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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병철 안

구약 3-11 하나님이 사무엘에게 말씀하셨어요

주제: 하나님은 사무엘을 부르셔서 하나님의 계획을 알려 주셨어요

가스펠 링크: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보여 주었어요. 말씀이신 예수님은 자신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보여 주시고 우리를 죄에서 영원히 자유롭게 하셨어요.

본문: 사무엘상 1-3장

요절: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여 그 발등상 앞에서 경배할찌어다 그는 거룩하시도다 그 제사장 중에는 모세와 아론이요 그 이름을 부르는 자 중에는 사무엘이라 저희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응답하셨도다”(삼상 99:5-6)

     

사사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형편은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애굽과 광야,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과정 속에서 행하신 큰 일들을 보고 들었던 앞선 세대가 살아있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잘 섬겼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죽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다른 세대가 일어났을 때, 그들은 점점 더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졌고 그 땅의 우상을 섬기며 타락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물론 우리가 사사기에서 본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사사들을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사사들이 살아 있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하나님께 돌이켰지만, 사사가 죽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은 예전보다 더욱 타락하였습니다. 심지어 하나님께 보냄을 받고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사명을 받은 사사 자신조차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져버리고 자기 욕심을 좇아 살아가는 모습은 그 시대가 얼마나 영적으로 어두운 시대였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엘리의 가정의 타락과 그 이유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이스라엘의 제사장 엘리와 그의 가정에서 일어난 일들 역시 사사시대의 이스라엘의 영적 실상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엘리와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는 성막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맡은 제사장들입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 사이의 중보자입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을 거룩하게 지키면서 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기도해야 했고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를 받아가지고 그것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잘 섬겨야 했습니다. 성막은 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생활의 심장부 또는 샘터와 같았습니다. 우리 몸의 심장이 온 몸에 피와 산소와 양분을 공급하는 것처럼 또는 샘에서 나오는 물이 헐러 온 지면을 적셔 땅이 소출을 내는 것처럼, 성막에서 제사장을 통해 이뤄지는 봉사를 통해 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말씀을 공급받고 영적인 생명과 능력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제사장은 바로 그 일을 위해 세워진 직분자입니다. 그렇다면 사사시대 성막에서는 그 일이 잘 이뤄지고 있었을까요?


제사장 엘리와 그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가장 거룩한 제사장이어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성막과 그곳에서 드려지는 제사 그리고 그들의 제사장직을 자기 자신의 탐욕을 채우는 도구로 삼았습니다. 사무엘상 2장에는 이들이 저지른 악행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 짐승을 가지고 성막으로 올라왔습니다. 특별히 화목제사와 같은 제사를 드릴 때에 하나님께서는 짐승에게서 나오는 기름과 콩팥은 하나님께 태워 바치고, 그 다음 짐승의 가슴과 오른쪽 뒷다리는 제사장에게 주며, 나머지는 제사를 드린 사람에게 주어 먹도록 하셨습니다. 하지만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으로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고기를 삶는 냄비에 갈고리를 찔러 넣어서, 그 갈고리에 걸려 나오는 것은 무엇이든지 자신들의 몫으로 가져갔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제사의 순서도 무시했습니다. 제사에는 순서가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께 짐승의 기름과 간 꺼풀과 콩팥을 취하여 하나님께 태워 드려야 했습니다. 그 다음 제사장에게 돌아갈 몫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홉니와 비느하스는 기름을 떼내어 태워 하나님께 드리기도 전에, 자신들에게 돌아올 몫을 내놓으라고 협박합니다. 그럴 때 사람들은 두 제사장에게 먼저 하나님께 드릴 기름만 먼저 제사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그러면 나머지는 제사장들이 원하는 대로 가져가게 하겠다고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부탁해도 아랑곳 하지 않고 홉니와 비느하스는 자신들의 몫을 갈취하는 악을 저질렀습니다. 이뿐 아니라 홉니와 비느하스는 회막에서 섬기는 여인들과 잠자리를 갖는 악을 저지르기도 하였습니다.

바로 이러한 때에 홉니와 비느하스의 아버지 엘리 제사장은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엘리는 두 아들이 성막에서 행하는 모든 악행들에 대해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삼상 2:22). 그렇다면 엘리는 대제사장으로서 그리고 아버지로서 자식들을 돌아보지 못한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아들들을 책망하고 그들을 징계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엘리는 그들을 그저 좋은 말로 타이를 뿐이었습니다(삼상 2:23-25). 아들들을 꾸짖는 엘리의 말은 힘이 없고 공허한 소리에 불과했습니다. 그 말씀은 두 아들들을 돌이키게 하지 못했고 어떤 열매나 능력을 나타내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엘리와 그의 두 아들들은 이스라엘의 신앙의 중심부인 성막에 거하고 있는데도 왜 이렇게 타락한 것입니까? 이들은 왜 성막과 제사를 자기 탐욕을 채우는 수단으로 변질시킨 것입니까? 왜 이들은 거룩한 제사장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자신과 자신의 사역 가운데 어떤 열매도 맺지 못하고 능력을 나타내지 못한 것입니까? 사무엘상 2장 12절을 읽어봅시다.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라 여호와를 알지 아니하더라

     

가장 큰 원인은 그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는 것은 단순히 그들에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 말은 그들에게 하나님과의 교제가 없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교제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니 하나님께 자기 마음을 쏟고 말할 줄을 알지 못했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말씀드렸다면, 그들은 다시 하나님의 말씀과 응답을 들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사랑과 거룩하심을 깨달아 자기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백성들을 주의 길로 인도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과의 이런 교제가 없었습니다.

