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모두 평안하셨는지요. 교회를 떠나온 지 벌써 두 달이 다 되어갑니다. 시간이 정말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한국은 무더위가 일찍 시작되었고 오늘부터 장마가 시작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모든 성도분들의 안부가 궁금합니다.
저는 지난 주 금요일에 6주 동안의 에딘버러 생활을 마무리하고, 귀국 전 열흘간의 종교개혁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제일 먼저 네덜란드로 왔습니다. 16세기 네덜란드를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시키고 종교개혁을 가능하게 하였던 빌럼 1세(Willem Ⅰ, Willem van Oranje)가 살던 델프트(Delft)의 자택과 그의 무덤이 있는 델프트 신교회, 도르트 신경이 작성되었던 도르트레히트(Dordrecht), 아브라함 카이퍼 박사가 설립한 암스테르담의 자유 대학(Vrije Universiteit) 등을 3일 동안 둘러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네덜란드 땅에 복과 은혜를 부어주셔서 일찍이 이곳에 바른 신앙고백을 가진 교회가 세워지게 하시고 그 은혜의 물줄기가 끊이지 않고 흘러온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꼭 찾아보고 싶었던 귀도 드 브레의 흔적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박종선 장로님과 김승현 집사님 내외분이 살고 있는 벨기에 브뤼셀로 내려와 장로님 댁에서 하루를 묵은 후에 주일을 함께 지냈습니다. 주일예배를 마친 후에는 박종선 장로님의 안내를 받아 도르닉(Doornik)에 다녀왔습니다. 도르닉은 벨직 신앙고백서를 작성한 귀도 드 브레가 목회한 곳이기도 하고, 결혼한 곳이기도 하고, 벨직 신앙고백서를 작성한 곳이고도 하고, 순교 당하기 직전 투옥된 곳이기도 했습니다. 그곳에는 지금도 귀도 드 브레가 투옥되었던 “헨리 8세 타워”가 아직도 남아있으며, 그가 벨직 신앙고백서를 작성한 뒤 도르닉 성벽 안으로 던졌다고 전해지는 성벽의 일부분이 남아있었습니다. 귀도 드 브레를 통해 개혁 신앙을 들은 수백 명의 성도들이 시편 찬송을 부르던 도르닉 광장도 거닐어 보았습니다.
독일에서는 프리드리히 3세가 통치하던 하이델베르크 성과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저자인 우르시누스가 목회했던 성령교회를 찾았습니다. 우르시누스가 성경책을 들고 올라가 설교했을 설교단을 한참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수백 년의 세월을 이기고 우뚝 서있는 성령교회와 성령교회의 설교단을 보면서, 수백 년을 이긴 그 힘이 어디에서 나왔을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힘은 성령교회 예배당의 튼튼한 벽돌이나 돌로 된 기초에 있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교회가 세월을 이길 수 있는 힘은 하나님의 복음 진리의 말씀에서 나오는 것이었고,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에 있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의 복음 진리의 말씀을 신실하게 선포하는 설교자들이 없다면, 그리고 그 복음 진리의 말씀을 사랑하고 파수하는 성도들이 없다면, 교회는 세월을 이길 수 없음을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했습니다. 하이델베르크 성령교회의 설교단이 수백 년의 세월을 이기고 우뚝 서있는 것처럼, 양의문교회와 양의문교회의 설교단도 수백 년의 세월을 이기고 우뚝 서게 해주시기를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저는 이제 곧 스위스 제네바로 향합니다. 제네바에서 종교개혁자 칼빈의 흔적들을 따라가 보면서 이번 안식 기간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지난 두 달 동안 저를 위해 기도해주신 모든 성도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건강한 모습으로 교회에서 뵙겠습니다.
2024년 6월 29일 토요일 새벽
하이델베르크에서 김준범 드림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