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우상을 섬겼어요
본문: 사사기 2장 6-23절
나이 많아 늙은 여호수아는 사랑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를 경외하며 오직 그분만을 섬길 것을 당부했습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과 가나안 땅의 수많은 우상숭배의 미혹 앞에 놓여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며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게 될 것을 염려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하나님과 우상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두 마음을 버리고 한 마음, 순전한 마음으로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길 것을 당부했습니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 24:15)
그렇다면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의 당부를 잘 간직하며 지켰을까요? 여호수아의 사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며 죄, 심판, 구원이 끝없이 반복되는 사이클에 빠졌습니다. 여호수아의 우려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심각한 우상숭배에 빠져 들어갔고, 하나님께서는 이런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셔서 그들을 대적의 손에 넘기셨습니다. 그러면 고통 중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찾았고 그때 하나님께서는 한 구원자를 세워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셨습니다. 하지만 사사의 죽음 이후, 이스라엘은 다시 우상숭배로 빠져 들어갔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이스라엘의 악행은 더 심각해졌고 하나님의 진노는 더 커져만 갔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우상 숭배
사사기 2장 11절을 읽어봅시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겼습니다. 여기 “목전”이라는 말은 ‘눈 앞에서’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향한 특별한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바라보고 계심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마치 남편의 시선이 사랑하는 자기 아내를 향해 있는 것과 같고 부모가 자기 자녀를 살피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시며 그들을 향한 특별한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그들이 잘 사는지 혹은 외적의 침입을 받지 않는지 살피시며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즉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과 돌봄 가운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외면하고 하나님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습니다. 그들이 가나안 거민들의 신 바알을 섬긴 것입니다. 사사기 2장 12-13절을 읽어봅시다.
애굽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 곧 그 사방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좇아 그들에게 절하여 여호와를 진노하시게 하였으되 곧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으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 가지 악을 저질렀는데, 그것은 그들을 구원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 곧 가나안 거민들이 섬기던 우상들을 섬기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이 더 이상 그들을 구원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다는 것은 아닙니다.(실로에 있던 성막을 부수거나 철거하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했고 섬겼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명목상의 예배와 섬김일 뿐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는 동시에 바알과 아스다롯 같은 우상들 앞에 절했고 우상에게 바친 음식을 먹고 마시며 그것을 즐거워하였습니다. 이는 마치 아내가 남편과의 법적인 혼인관계만 겨우 유지하지만, 사실상 몸과 마음은 자기 남편 외의 다른 사람에게 향해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방식으로 하나님을 버렸고 바알과 아스다롯과 같은 가나안 거민들이 섬기던 우상들을 섬겼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의 우상숭배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완전히 떠나는 경우는 드뭅니다. 주일을 지키고 예배에 참석하며 기도나 헌상과 같이 외적인 의무들을 감당합니다. 하지만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습니다. 대신에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고 즐거워합니다. 하나님도 섬기고 세상도 섬기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과 세상, 두 가지를 함께 사랑하거나 섬길 수 없도록 지어졌습니다. 우리 마음을 둘로 쪼개어서 절반은 하나님께 드리고 나머지 절반은 세상을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종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는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과 세상을 동시에 사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세상을 버리든,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을 쫓아가든 이 둘 중 한 가지만을 선택할 수 있을 뿐입니다. 이것을 잘 알았던 여호수아는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하며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배할 것을 당부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왜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을 섬기게 된 것입니까? 7절과 10절에서 우리는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백성이 여호수아의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의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 그 세대 사람도 다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사사기 기자는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의 원인을 여호와를 알지 못한 것에서 찾았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 곧 광야에서 그리고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과정 속에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을 보고 그분을 알던 사람들이 살아 있는 동안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다 죽고 그 이후 일어난 다른 세대 곧 가나안 땅에서 태어난 세대는 하나님도,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도 알지 못했고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을 좇았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으면 우리는 필연 우상숭배자가 되고 맙니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단순히 정보로서의 지식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우리가 어떤 사물을 아는 지식과 같은 류의 지식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란 강대상이 어떤 재질이고 어떤 모양과 크기인지를 아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도록 이끄는 인격적인 지식입니다. 바로 그런 지식이 없으면, 우리도 곧 하나님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께 드려 마땅한 우리의 마음을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에게 주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을 얻기를 간절히 원해야 하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가운데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우상숭배의 결과: 하나님의 진노와 징계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과 세상의 있는 것들로 기울어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진노하시며 우리를 징계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사방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좇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진노하시고 그들을 징계하셨습니다. 14-15절을 읽어봅시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 붙여 그들로 노략을 당케 하시며 또 사방 모든 대적의 손에 파시매 그들이 다시는 대적을 당치 못하였으며 그들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의 손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매 곧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것과 같아서 그들의 괴로움이 심하였더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랑의 하나님이신 것을 압니다. 그분은 자비로우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와 진실이 많으신 하나님이십니다(출 34:6-7). 그래서 하나님께서 범죄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진노하신다는 말을 들을 때, 어떻게 사랑이 많으신 분이 우리에게 진노하실 수 있는지를 의아해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우리가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좇을 때, 우리를 향해 진노하시며 질투하십니다.
어떤 남자가 자기 아내가 다른 남자와 데이트를 하는 장면을 보면서, ‘나는 아내가 다른 남자와 데이트를 하는 걸 허용할 정도로 내 아내를 많이 사랑해’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가 아내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는 질투심에 불탈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랑, 특별히 부부간의 사랑은 배타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배우자의 배신에 대해 분노하고 질투하는 감정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배우자에게 신실하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상숭배하는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열정적인 사랑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물론 부부 간의 사랑을 하나님의 사랑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에게 가더라도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자신을 봐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고 그것을 하나님보다 더 높일 때,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내버려두실 수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배반하고 세상을 더 가까이한다고 해도 우리에게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리를 전혀 사랑하지 않으신다는 증거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좇을 때, 진노하시며 징계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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