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왜 의가 필요한가?
이 세상의 끝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우리가 서게 된다면 우리는 어떤 느낌일까요? 우리는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미리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알 수 없는 미래에 일어날 일을 미리 알려주셨는데, 우리 모두가 거룩하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서 이 땅에서 우리가 한 모든 일에 대한 판단을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언젠가 불꽃 같은 눈으로 모든 사람을 재판하실 예수님을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재판장이신 주님은 이 세상 사람들이 가진 기준, 법과 도덕이라는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우리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이 땅에서 우리가 행한 일만이 아니라 우리가 마음으로 원하고 바랐던 것들까지 주님 앞에 아뢰면서 재판장이신 주님의 처분을 기다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우리 행위에 대해서만 정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우리 마음의 소원과 동기에 대해서도 명령하며 금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는 계명은 우리 마음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율법은 우리가 율법의 일부 계명만이 아니라 율법 전체를 지킬 것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율법의 기준을 가지고 우리를 판단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자신 있게 설 수 있겠습니까?
이런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의”가 필요합니다. 사람이 인정하고 칭찬하는 사람의 의가 아니라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가 필요합니다. 성경은 사람이 인정하고 자랑하는 의는 다 더러운 옷과 같다고 말합니다(사 64:6). 그것이 이 세상에서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아무 소용이 없는 것으로 드러나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를 의롭다 하는 사람의 판단이 아니라 우리를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하나님의 판단입니다. 그렇다면 죄인인 우리는 어떻게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의롭다는 판결을 받을 수 있습니까? 분명한 것은 우리의 행위로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아담 안에서 부패한 우리는 선을 행하는 데 있어 완전히 무능하며, 우리가 가진 것은 오직 죄를 지을 수 있는 자유뿐이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눈 감아주시는 방법은 어떤가요? 하지만 그것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의로운 율법은 죄인을 정죄하며, 죄인을 향해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와 영원한 형벌 받을 것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이 요구는 지극히 정당합니다.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
하지만 복음이 우리에게 “복된 소식”을 알려줍니다. 로마서 1장 17절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사도 바울은 복음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고 말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의롭다는 인정을 받게 할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는 말씀입니다. 즉 복음에 나타났다고 한 의는 하나님의 성품으로써의 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죄인인 우리에게 전가시키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의롭다는 판결을 받게 만들 의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의는 누가 어떻게 마련한 것입니까?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의를 획득하셨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의가 없는 우리에게 전가시켜 주시는 이 의는 참 사람이시며 참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친히 얻으신 의입니다. 태초부터 계셨던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셔서 마련하신 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의가 없는 우리를 위해 하나님의 의를 만족시키려면 먼저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고 죄를 지은 우리가 받아야 할 모든 형벌을 대신 받으셔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고난과 죽음 당하심으로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모든 진노와 저주와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3)
또한 예수님께서 의가 없는 우리를 위해 하나님의 의를 만족시키려면 그 마음이 부패하여 선을 조금도 행할 수 없는 우리를 위해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완전히 지키셔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과 계명에 완전히 순종하셨습니다.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롬 5:19)
예수님은 자신의 모든 삶과 죽음을 통해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를 완전히 만족시키시고 우리를 위한 완전한 의를 획득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셔서 그의 의로움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완전하고 영원한 의를 우리에게 전가시켜주심으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의롭다는 판결을 받게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 앞에 우리가 자신 있게 설 수 있게 만든 우리의 의는 “고유하고 내재적인 것이 아니라 낯설고 외래적인 것”입니다. 우리의 의는 우리 안에서 난 것이 아니라 우리 바깥에서 나온 것이며, 이 땅에 있는 우리의 행위로부터 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계신 하늘로부터 내려온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의는 그리스도께서 그의 완전한 순종과 희생과 부활을 통해 획득하신 그 의입니다. 하나님은 이 사실을 우리로 확신시켜 주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의가 되신다고까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고전 1:30)
이신칭의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의는 어떻게 우리에게 전가되는 걸까요? 이 의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 의를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전가시켜 주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얻으신 의가 우리의 것이 되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6-18절을 읽어봅시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할 때에 믿음 자체가 어떤 공로가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믿음은 우리의 유일한 의가 되시는 그리스도의 의를 받아들이는 수단이지, 우리가 의롭게 되는 근거가 아닙니다. 믿음은 동냥하는 거지가 내미는 손과 같은 것입니다. 거지가 내미는 손은 그에게 도움을 주려는 사람의 호의를 받는 수단일 뿐이며, 그가 내민 손이 너무 아름답거나 깨끗했기 때문에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를 붙잡는 우리의 믿음은 그리스도의 의를 받는 수단일 뿐 결코 근거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이유는 “우리의 믿음이 그리스도를 붙잡고, 나의 죄와 죽음이 그리스도가 짊어진 죄와 죽음으로 인해 심판을 받아 폐기 되었기 때문”입니다(마르틴 루터). 믿음은 우리로 그리스도를 붙들게 하고 그리스도와 연합되게 합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우리의 죄와 죽음,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와 하나님의 심판이 우리에게서 그리스도에게로 옮겨졌으며, 반면 그리스도의 의와 생명과 복은 그리스도에게로부터 우리에게로 옮겨졌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친히 짊어지셨으며 자신의 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완전히 깨끗케 해 주셨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하여 참된 믿음을 가진 자는 자기 자신의 선한 행위나 믿음 그 자체를 의지하거나 자랑하지 않습니다. 참된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붙잡은 자는 자신이 의롭게 된 것이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은 것임을 알고 그리스도께만 영광을 돌립니다. 하나님께 범죄하고 의가 없는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자신의 독생자를 내어주심으로 우리를 의롭다 여겨 받아주시는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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