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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병철 안

구약 3-10 룻과 나오미를 보살펴 주셨어요

최종 수정일: 10월 4일

주제: 하나님은 룻과 나오미를 구해 줄 사람을 보내 주셨어요

가스펠 링크: 보아스는 룻과 나오미가 어려운 일을 겪고 있을 때 그들의 고통을 책임지고 돌보았어요. 예수님은 우리가 겪을 죄의 형벌을 대신 치르시고 우리를 구원하셨어요.

본문: 룻기 1-4장

요절: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3-24)

     

룻기는 사사시대에 이스라엘의 한 가정에서 일어난 일을 다루고 있습니다. 룻기는 유대 베들레헴 출신의 엘리멜렉이라는 사람이 그 땅에 닥친 흉년을 피해 가족들과 함께 가나안 땅을 떠나 모압 지방으로 이주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가나안 땅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 장소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살던 땅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들에게 주기로 약속하셨던 땅이고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따라 이스라엘 각 지파와 가문에게 친히 기업으로 주신 땅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는 그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고 그곳에서 약속하신 메시아, 그리스도를 보내주실 것을 계획하고 약속하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땅을 나눠주신 후, 이방인들과 같이 하나님이 주신 땅을 팔지 말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하나님의 명령을 잊어버렸고,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주신 땅을 떠나기 시작하였습니다. 특별히 당시 가나안 땅에 큰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을 구하기 어려운 형편에 처했을 때, 엘리멜렉은 스스로 살 길을 찾아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을 팔아버리고 다른 지역과 나라로 이주한 것입니다. 엘리멜렉의 이런 결정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약속을 저버리는 불신앙적인 행위였습니다.

이처럼 모압으로 간 엘리멜렉의 가정은 큰 시련을 겪게 됩니다. 모압 지방에 들어간 지 오래되지 않아 가장인 엘리멜렉이 죽었고 또 그의 두 아들들 역시 그곳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엘리멜렉의 가정에 남은 사람은 그의 아내인 나오미와 그의 두 아들, 기룐과 말론과 결혼했던 두 며느리들뿐이었습니다. 그 가정에는 더 이상 일을 할 수 있는 남자가 없었고 가나안 땅을 떠나면서 가져온 모든 재산도 다 떨어졌습니다.


마침 그때 나오미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돌아보시고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이 때 나오미는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갈 것을 결정합니다. 아마도 나오미는 모압 땅에서 많은 시련과 고통을 겪으며 자신과 자기 가정의 죄와 잘못을 깊이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기업을 져버리고 그곳을 떠나 모압으로 온 것을 회개하였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오미는 회개하는 마음으로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오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때 나오미는 두 며느리들, 오르바와 룻을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였습니다. 아직 젊은 두 사람이 나오미를 따라나서는 것은 그들에게도 매우 고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차라리 고향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새 남편을 얻어 살기를 원했습니다. 이때 오르바는 나오미에게 입을 맞추며 떠났지만, 룻은 나오미를 따라 가겠다고 하였습니다.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룻 1:16-17) 이것은 룻의 신앙고백이었습니다. 비록 룻은 모압 여인이었지만 나오미의 가정으로 시집을 와서 나오미를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고 믿게 되었습니다. 롯은 나오미를 떠나는 것이 곧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며 하나님의 백성을 떠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비록 나오미를 따라나서는 것이 고생스러운 길임을 알았지만 그럼에도 나오미를 따라 나서기로 결단한 것입니다.


결국 이 두 사람의 행위는 모두 신앙적인 것이었습니다. 나오미는 모압에서 겪은 큰 환난을 통해 자신과 가정의 죄를 깨달은 나오미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돌아갔습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자신의 가정을 벌하셨으나 하나님께서 자신의 가정을 회복시킬 것을 믿고 하나님의 선하신 손에 자신을 맡긴 것입니다. 또 그의 며느리 룻 또한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거절하고 믿음으로 나오미를 붙좇았습니다. 비록 나오미를 따라 나서는 것은 인간적으로 볼 때 고생스러운 일이지만, 룻은 나오미의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믿었고 하나님께 자신의 남은 삶을 맡긴 것입니다.


