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84편 1-12절
시편 84편은 고라 자손의 시입니다. 고라와 고라의 가문은 광야에서 성막을 관리하고 성막의 기구들을 운반하는 중책을 맡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고라는 자신의 위치에 만족하지 못하고 모세와 아론의 권위에 대항하여 반역을 꾀했다가 땅에 삼켜져서 죽임을 당했습니다(민 16장).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고라의 가문을 긍휼히 여기시고 고라의 아들들을 살려 주셔서 그들이 하나님의 성막과 성전에서 계속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자로 살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민 26:11). 그리하여 “고라의 자손”들은 비록 자신들이 패역하고 못난 가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살려서 계속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면서, 대대로 성전의 문지기(대상 9:17-19)와 찬송하는 자(대하 20:19)가 되어 봉사했습니다. 특별히 그들은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일에 특별한 은사를 받아 봉사하면서(대상 6:31-33), 여러 편의 아름다운 시편들을 기록했습니다(시 42, 44-49, 84-85, 87-88편). 시편 84편도 그들이 쓴 시편들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시편 84편에는 세 번이나 똑같이 반복되는 표현이 있습니다. 그것은 “복이 있나이다”라는 표현입니다(4,5,12절).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1-4절)
첫째,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4절)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집”이나 “주의 장막”(1절)이나 “여호와의 궁정”(2절)이나 “주의 제단”(3절)은 결국 다 같은 실체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 모든 곳은 하나님이 특별하게 임재하셔서 예배를 받으시는 곳인 성막과 성전을 가리킵니다. 고라의 자손들에게 있어서 성막과 성전은 그들의 거처이자 일터였습니다. 시편 84편은 고라의 자손들이 자신들의 복된 위치를 생각하며 깊이 감사하며 노래한 시편입니다. 그들은 성전에 들어가고 나가며 성전을 바라볼 때마다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1절)라고 노래하였습니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 하나님을 깊이 사랑했기 때문에, 주의 장막도 그토록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2절)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는 이유는 거기에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거하시기 때문이고, 거기에서 하나님께서 특별한 은혜, 곧 구원의 복을 베풀어주시기 때문입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으니, 그곳이 너무나 좋고 사랑스러웠습니다. 주의 제단에서 참새와 제비들도 은혜를 입는다면(3절), 주의 집에 항상 거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복과 은혜를 입겠습니까(4절)? 그래서 시편 기자는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4절)라고 노래한 것입니다. 온 세상이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지만, 지금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과 특별한 방식으로 함께 하시면서 특별한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우리와 만나주시고 우리를 붙드시고 위로하십니다.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 하는 이 고백은 우리가 주님의 교회를 생각하고 바라볼 때에 고백하는 우리의 고백과 우리의 노래가 되어야 합니다.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5-8절)
둘째,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5절)라고 하였습니다. 주께 힘을 얻는 자들이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자기 힘으로 삼는 사람, 하나님에게서 늘 힘과 은혜를 공급 받아서 살아가는 자들은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에게 힘을 얻지 않고 다른 곳에서 힘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모두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또한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그 마음이 성전에 있는 시온을 향하여 있는 모든 예배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시온을 사랑하여 성전에 이르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고 순례의 길을 걸어가는 모든 진실한 성도들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순례길에서 ‘눈물 골짜기’를 통과해야 했습니다. 눈물 골짜기는 “바카 골짜기”라는 지명의 의역입니다. 순례자들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다보면 반드시 “바카 골짜기”라고 불리는 골짜기를 지나가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시온을 사모하며 눈물 골짜기를 지나는 순례자들에게 복을 주셔서, 그 눈물 골짜기가 많은 샘의 원천이 되게 해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순례자들은 그 험악한 순례길에서 주님께로부터 힘을 얻고 더 얻어서 마침내 시온에 이르러서 하나님 앞에 각기 예배자로 서게 될 것입니다(7절). 그리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실 것입니다(8절). 그래서 주께 힘을 얻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주께 힘을 얻고 더 얻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모두 눈물 골짜기를 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눈물 골짜기를 지날 때에 흔들림 없이 시온을 향하여 나아가려면 힘을 더 얻고 얻어야 합니다. 하나님에게 힘과 위로를 얻지 못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지 못하면, 우리는 이 시온의 대로를 제대로 걸어가지 못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힘을 얻으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힘을 주시는 통로”인 은혜의 방도를 통해 힘을 얻고 더 얻어서 시온의 대로를 걸어가고 있습니까?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9-12절)
셋째,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12절). 주께 의지하는 자가 복이 있는 이유는, 하나님은 우리의 해와 방패가 되시기 때문입니다(9,12절). 시편 기자는 자신이 여호와의 궁정에서 하나님을 가까이하며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복된지를 감사하면서,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워주신 종들의 얼굴을 계속해서 돌아보아 주시기를 간구하였습니다(9절). “주의 기름 부으신 자”는 “이스라엘의 왕”을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고, 제사장을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고, 시편 기자 자신을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누구로 보아도 관계없습니다. 이것은 결국 지상의 성도들, 이 땅의 모든 예배자들, 곧 교회와 모든 하나님의 종들을 늘 불쌍히 여기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시기를 간구하는 기도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계속적인 돌아보심을 필요로 합니다. 이것이 없이는 개인도, 가정도, 교회도 온전히 은혜 위에 굳게 설 수 없습니다.
또한 시편 기자는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으며, 악인의 장막에서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집의 문지기로 있는 것이 더욱 좋다고 고백했습니다(10절). 마치 모세가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던 것처럼 말입니다(히 11:24-26).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은 해와 방패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복과 은혜와 영화(영광, 부귀)를 주시는 분이며, 주를 바라는 모든 자들에게 좋은 것을 아낌없이 주시는 분입니다(11절). 하나님은 주를 진실되이 사랑하고 섬기며 정직히 행하는 자들에게 좋은 것을 주시되 아끼지 않고 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한 날이, 도울 힘이 없는 인생들과의 천 날보다 훨씬 귀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가까이하고 항상 주를 의지하는 사람은 참으로 복이 있습니다(12절).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모두 “고라의 자손”입니다. 우리의 가문은 모두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흉악한 죄를 지은 죄인의 가문입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진멸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살려주시고 우리에게 복음을 허락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의 돌보심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게 해주셨으니,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또한 이 눈물골짜기 같은 세상을 지나가는 동안에 우리의 마음에 시온의 대로를 활짝 열어주셔서 주께 힘을 얻고 더 얻어서 이 순례의 길을 지나가게 해주셨으니 우리는 얼마나 복 있는 자들입니까? 그러므로 그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송함이 마땅합니다. 또한 주를 의지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으니, 그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며 살아갑시다. 우리 하나님은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요 해와 방패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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