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2:1-11
가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으신 예수님
요한복음 2:1-11에는 예수님께서 가나에서 열린 한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신 기적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앞서서 주님께서는 안드레와 요한과 베드로, 그리고 빌립과 나다나엘을 제자로 부르셨고(요 1:35-51), 그 후에 갈릴리의 “가나(Cana)”라는 마을로 가셨습니다(1절). 가나는 예수님이 살고 계셨던 나사렛과 가장 가까운 마을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바로 그 마을에 혼인 잔치가 있었고 그 자리에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도 함께 있었습니다(1절). 또한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도 그 혼인 잔치에 초청을 받아 참석하게 되었습니다(2절). 그런데 잔치 도중에 포도주가 떨어지는 일이 생겼습니다(3절). 유대 사회에서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은 매우 난처한 일이었습니다. 잔칫집에서 포도주가 떨어진 것은 아마도 그들이 곤핍하고 가난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때 마리아가 예수님에게 와서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3절)고 하였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이 좋은 해결책을 제시해 주리라 기대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제까지 예수님은 마리아의 장남으로서 가정의 어려운 일을 만날 때마다 현명한 판단과 좋은 해결책을 제시해 오셨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이번에도 예수님에게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면 좋겠는지 도움을 구한 것입니다.
혼인 잔치의 포도주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신 예수님
하지만 예수님은 어머니에게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4절). 예수님께서 어머니에게 “여자여”라고 말씀하신 것은 매우 낯설게 들립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어머니에게 “여자여”라고 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유대 사회에서 “여자여(귀나이)”라는 말은 나이 많은 여인을 높여 부르는 말로서, 무례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에도 사도 요한을 가리키시면서 모친 마리아에게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라고 하셨고 요한에게는 “보라 네 어머니라”고 하시며 사랑하는 어머니를 부탁하셨습니다(요 19:26-27). 예수님께서 “여자”라는 단어를 의도적으로 선택하신 것에는 한 가지 중요한 뜻이 있었습니다. “여자”라고 하는 이 말은 어머니 마리아가 창세기 3:15에서 예언된 바로 “그 여자”라는 것과, 예수님 자신이 “그 여자의 후손”임을 말씀하시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고 하신 말씀의 헬라어 원문을 직역하면 “나와 당신에게 그것이 무엇입니까?”입니다. 마리아의 관심은 혼인 잔치에 포도주를 공급하는 데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혼인 잔치에 포도주를 공급하기 위하여 오신 분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우리의 삶의 현안들, 금생의 크고 작은 문제들을 해결해주시는 해결사로 오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구원자로 오신 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그리스도이신 것을 사람들에게 알게 하시고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얻게 하시기 위하여 오신 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4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의 “때”는 일관되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요 7:6,8,30, 8:20, 12:23, 13:1, 16:32)를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로서의 영광을 가장 찬란하게 드러내실 때는 십자가에 높이 들리실 때였습니다. 하지만 아직 그 때가 이르지는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는 그 집의 하인들에게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5절)고 말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무언가 대안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여전히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항상 예수님은 옳고 지혜로우셨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표적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집에는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가 여섯 개가 있었습니다(6절). 그 돌항아리는 약 700리터의 물을 담을 수 있는 큰 항아리였습니다. 그런 항아리가 여섯 개나 되었으니 엄청난 양의 물을 담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집의 하인들에게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명령하셨고, 하인들은 그대로 아구까지 물을 채웠습니다(7절).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고 하셨고, 하인들은 그것을 연회장에게 갖다 주었습니다(8절). 연회장은 그 포도주를 맛보고는 놀라며, 신랑을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10절).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그렇다면 이 기적 사건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 기적 사건은 마리아처럼 우리도 모든 문제를 예수님에게 가지고 나아와야 한다는 단순한 교훈을 주기 위함이 아닙니다. 또는 예수님께서 결혼과 가정을 복주시기를 기뻐하셔서 제일 먼저 결혼식에 참석하셔서 그의 첫 번째 표적을 행하셨으니, 우리 모두 결혼과 가정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교훈을 주기 위함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기적 사건에서 이러한 교훈만을 가지고 돌아가는 것은 온갖 진미로 가득한 식탁에서 메인 디쉬는 먹지 않고 전채나 디저트만 먹고 포크를 내려놓는 것과도 같습니다. 예수님의 모든 기적은 표적이고, 표적의 메인 디쉬는 그리스도의 영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이 기적 사건에서 예수님께서 나타내주신 그리스도의 영광이 무엇인지를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나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켜주신 것은 표적 사건입니다.
그렇다면 이 기적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영광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구약성경에 예언된 구원자(그리스도)의 영광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약속된 구원의 날은 잔칫날과 좋은 포도주를 주시는 날로 여러 번 묘사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원을 약속하시면서, 그 구원의 날이 이르면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세상 모든 민족을 시온 산으로 부르셔서 풍성한 잔치를 베푸시고 기름진 것들과 오래된 포도주와 잘 익은 포도주로 잔치를 베푸실 것이라고 예언하여 주셨습니다(사 25:6).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그의 첫 표적을 잔치의 자리에서 행하신 것은 의미가 깊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포도주는 잔치의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안식일이나 유월절이나 결혼식 잔치에서 포도주는 빠질 수 없는 축복과 기쁨의 음료였습니다. 포도주는 하나님의 복 주심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어느 때보다도 포도주가 넘쳐야 했던 혼인 잔치 자리에 포도주가 떨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인생의 궁핍과 가난을 말해줍니다. 그들에게는 포도주가 모자랐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게다가 그것은 좋은 포도주였습니다. 연회장은 이 포도주가 어디에서 났는지 알지 못했지만, 이 포도주는 예수님에게서 온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첫 번째 표적을 잔치의 자리에서 행하심으로써 자신이 구약에 약속된 바로 그 메시아이심을 보여주신 것입니다(창 49:10-12 참조). 예수님은 우리에게 풍성한 포도주를 가져다주시는 분입니다. 우리를 즐겁게 만드는 포도주, 우리가 장차 어린양의 혼인잔치에서 마시며 즐거워하게 될 포도주를 가져다주시는 분이 바로 우리의 신랑 되신 그리스도이십니다(계 19장, 막 14:25 참조).
아울러 이 기적 사건은 우리의 구원자이신 그리스도는 물을 포도주로 바꾸실 수 있는 전능의 권능을 가지신 분이심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오직 말씀만으로 물을 포도주로, 그것도 최상품 포도주로 바꾸셨습니다. 하나님 외에는 이런 일을 하실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초자연적 권능을 행사하심으로써, 그리스도로서의 권능의 영광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처음 표적을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셨으며, 과연 제자들은 그를 더욱 굳게 믿었다고 하였습니다(11절). 이 표적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여주고 있고,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믿을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주님, 우리에게 넘치는 포도주를 마시게 하실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고 그리스도께로 나아오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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