이렇게 흉년을 피해 풍족하게 모압으로 떠났던 나오미가 빈 손으로 돌아온 일은 온 마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습니다. 성읍의 아낙네들은 그런 나오미의 모습을 보고 “이게 정말 나오미인가?”하고 말하였습니다. 과연 나오미와 룻은 잘 살아갈 수 있을까요?


     

당장 먹고 사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오늘날과 달리 농경사회에서 여인들이 먹고 사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두 사람은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나오미는 모압으로 떠날 때에 하나님께서 나오미의 집에 기업으로 주신 땅을 팔고 풍족하게 나갔으나 모압에서 돌아올 때는 빈손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때 룻은 나오미에게 보리 이삭을 줍겠다고 했습니다. 율법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땅의 곡물을 벨 때에 그것을 남김 없이 거두지 말고 땅에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것들을 가난한 사람과 나그네들을 위하여 남겨두라고 하셨습니다(레 19:9,10; 레 23:32; 신 24:19 참조). 룻은 자신과 같은 가난한 이방인을 위해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법을 의지하여 자신과 어머니를 섬기기 위해 이삭을 줍고자 한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삭을 줍는 일은 매우 부끄러운 일이고 아무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일입니다. 하지만 룻은 나오미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이삭을 줍기 위해 밭으로 나갔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룻을 엘리멜렉의 친족인 보아스의 밭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보아스는 친족인 나오미와 나오미와 함께 모압에서 온 룻에 대한 소문을 들어 잘 알고 있었습니다. 나오미의 회개와 룻의 신앙에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밭에 이삭을 줍기 위해 찾아온 룻을 위로하고 그를 깊이 배려하였습니다. 보아스는 룻에게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8절). 또 보아스는 식사 자리에 룻을 초대하여 함께 떡을 먹게 하고, 일꾼들에게 룻을 위해 줌에서 보리를 조금씩 뽑아서 그로 줍게 하고 꾸짖지 말라고 하였습니다(15-16절). 즉 하나님의 율법이 정한 문자적 요구 이상을 한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보아스는 기꺼이 나오미와 룻을 위한 기업 무를 자가 되어주고자 하였습니다. 보아스는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이었고 ‘기업을 무를 자’(고엘,구속자)였습니다(룻 2:20). 기업 무를 자는 친척 중에서 친족을 회복시켜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기업 무를 자는 친족이 가난하여 기업으로 받은 땅을 팔았거나 저당 잡혔을 때에 대신 값을 지불하여 그 땅을 찾아주고, 아들이 없이 남편을 잃은 친족의 아내와 결혼하여 대가 끊어지지 않게 해 주는 사람입니다. 왜 이런 제도를?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가장을 잃은 남은 가족들을 돌보시기 위한 것.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는 이런 제도를 만드셔서, 이스라엘 백성 각 지파와 가정들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기업을 대대로 이어가게 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보아스가 나오미와 룻의 기업 무를 자가 되기를 원하는냐 하는 것입니다. 보아스는 엘리멜렉의 친족이며 유력한 자였습니다. 그에게는 나오미와 룻의 기업 무를 자가 되어줄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보아스가 기업 무를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거절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보아스보다 엘리멜렉과 나오미에게 더 가까운 친족이 있었습니다. 원래대로라면 그가 기업 무를 자가 되어주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름을 알 수 없는 그는 기업 무를 자가 되기를 거절했습니다. 처음 보아스가 그의 의사를 물었을 때, 그는 자신이 기업을 무르겠다고 대답합니다. 비록 엘리멜렉 집의 땅을 무르기 위해 자신이 비용을 내야 하지만, 시간이 지나 나오미와 룻이 죽으면 그 땅은 저절로 자신의 것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보아스가 기업을 무르기 위해 룻을 아내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을 때, 그는 그 제안을 거절합니다. 왜냐하면 룻과 혼인하여 아이를 나으면 그 아이는 엘릭멜렉 집안의 기업을 이어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 기업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남의 것이 돌아갈 것이 분명했습니다. 따라서 이름을 알 수 없는 그는 기업 무르기를 거절하였습니다.


