리곤까지의 광대한 지역을 두루 다니며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기 위해 쉼 없이 달려왔고, 바울의 몸과 마음은 지칠 대로 지쳤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자신의 남은 날들 동안 편안하게 쉬려고 하는 마음보다는 복음을 위하여 좀 더 일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를 마무리하면서 자신의 소원을 기도 제목의 형태로 알리면서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소원을 세 가지로 말했습니다. 바울의 첫 번째 소원은 예루살렘에 가고 싶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 소원은 로마에 가고 싶다는 것이었고, 세 번째 소원은 서바나(스페인)에 가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25-28절)

바울은 먼저 “성도들 섬기는 일”을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가기를 소원했습니다(25절). 당시 유대 땅에는 큰 기근이 일어나서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방인 교회들은 자신들의 모교회와도 같은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을 위해서 구제헌금을 모아서 전달하기로 하고 그 전달을 사도 바울에게 부탁했던 것입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고자 했던 데에는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었는데, 그것은 바울이 사랑하는 동족 유대인들에게 한 번이라도 더 복음의 진수를 증거하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구제의 일을 확증하는 동시에(28절),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그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행 20:22-24).


마게도냐와 고린도 지역의 성도들은 자신들이 복음의 빚진 자라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습니다(27절). 그들은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신령한 것을 받았으니 빚진 자로서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과 육신의 것을 나누는 것은 마땅하다고 여겼습니다(27절). 그들이 경제적으로 여유가 많고 풍족해서 도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큰 환난의 시련을 겪고 극심한 가난으로 힘들었지만, 오히려 기쁨과 자원함으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였습니다(26절, 고후 8:2). 교회 역사 가운데 모든 신실한 교회들이 다 그렇게 했습니다. 한국에 복음이 전해진 것도 영국과 미국과 호주와 캐나다와 화란의 교회와 성도들이 기도하면서 많은 젊은 선교사들을 이곳에 보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위해서는 매우 검소한 생활을 하였지만, 낯선 이방 땅에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해서는 아낌없이 후원하였습니다.


토론토 대학교의 의학교수였던 올리버 에비슨 박사는 조선에 의료 선교가 필요하다는 언더우드 선교사의 강연에 감명을 받아 교수직을 그만 두고 아내와 세 자녀를 데리고 조선 땅에 왔습니다(1893년 8월). 7년 동안의 사역 후 안식년으로 잠시 귀국한 에비슨은 뉴욕에서 열린 만국 선교대회에 참석해서 조선의 선교에 대해 발표하면서, 보다 큰 규모의 병원 설립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였는데, 그의 연설을 듣고 감동을 받은 한 노인이 그에게 찾아와 병원 건축 기금 1만 달러를 기부하였습니다. 그 장로님의 이름은 바로 루이스 세브란스(1838~1913)였습니다. 그리하여 한국 최초의 근대식 병원인 세브란스 병원이 설립되었습니다. 세브란스 씨는 1907년에 서울에 직접 와서 병원의 건물을 보고는 만족해하면서, 의학생들을 가르칠 공간과 입원실이 없는 것을 보고 3만 달러를 추가로 기부하였습니다. 그 건물이 완공되던 해인 1913년에 세브란스 씨는 별세했지만, 그 자녀들은 세브란스 장로님의 유지를 따라 세브란스 병원에 12만 4500달러를 더 기부했다고 합니다.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역의 성도들도 그러하였습니다.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너희에게 가려는 원이 있었으니(22-24, 28-29절)

또한 바울은 예루살렘에서의 일을 마친 후에 로마로 가기를 원했습니다. 사실 바울은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로마에 가기를 소원하였습니다(22-23절, 롬 1:10-13). 바울은 왜 그토록 로마에 가기를 소원하였습니까? 바울은 로마 교회의 성도들과 복음 안에서 교제하면서 로마 교회를 복음 위에 더욱 굳건하게 세우기를 원하였기 때문입니다(24절). 로마 교회는 로마 제국의 수도인 로마에 있는 교회였습니다. 로마 교회는 지정학적으로 볼 때 이방인 선교의 요충지였습니다. 동시에 로마 교회는 매우 세속적인 환경에 처해 있었습니다. 로마 제국은 종교 백화점이라고 불릴 만큼 많은 이방 종교들이 있었습니다. 로마는 그런 로마 제국의 수도였습니다. 만일 로마 교회가 복음의 본질을 정확하게 붙잡지 못하여 변질되고 흔들리면 로마 제국 내의 복음 전파가 크게 위축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바울은 이를 염려하여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 구원의 복음의 진수를 전해주고서 그들과 교제하고 그들을 말씀으로 권면하고 더 잘 세워주기를 원하였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로마 교회가 바울의 선교 사역의 후원 교회가 되고 동역 교회가 되어주기를 바랬습니다. 바울이 “너희의 그리로 보내줌을 바람이라”(24절)고 말할 때에, 바울은 바로 이것을 의미했던 것입니다. 이제까지 바울의 1,2,3차 선교 여행은 안디옥 교회가 주로 후원하였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로마 교회도 이방인 선교의 책임과 부담을 져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스페인은 로마의 이웃입니다. 그러니까 복음에 빚진 자로서 로마 교회는 이방인 선교의 일익을 담당하는 것이 마땅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꼭 로마에 가서 그곳의 성도들과 교제하고 그들의 후원을 받아 스페인에까지 복음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너희에게를 지나 서바나로 가리라(23-24, 28-32절)

또한 바울은 로마를 지나 스페인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고자 하였습니다. “내가 이 일을 마치고... 서바나로 가리라”(28절). 사도 바울은 이사야 66장에 예언된 대로 “다시스”에도 복음이 전파되는 모습을 보기를 원했습니다(롬 15:21; 사 66:19 참고). 다시스는 다름아닌 스페인의 한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꼭 스페인에서도 복음 전하기를 열망하였습니다.


하지만 바울이 스페인에 가기까지에는 여러 험난한 일들이 예상되었습니다. 당장 예루살렘에 가서도 유대 땅에 있는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31절)로 인해 거센 반발이 예상되었습니다. 로마로 가는 것 역시 이제까지 여러 번 길이 막혀왔던 일입니다. 선한 일이라고 해서 어려움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일에는 언제나 도전과 반대와 위험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찾고 그것을 열망하고 그것을 위해 기도하였고,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도 기도를 부탁하였습니다(30-32절).


우리도 우리의 남은 삶에 대한 분명한 소원과 꿈과 열망과 계획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남은 삶에 대해 어떤 계획과 목표와 소원을 가지고 있습니까? 아무 것도 바라는 것이 없이 이럭저럭 살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바울은 이 땅에서 허투루 살다가 주님 앞에 서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바울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주님을 위해 하나라도 무언가를 더 하고자 했고, 이를 위해 모든 불편을 기꺼이 감수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위하여 무언가를 계속 꿈꿨고 소원했고 열망했고 기도했습니다. 바울의 꿈과 열망과 소원은 복음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모든 허탄한 소원을 버리고, 선한 것을 소원하고 꿈꾸고 계획하고 열망하며 기도합시다. 그 소원을 위해 힘써 일합시다. 일할 수 없는 밤이 속히 올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충성스럽게 그 일을 하고, 또한 교회의 복음 사역에 동참합시다. 그렇게 살 때에 평강의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와 함께 해주시며 우리의 삶을 복 주실 것입니다(33절). 그렇게 살다가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마 25:21) 하시는 주님의 칭찬을 받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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