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작성자 사진병철 안

241229 내니 두려워 말라

요 6:16-21

     

오늘 본문은 요한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다섯 번째 표적으로, 예수님께서 풍랑을 만난 제자들에게 물 위를 걸어서 오신 기적 사건입니다. 이 표적은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이 있던 날 밤에 일어났습니다(16절). 제자들은 그날 밤에 바닷가로 가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서 가버나움을 향해 갔습니다. 제자들은 왜 굳이 어두운 밤에 위험한 항해를 시작한 것입니까? 요한복음만을 보면 제자들이 특별한 이유 없이 바다에 내려가 배를 타고 항해를 시작한 것처럼 보입니다(16-17절). 하지만 동일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을 보면 제자들이 그 밤에 배를 탄 것은 예수님께서 그들을 재촉하셔서 배를 태워 보내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마 14:22; 막 6:45).

     

풍랑 속에서 괴로이 노를 저었던 제자들(18-19절)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어두운 밤에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항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지났을까요?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 리나 떠난”(마 14:24) 상태에서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기(18절) 시작하였습니다. 어두운 밤에, 갈릴리 바다 한복판에서 풍랑을 만난 것입니다. 풍랑을 만난 제자들은 자신들의 모든 역량을 발휘하여 바람과 싸우면서 “괴로이 노를 저었습니다”(막 6:48). 그들은 밤 사경(새벽 3-6시)이 되도록 풍랑과 싸웠지만, 그들의 힘과 노력과 수단으로는 풍랑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삶에는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로 해결할 수 없는 바람과 풍랑이 있습니다. 그리고 풍랑 앞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풍파를 겪기 전에는 우리가 대단한 존재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인생의 풍랑을 만나게 되면 우리는 이내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고 우리가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존재인지를 인정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 풍랑을 허락하신 것은 그들의 믿음의 실력을 드러내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마가복음의 기록을 보면, 제자들도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져 있었습니다(막 6:52). 표적을 보지 못한 것은 군중들만이 아니었습니다. 제자들도 역시 여전히 둔하고 강퍅한 상태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수많은 기적을 지켜보았지만 그 기적들의 진정한 의미를 보지 못했고 그리스도의 영광을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불과 몇 시간 전에 오병이어의 놀라운 기적을 목격하였지만, 풍랑을 만나자 곧바로 두려움에 휩싸여서 예수님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제자들의 믿음을 더욱 굳세게 하시기 위하여 이런 풍랑을 만나게 하신 것입니다. 물론, 요나의 경우처럼 불순종하다가 만나게 되는 인생의 풍랑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풍랑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

     

물 위를 걸어오시는 그리스도를 보라(19-21절)

바로 그때 예수님은 물 위를 걸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이는 참으로 놀라운 광경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물 위를 걸으시는 모습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심으로써, 그들이 믿고 따르는 예수님이 과연 어떤 분이신지 바로 알고 굳게 믿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던 시간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물 위를 걸으신 것입니다. 물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매우 상징적이고 인상적인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물 위를 걸어오심으로써 자신이 모든 만물 위에 계시며,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왕이심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계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배에 오르셔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니 두려워 말라”(20절). 마태와 마가는 “안심하라”고 하신 말씀을 함께 기록했습니다(마 14:27; 막 6:50).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무엇을 근거로 안심하라는 것입니까? 여전히 밤은 깊고, 파도가 일고, 배는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고 두렵게 만드는 것들이 이 세상에는 가득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좀처럼 안심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내니(It is I) 두려워 말라”는 말씀은 곧 “내가 여기에 있고, 내가 너희와 함께 있고, 내가 너희를 알고 있고, 내가 너희를 사랑하고 있으니, 내가 너희를 구원하였으니” 안심하라는 말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배에 오르신 후에 바람과 풍랑을 잔잔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배에 오르시자 바람이 곧 그쳤습니다(마 14:32).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바람과 바다도 예수님에게 순종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또 다른 신적 권위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참 사람이자 참 하나님이신 분이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영광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권능과 권세와 권위를 가지신 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이것을 밝히 깨닫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기대하셨던 것처럼, 제자들은 이것을 보고 예수님께 절하면서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마 14:33) 하고 고백하였고, 또한 예수님을 기쁨으로 영접하였습니다(21절). 예수님에 대한 그들의 믿음이 더욱 분명해지고 굳세어진 것입니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예수님은 지금도 같은 이유로 때때로 우리를 재촉하셔서 우리를 풍랑이 이는 바다 한가운데로 보내십니다. 그것은 우리가 꼭 죄를 지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영광을 더욱 밝히 보아야 할 필요가 있기에, 우리의 믿음이 더욱 굳세어져야 할 필요가 있기에,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버티기 힘든 시간, 어둡고 암울한 날들, 바다 한복판에서의 풍랑을 허락하십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자주 제자들처럼 행동합니다. 우리는 이미 오랜 시간 예수님을 믿어왔고,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들었고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에 대해서도 이미 수많은 증거를 받았으며, 많은 위로와 은혜를 경험하였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이 흔들리고 바람이 불어 풍랑이 일면 우리는 떨며 두려워하는 우리 자신을 발견합니다. 예수님의 놀라운 이적들을 수없이 많이 목격해왔던 제자들이었지만 그들이 정작 풍랑을 만났을 때에는 예수님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을 믿고 의지한다고 하면서 정작 삶의 풍랑을 만날 때에 괴로이 노를 저을 뿐 예수님을 잘 생각하지 않고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장 깊고 어두운 밤 사경에 바다 한복판에 있는 우리에게로 찾아오시되 물 위를 걸어서 오십니다. 물 위를 걸어서 오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지금 삶의 폭풍을 만난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두운 밤을 만났고, 막막한 시간을 만났고, 바다 위와 같이 두려운 곳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곳에서 여러분은 괴로이 노를 젓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생각하십시오. 예수님은 물 위를 걸으시는 분입니다.


또한 주님의 자애로운 음성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은 이 세상의 모든 폭풍으로부터 우리를 건지시고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물 위를 걸어 오시면서 “나다!” 하고 말씀하시는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이 우리를 보고 계시고, 우리의 배에 오르시며,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두려워하던 제자들이 기뻐서 주님을 배로 영접했던 것처럼(21절), 기쁨으로 주님을 맞아들이십시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리고 풍랑을 잠잠하게 하시는 주님의 위엄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풍랑을 잔잔하게 하셨을 때, 제자들이 예수님께 절하면서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마 14:33)라고 고백했던 것처럼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신앙고백을 더욱 분명히 합시다. 그러면 우리의 소원의 항구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21절). 망망대해의 풍랑 속에서도 예수님은 예수님입니다.



조회수 9회댓글 0개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コメント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