이처럼 그의 의사를 확인한 보아스는 기꺼이 자신이 기업 무를 자가 되고자 하였습니다. 보아스는 모든 백성들과 장로들에게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여러분은 오늘 이 일의 증인입니다. 나는 엘리멜렉이 가지고 있던 모든 것과, 기룐과 말론이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나오미의 손에서 사겠습니다. 나는 말론의 아내인 모압 여인 룻도 아내로 맞아들여서, 그 유산이 고인의 이름으로 남아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여, 고인의 이름이 그의 고향 마을에서도 끊어지지 않고, 친족들 사이에서도 끊어지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오늘 이 일의 증인입니다.(룻 4:9-10, 새번역)

     

보아스가 엘리멜렉의 기업을 무르는 일은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보아스는 엘리멜렉과 나오미, 룻을 위하여 기꺼이 기업을 무르는 자가 되어주고자 하였습니다. 그 일은 보아스가 꼭 해야만 하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기업 무르는 것과 관련한 하나님의 법은 강제 조항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기업을 무르지 않는다고 하여 형벌을 받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보아스는 기업 무르는 제도를 제정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고, 동족을 향한 사랑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자신이 기꺼이 나오미의 기업을 사고 룻을 아내로 맞이하였습니다.

     


나오미와 룻의 기업 무르는 자 곧 구속자가 되었던 보아스와 그의 행동은 우리의 구속자가 되신 예수님의 신분과 사역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로마서 3장 23-24절을 읽어봅시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3-24)

     

하나님께서 처음 사람을 창조하실 때,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도록 지은 바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러서 하나님과 연합되어 교제하는 복락을 누리도록 우리를 지으셨습니다. 하지만 우리 조상 아담이 범죄하였고 아담 안에서 범죄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에 가까이 나아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 수 있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구속”이란 말은 우리 죄를 위한 값을 지불하고 우리를 죄책과 형벌에서 해방시켜주신 일을 의미합니다. 보아스가 나오미와 룻의 구속자가 되어 그들의 기업을 위한 값을 대신 지불하고 그 기업을 되돌려 주었던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우리 죄로 말미암아 받아야 할 모든 죄 값을 십자가에서 대신 치르심으로 우리에게 사죄와 칭의와 양자됨과 영원한 생명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보아스에게 구속자가 되어줄 의무가 없었던 것처럼, 예수님께도 우리의 구속자가 되어주셔야 할 의무가 없으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우리를 향한 사랑으로 기꺼이 우리의 구속자가 되기를 자청하셨습니다.


특히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속자가 되기 위하여 치르셔야 할 값은 보아스가 치른 값과 비교할 수 없이 큰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속자가 되셔서 치르셔야 하는 값이란 하나님께 범죄한 우리의 모든 죄책, 범죄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 죽음과 지옥 형벌의 고통을 받으시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나오미와 룻과 같이 파산한 아담의 가문의 후손인 우리를 위한 구속자가 되셨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값을 치르셨습니다. 이처럼 우리에게는 보아스보다 훨씬 더 탁월한 구속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십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와 백성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속자인 예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가 된 우리도 예수님과 같이 우리의 친구들과 이웃을 위해 우리 자신을 내어주어야 함이 마땅합니다. 우리 이웃들을 사랑하되, 보아스가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의 율법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아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들을 사랑하되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또는 그 이상의 것을 행함으로 사랑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룻은 보아스를 통해 하나님의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자신에게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상을 경험했습니다. 또 우리도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의지하는 우리에게 베푸시는 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이웃과 친구들이 우리의 사랑과 호의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경험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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