     

사무엘의 예배하는 삶과 그 이유

그런데 여기 엘리와 두 아들 제사장들과 함께 성막에 머물렀으나 그들의 행보와는 정반대의 길을 갔던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사무엘입니다. 사무엘은 그의 어머니 한나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아들입니다. 한나는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아이를 주시면 그를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서원하였고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에 응답하시고 그에게 사무엘을 주셨습니다. 즉 사무엘은 그의 어머니 한나의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 곧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 태어난 사람입니다.


사무엘상 2장에는 이런 사무엘의 삶의 모습을 ‘섬기다’라는 말로 묘사합니다.

     

엘가나는 라마의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그 아이는 제사장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기니라(11절)

     

사무엘이 어렸을 때에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 섬겼더라(18절)

     

한나의 서원한 대로 사무엘은 어려서부터 하나님께 바쳐졌습니다. 사무엘은 어머니의 젖을 뗄 무렵부터 성막에 머물면서 그곳에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하나님을 섬겼다는 것은 그가 하나님을 알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율법의 가르침을 받아 하나님을 알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섬기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때 하나님은 사무엘을 부르셨습니다. 사무엘상 3장에는 이런 사무엘에게 하나님께서 친히 찾아오셔서 말씀하시고 사무엘이 하나님께 응답하게 된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성막의 일을 마치고 잠자리에 들려고 하는 어린 사무엘을 부르셨습니다. “사무엘아 사무엘아.” 그러자 어린 사무엘은 엘리 제사장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라고 여기고 자리에서 일어나 제사장에게로 달려갔습니다. 하지만 사무엘을 부른 것은 제사장이 아니었습니다. 엘리는 사무엘을 돌려보냈습니다. 그러자 자리로 돌아간 사무엘을 하나님께서는 다시 부르셨습니다. “사무엘아 사무엘아.” 그렇게 세 번째 사무엘이 엘리 제사장에게 찾아갔을 때, 엘리는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고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가서 누웠다가 그가 너를 부르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라.” 그런 뒤에 하나님께서는 다시 사무엘을 찾아와 그 곁에 서서, 조금 전과 같이 사무엘을 부르셨습니다. 그때 사무엘은 엘리 제사장이 가르쳐준 대로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바로 그 때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엘리 제사장의 집에 내릴 심판에 관해 말씀하셨습니다.


이 일을 통해 사무엘은 하나님과의 교제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사무엘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고 하나님의 말씀에 응답했으며, 하나님과 교제하였습니다.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서 사무엘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라났고 하나님과 함께 했습니다. 그런 사무엘의 삶과 사역은 많은 열매를 맺으며 많은 능력을 나타내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사무엘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회복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말씀하시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합시다

사사시대 엘리와 그의 두 아들 그리고 어린 사무엘의 삶에 이런 차이를 가져온 것은 하나님과의 교제였습니다. 엘리와 그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성소에 머물며 제사장으로서의 많은 일들을 수행하였지만 그들에게 하나님과의 교제가 없고 하나님의 말씀이 없을 때, 그들 안에는 어떤 생명도 능력도 없었습니다. 겉으로 볼 때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성막과 제사를 통해 자신의 탐욕을 채우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반면 사무엘은 하나님을 알았고 하나님과 교제하였습니다. 그때 사무엘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섬기는 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무엘과 함께 하셨고 사무엘이 하는 말과 일에는 생명과 능력이 역사하였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과의 교제가 없고 하나님을 아는 것이 없으면, 우리가 어떤 자리에 있든 무엇을 하든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게 됩니다. 겉으로 볼 때 예배를 드리는 것 같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 같을지라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받지 못하면, 우리는 형식적인 예배자가 될 뿐입니다. 하지만 설교를 통해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들을 때, 생명과 능력이 역사합니다. 그래서 죄를 회개하기도 하고 그리스도를 믿기도 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사랑하게 됩니다. 우리의 예배와 일상의 섬김이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가 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자라가며 영적인 성숙과 변화를 이루어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우리와 깊은 교제를 나누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교제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하나님과 교제하기를 원하십니다. 또 매 주일마다 설교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우리가 읽는 성경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믿음으로 그 말씀을 받고 그 말씀에 응답하여 하나님께 나아오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간구에 응답하심으로 하나님 자신을 나타내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고 하나님께 응답하십시오. 기도로 응답하고 순종으로 응답하고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사랑을 고백함으로 응답하고 하나님을 찬송함으로 응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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