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4-13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4-5절)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을 시작하면서 그리스도 안에 생명이 있었다고 말씀합니다(4절). 사도 요한이 “생명”이라고 할 때, 이 생명은 단순히 육신 생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새 생명”을 말합니다. 창조 시에 인간이 받은 생명, 모든 인간이 태어나면서 받아서 누리는 생명도 귀한 생명입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이 말하는 생명은 새 창조 시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을 말하며, 이 생명은 “새 생명”이며, “영생(영원한 생명)”이며, “구원”입니다. 이 생명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생명입니다. 그래서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입니다(4절). 그리스도께서 가져다주시는 생명과 구원은 인간들에게 한 줄기 빛이고 유일한 소망입니다. 이 빛은 해와 달이 발하는 것과 같은 그런 “물리적인 빛”이 아닙니다. 빛이라고 하신 것은 하나의 은유적인 표현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어둠 속에 있다고 말씀하며,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인생들을 향해서 “흑암에 행하던 백성”(사 9:2)이라고 부릅니다. 이 세상에는 빛이 없습니다. 물론 인간에게도 모종의 빛이 있는 것처럼 보이고 지혜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사상과 철학과 종교는 우리에게 새 생명과 영생과 구원을 가져다줄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어둠입니다. 그리스도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만이 인류의 진정한 소망이자 위로이자 빛입니다.
하지만 그 빛이 이 땅에 왔을 때, 이 세상과 사람들 의 반응은 무엇이었습니까? 빛이 어두움에 비취었지만 어두움이 깨닫지 못했고(5절), 세상은 그를 알지 못했고(10절), 그를 영접하지 않았습니다(11절). 한마디로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이름을 요한이라(6-8절)
사람들의 암매함과 불신앙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도록 한 사람을 보내셨습니다. 그는 바로 주의 길을 평탄케 하기 위하여 보내심을 받은 세례 요한이었습니다(6절). 사실 세례 요한뿐만 아니라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이 다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내신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과 구원을 증거하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자이신 그리스도와 그가 가져다주실 구원을 증거하도록 수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그리스도에 관하여 증거하게 하셨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 앞에 온 모든 선지자들 중에 가장 마지막 선지자였습니다.
그가 온 것은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기(7절) 위함이었습니다. 그는 사람들로 하여금 빛이신 그리스도를 믿게 하기 위하여 왔습니다(7절). 그러므로 세례 요한은 “이 빛”은 아니었습니다(8절). 그는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온 사람이었습니다(8절). 세례 요한은 실제로 일평생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삶을 살았습니다(요 3:28-30 참고). 그는 “그 빛” 자체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그는 등불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은 켜서 비취는 등불이라 너희가 일시 그 빛에 즐거이 있기를 원하였거니와”(요 5:35).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도록 사람들을 끊임없이 보내십니다. 그들의 증거를 통해 그리스도가 알려지고 그리스도의 빛이 비춰져서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생명을 얻고 구원을 받도록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과 지상의 교회들을 가리켜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 5:14)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참빛이신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등불들이고 이 세상의 빛입니다. 우리 자신이 빛 자체는 아니지만 참빛이신 그리스도를 증거할 때 우리는 세상에서 켜서 비취는 등불이 됩니다.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9-11절)
참빛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오셨습니다.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9절). 생명을 가지고 계시는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땅은 생명이 없는 어두운 세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참빛이신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셔서 각 사람에게 빛을 비추어주셨습니다(9절). 이 빛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흑암에서 태어나서 흑암 중에 살다가 어둠 속으로 영원히 들어가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되어 주셨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를 알지 못했습니다(10절). 그가 세상에 계셨고,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지만, 세상은 그가 누구인지 전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리스도는 이 세상의 주인이었습니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음을 받았고 그는 만물의 창조주였습니다(요 1:3).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인간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과 복된 교제를 누리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을 충만하게 누리게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생명을 잃어버렸고 하나님과의 복된 교제에서 끊어졌기 때문에, 우리에게 다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생명을 가지고 이 땅에 친히 오셨습니다. 그것이 성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 사람이 되셨고 사람으로 오신 것입니다. 하지만 그분께서 “자기 땅”에 오셨지만, 자기 백성이 그를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는 것, 이것이 인류 최대의 비극이자 불행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12-13절)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고 자기 백성에게 오신 이유는 자기를 영접하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12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한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믿어야 구원이고, 믿어야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이름이 담고 있는 바로 그 의미, 곧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시는 분으로 예수님을 알고 믿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와 연합하게 되며, 예수님을 믿고 영접할 때에만 우리에게 그 생명이 주어집니다. 우리가 그 생명으로 살아나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이 특권은 참으로 놀라운 특권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13절)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자연적인 출생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혈통으로 태어나는 출생, 육정(육신의 뜻)과 사람의 뜻(will)으로 태어나는 이런 출생으로는 결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육적 출생이고 자연적 출생이고 혈육적 출생입니다. 우리에게는 두 번째 출생, 곧 영적 출생과 거듭남(중생)의 출생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이 출생을 주실 수 있고,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은혜로만 거듭날 수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로서 나는 출생입니다.
복음을 듣고 참빛이신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거를 받았지만 아직도 이 빛으로 나오지 않은 분들이 있습니까? 빛보다 어두움이 더 좋습니까? 우리에게 새 생명 곧 영생을 줄 수 있는 다른 구주가 또 있습니까? 영생을 얻고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있습니까? 이 빛으로 나오십시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되는 권세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남은 날들을 세상의 빛으로 사십시오.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세상의 빛입니다. 그리스도는 빛을 스스로 발하는 빛이고, 우리는 그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 참빛을 반사시키는 빛입니다. 그리스도를 전하도록 보냄을 받았으니, 우리의 남은 날들 동안 그리스도를 전하여 이 세상을 밝히는 등불로 살아갑시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