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6:22-40
요한복음 6장에는 오병이어 기적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벳새다의 빈들에서 하나님 나라에 관해서 가르치시면서 많은 병자들의 병을 고쳐주셨습니다(1-2절). 그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고, 그들은 날이 저물도록 예수님 곁을 떠나지 않고 있었기에, 예수님은 그들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자고 말씀하셨습니다(5절). 그러나 그들에게 있는 것이라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전부였습니다(9절). 반면에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의 수는 여자와 어린이를 제외하고 남자만 오천이나 되었습니다(10절, 마 14:21). 빌립의 말처럼, 각 사람에게 조금씩만 주어서 먹게 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에게는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필요했습니다(7절). 이백 데나리온은 제자들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큰 금액이었고, 설령 돈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많은 양의 떡을 한꺼번에 구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무리들을 앉히시고(10절), 오병이어를 가지고 감사하신 후에 그들에게 원하는 대로 나누어주셨습니다(11절). 그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모두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다시 거두니 열두 바구니에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12-13절). 사람들은 놀라며 말하기를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14절)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야말로 자신들이 기대했던 메시아라고 생각하고 예수님을 잡아 억지로 임금을 삼고자 했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그곳을 떠나 혼자 산으로 가셨습니다(15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22-26절)
그 이튿날, 떡을 먹었던 무리들은 예수님을 찾아나섰고, 그들은 가버나움에서 예수님을 찾았습니다(22-25절). 주님께서는 사람들이 자신을 찾아온 이유를 잘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자신을 찾아온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라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26절). 그들은 오병이어의 놀랍고도 신비한 떡과 물고기를 먹은 자들이었는데, 어떻게 표적을 보지는 못했다고 하신 것입니까? 우리는 예수님의 모든 이적은 표적(sign, 간판)이라는 것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표적은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표적이 가리키는 실체가 중요합니다. 간판이 크고 아름답다고 해서 그 간판 자체만 주목하고 그 간판이 가리키고 있는 실체를 보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간판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기적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가리키는 표적이자 간판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표적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나아온 사람들은 떡을 먹고 배부르게 되자, 예수님이야말로 자신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분으로, 더 나아가서 이스라엘 나라를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켜서 회복할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그런 것이 그리스도께서 가져다주시는 구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억지로 잡아 임금을 삼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27-29절)
결국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은 이유는 예수님에게서 더 많은 떡을 얻고자 함이었습니다. 떡은 참으로 필요하고 귀한 것입니다. 우리는 떡을 먹어야 생존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든 것을 떡을 기준으로 생각하면서, “그게 밥 먹여주느냐?”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그들을 향해서,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고 말라”(27절)고 말씀하십니다. 육신의 양식이 무가치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 모두 열심히 일해서 양식을 얻어 가족도 부양하고 우리의 생존도 유지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이런 것들을 “썩는 양식”이라고 하신 것은, 그러한 떡은 아무리 많이 먹는다 해도 우리에게 죄 사함과 영원한 생명과 구원을 가져다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찾았던 그런 양식들을 가키켜 “썩는 양식”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고 하셨습니다.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는 것은 우리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떡을 먹고 배부른 것도 좋지만 영생할 수 있는 양식을 얻지 못한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입니까? 우리에게 죄 사함과 영생과 구원을 줄 수 없는 썩는 양식뿐이라면 그게 다 무슨 소용입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얻고자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영생하도록 있는 이 양식을 주시는 분은 누구입니까?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27절). 인자, 곧 예수님만이 이 양식을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자 군중들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서 일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28절). 그러자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29절)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바로 알고 바로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가장 우선하는 일, 우리의 “본업”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30-40절)
그러자 유대인들은 “우리로 보고 당신을 믿게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30절)라고 물으면서, 또 다른 표적을 구하였습니다. 옛적에 모세는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서 자신이 선지자라는 것을 믿게 하였는데, 예수님은 어떤 일을 하느냐는 것입니다(30-31절). 그러자 예수님은 만나 역시 모세가 내려준 떡이 아니라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려주신 떡이었다고 하시면서, 하나님은 하늘에서 참 떡을 내려주시는 분이시고,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33절). 주님께서 말씀하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은 하늘에서 아버지께서 내려주시는 것이며,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생을 얻어 영원히 살 것이었습니다(58절 참조). 그러자 군중들은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34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내가 곧 생명의 떡”(35절)이라고 하시면서,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35절). 예수님께서는 영생하도록 있는 이 양식을 주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 자신인 것을 믿게 하시기 위하여 오병이어의 표적을 행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무리들은 오병이어의 떡을 먹고도, 예수님을 기껏해야 육신의 떡을 주실 수 있는 분으로 알고 환호할 뿐,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신 것은 보지 못했고 믿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36절)라고 하시며 탄식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서 내려오신 것은 그를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뜻은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만세 전에 택하신 자들을 구원하시는 일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아들에게 그들을 주셨고,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구원하여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37-40절). 예수님은 자신이 바로 이 일을 하시기 위하여 오신 그리스도요, 자기에게 나아오는 자들에게 영생할 수 있는 양식 곧 생명의 떡을 주시는 분이신 것을 알려주시기 위하여, 오병이어의 표적을 행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지금도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너희가 찾는 것은 무엇이냐? 썩는 양식이냐? 아니면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이냐? 너희에게 죄 사함과 영원한 생명과 구원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썩는 양식이 아니냐?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 그러므로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십시오. 하늘로서 내려온 참 떡이 되시는 예수님을 양식 삼으십시오. 예수님에게로 오십시오. 그를 믿으십시오. 그가 행하신 놀라운 표적을 보고도 믿지 않으려고 합니까? 예수님께로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않을 것이고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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