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94:1-23
시편 93편의 주제가 “여호와의 통치”라면, 시편 94편의 주제는 “여호와의 복수”입니다. 이 세상에는 참으로 많은 악들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악이 준동하고 악인들이 횡행하는 모습을 볼 때,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된 성도들이 이 세상의 악들을 당하고 환란을 당하는 모습을 볼 때에, 우리는 과연 하나님의 통치는 어떻게 된 것인가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여호와의 통치를 굳게 믿고 찬송함에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이 바로 이 세상의 악의 문제입니다. 시편 94편은 바로 이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복수하시는 하나님(1-7절)
시편 94편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여호와여, 보수하시는 하나님이여 보수하시는 하나님이여 빛을 비취소서”(1절). “보수하시는”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느카못”은 “복수(vengeance), 보복(revenge), 앙갚음(avenge)”이라는 뜻의 명사입니다. 하나님은 복수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복수는 세상의 인간들의 주관적이고 감정적이고 악에 받친 복수와는 다른 복수입니다. 하나님의 복수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절대 공의에 근거한 정당한 복수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악에 대하여 철저히 보응하시고 보복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심판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세계를 판단(심판)하시는 주님”(2절)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악과 악인들을 판단하고 심판하시는 심판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악에 대해 복수하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은 여호와의 통치에 대해 실망하고 의심하는 자들의 문제를 해결해줍니다. 시편 기자는 복수와 심판의 하나님께서 속히 빛으로 나타나주시기를(1절), 또한 악인들에게 그들의 죄에 상응하는 형벌을 내려주시기를(2절), 그리고 악인들이 더 이상 승전가를 부르지 못하게 해달라고 간구하였습니다(3절).
악인들은 이 세상에서 온갖 악을 행하면서도 번성하고 힘이 막강합니다. 그들은 지금 자신들이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다 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함부로 지껄이며 오만하게 말합니다(4절). 그들은 죄를 지으면서도 죄를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떠버립니다(4절). 그들은 주의 백성을 파쇄하고 주의 택하신 기업을 곤고하게 합니다(5절). 그들은 힘이 없는 과부와 나그네를 죽이며 고아를 살해하는 악을 저지릅니다(6절). 그러면서도 “여호와가 보지 못하며 야곱의 하나님이 생각지 못하리라”(7절)고 말합니다. 그들은 끔찍한 악을 저지르면서도 하나님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8-15절)
그래서 하나님은 악인들을 향해 이렇게 경고하십니다. “백성 중 우준한 자들아 너희는 생각하라. 무지한 자들아 너희가 언제나 지혜로울꼬”(8절). 그들이 너무나 어리석었습니다. 귀를 지으신 자가 듣지 못하겠으며 눈을 만드신 자가 보지 못하겠습니까?(9절) 하나님은 세상의 나라들이라도 얼마든지 꾸짖고 벌하는 분이십니다(10절). 그런데도 하나님이 악인들을 벌하지 못하시겠습니까? 사람을 이성적인 피조물로 창조하시고 인생들을 지식으로 교훈하시는 분께서 지식이 없겠습니까?(10절) 여호와께서는 모든 지각에 뛰어나시며, 사람의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고 허무한지를 아시는 분입니다(11절, 고전 3:20 참조). 그러므로 악인들은 그들의 입을 가리고 그들의 어리석은 악행에 대한 하나님의 보응과 심판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의인들을 향해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의 징계를 당하면서 주의 법(말씀)으로 교훈하심을 받는 자가 복이 있다”(12절). 성도들은 이 세상의 악인들로부터 고난을 당하고 박해와 압제를 당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성도들에게 임하는 고난은 모두 아버지 하나님의 손으로부터 오는 훈육과 징계와 책망(히, 야사르, discipline)입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손으로 징계와 책망과 훈육을 받는 자들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할 때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교훈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12절). 하나님은 악인들을 위해서는 심판의 구덩이를 예비하고 계시지만, 하나님의 자녀와 백성들에게는 환난의 날에도 평안을 주실 것입니다(13절). 여호와는 자기 백성을 결단코 버리지 않으시며, 자기 소유된 기업을 떠나지 않으십니다(14절). 공의가 다 무너진 것 같고 세상은 너무나도 불의하고 잘못 돌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정의(justice)가 의인에게로 돌아올 것이며, 마음이 정직한 자들은 모두 그것(정의)을 따르게 될 것입니다(15절).
성도들을 돕고 붙들고 위로하시는 하나님(16-23절)
시편 기자는 이 모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모든 성도들을 대표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누가 나를 위하여 일어나서 행악자를 치며 누가 나를 위하여 일어서서 죄악 행하는 자를 칠꼬”(16절). 이것은 시편 기자가 답을 몰라서 하는 질문이 아닙니다. 선지자는 그 답을 잘 알고 있습니다. 누가 일어납니까? “여호와께서!”(17절) 그렇게 해주실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마치 연극 무대에 오른 배우가 독백을 하듯, 또는 오페라 무대에 오른 가수가 독창(아리아)을 하듯, 이렇게 고백하며 노래합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도움이 되지 아니하셨더면 내 혼이 벌써 적막 중에 처하였으리로다”(17절). 하나님은 성도들의 도움이 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돕지 아니하셨다면 이 악하고 두려운 세상에서 우리 목숨은 벌써 망하고 죽어서 적막한 곳으로 갔을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성도들을 붙들어주십니다. 시편 기자는 자신이 이 세상에서 시험에 들고 실족하여 미끄러지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주의 인자하심(신실한 사랑)으로 붙들어주셨다고 고백합니다(18절). 그리고 그의 속에 생각과 염려와 근심이 많았을 때에는, 여호와께서 주의 위로로 그의 영혼을 달래주시고 즐겁게 해주셨다고 노래합니다(19절). 성령님께서는 특별히 그의 말씀으로 우리를 위로하시고, 우리의 영혼을 즐겁게 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제까지 우리에게 위로의 말씀을 얼마나 많이 주셨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말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말씀,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신다는 말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지게 하신다는 말씀, 독생자를 보내주셨다는 말씀, 주 안에서 우리의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않으리라고 하신 말씀, 이러한 말씀들에서 우리는 큰 위로를 얻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이러한 도움과 붙드심과 위로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벌써 망했을 것이고 죽었을 것입니다.
악인들은 율례를 빙자하여(하나님의 말씀을 악용하고 남용해서) 재앙을 일으키고, 의인의 생명을 노리고, 무죄한 자에게 죄를 뒤집어 씌워서 피를 흘리지만 그들은 결코 하나님의 상대가 되지는 못합니다(20-21절). 하나님은 이 악한 세상에서 성도들의 산성이시며 우리의 피할 바위가 되시기 때문입니다(22절). 반면에 주님은 악인들의 죄를 그들에게 물으시고, 그들의 악함을 벌하시며, 그들을 끊으실 것입니다(23절). 하나님은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공의의 복수와 심판을 굳게 믿읍시다. 세상에서 여러 악들을 당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에 낙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주권적인 통치를 의심하지도 말고 하나님을 원망하지도 마십시오. 여호와께서는 반드시 악을 보수하시는 복수의 하나님이며, 모든 악을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세상의 모든 악들에 대해 직접 심판하고 직접 원수를 갚으려고 하지도 마십시오. 원수 갚는 것을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원수 갚는 것이 주님께 있다고 하셨습니다(롬 12:19). 그러므로 우리는 함부로 지껄이며 악을 행하는 악인들을 오히려 불쌍히 여기면서 그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시고 떠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신뢰합시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를 도우시고 붙드시며 위로하시는, 우리의 산성이요 우리의 피할 반석이십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