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하나님이 요나단을 통해 다윗의 목숨을 구하셨어요
가스펠 링크: 예수님은 우리를 친구라고 부르셨어요. 그리고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죽으심으로 우리를 향한 사랑을 보여주셨어요
본문: 사무엘상 18:1-12, 19:1-10, 20:1-42
요절: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 15:13)
엘라 골짜기에서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렸고 이스라엘은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칼과 창 곧 힘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하여 골리앗에 맞선 다윗을 이기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통해 다윗은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것과 구원이 여호와 하나님께 있음을 모든 사람들에게 똑똑히 증거하였습니다. 다윗의 믿음의 행위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했고 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을 북돋아주었습니다. 이처럼 믿음으로 사는 삶은 그 자체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많은 사람들, 특히 하나님의 백성들의 믿음을 세우는 열매를 맺습니다.
다윗을 사랑한 요나단
이후 다윗은 사울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사울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 다윗에 대해 알아보게 하였고 사울의 군대장관 아브넬은 다윗을 사울에게로 데려왔습니다. 사울 앞으로 인도된 다윗은 자신을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로 소개하였습니다. 이때 사울 곁에서 다윗을 눈 여겨 보고 있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바로 요나단입니다. 요나단은 사울의 첫째 아들 즉 왕자로서 만약 사울이 죽고 나면 사울의 왕위를 이을 가장 유력한 인물입니다. 그런데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에게 끌려 그를 깊이 사랑하기 시작하였습니다(삼상 18:1).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여 더불어 언약을 맺었으며 요나단이 자기의 입었던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주었고 그 군복과 칼과 활과 띠도 그리하였더라(삼상 18:3-4)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였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 중 가장 귀한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생명처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요나단은 다윗을 그렇게 사랑하였습니다.[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 22:39, 막 12:31, 눅 10:27)] 그리고 다윗과 더불어 언약을 맺었습니다. 심지어 요나단은 자기가 입던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주고, 자기의 군복과 칼과 활과 허리띠까지 모두 다윗에게 내어주었습니다. 요나단은 이스라엘의 왕자이고 장군입니다. 그가 벗어서 건넨 옷은 그의 고귀한 신분을 나타내는 것이었는데, 그것을 내어준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는 것과 같았습니다. 또 이스라엘의 장수로서 군복과 칼과 활과 허리띠를 내어준 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 3:18)]
요나단이 다윗을 사랑한 이유
그렇다면 우리는 질문하게 됩니다. 왜 요나단은 다윗을 이토록 사랑한 것입니까? 다윗과 같은 유능한 장수를 가까이 하는 것이 자기에게 유익했기 때문입니까? 요나단이 다윗을 사랑한 것은 다윗이 바로 하나님께서 택하신 바로 그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전에 살펴본 것처럼, 사울은 하나님께 버림 받았습니다. 사울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 자신을 더 중히 여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져버렸을 때,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을 구하여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셨다고 하셨습니다(삼상 13:13-14). 그리고 이 사실을 요나단 역시 알고 있었고 요나단은 과연 누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바로 그 사람일지 기다려왔을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때 등장한 것이 다윗이었습니다. 과연 다윗은 믿음의 사람이었고 진정으로 하나님의 영광과 이스라엘 백성의 유익을 구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골리앗과의 전쟁에서 드러났습니다. 따라서 요나단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다윗을 사랑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요나단의 사랑에는 특별한 면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인간적으로 볼 때, 요나단은 다윗을 두려워해야 하고 경계해야 하며, 어떻게든 다윗이 죽기를 바라야 합니다. 왜냐하면 다윗이 죽지 않으면 아버지의 왕권과 자신과 자기 집안이 위태로워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울은 여러 차례 다윗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요나단도 다윗 못지 않은 믿음의 사람이었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백성을 사랑했던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버지와 자신의 집안을 버리고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택하셨다고 말씀하실 때, 요나단은 ‘아멘’이라고 응답했습니다. 요나단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원했습니다. 비록 다윗이 왕이 된다는 것은 자신이 왕이 될 수 없음을 의미하지만, 자기 자신의 안위나 이익 따위는 요나단의 안중에 없었습니다. 요나단은 하나님께서 항상 옳으시며 하나님의 뜻은 항상 선하심을 믿었고 그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원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을 향한 요나단의 사랑이 하나님께서 사랑하신 다윗에 대한 사랑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다윗의 목숨을 구한 요나단
다윗을 사랑했던 요나단은 다윗을 변호했고 다윗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행하였습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사울은 다윗을 여러 차례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을 승리로 끝마치고 성으로 돌아왔을 때, 환영하는 여인들이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라고 노래하였습니다. 그리고 노랫소리를 들은 사울은 불쾌하게 여기며 심히 노하였습니다. 사울은 “사람들이 다윗에게는 수만 명을 돌리고, 나에게는 수천 명만을 돌렸으니, 이제 그에게 더 돌아갈 것은 이 왕의 자리밖에 없겠군!”(삼상 18:8, 새번역)하고 화를 내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이튿날 악한 영에 고통 받는 자신을 위해 수금을 연주하는 다윗을 향해 창을 던졌고 다윗은 가까스로 피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에도 사울은 여호와께서 자신을 떠나 다윗과 함께 하심을 보며 다윗을 의심하며 두려워했고, 자신의 아들 요나단과 모든 신하들에게 다윗을 죽이게 하였습니다.
이때 요나단은 자신이 사랑하는 다윗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은밀한 곳에 숨어있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사울에게는 다윗을 위해 변호하였습니다.
요나단이 그 아비 사울에게 다윗을 포장하여 가로되 원컨대 왕은 신하 다윗에게 범죄치 마옵소서 그는 왕께 득죄하지 아니하였고 그가 왕께 행한 일은 심히 선함이니이다 그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을 죽였고 여호와께서는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큰 구원을 이루셨으므로 왕이 이를 보고 기뻐하셨거늘 어찌 무고히 다윗을 죽여 무죄한 피를 흘려 범죄하려 하시나이까(삼상 19:4-5)
뿐만 아니라 이후 다윗이 사울을 피해 이곳저곳을 유리방황할 때에, 요나단은 다윗을 찾아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의 믿음을 북돋고 그를 위로하며 격려해 주었습니다.
다윗이 사울의 자기 생명을 찾으려고 나온 것을 보았으므로 그가 십 황무지 수풀에 있었더니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일어나 수풀에 들어가서 다윗에게 이르러 그로 하나님을 힘있게 의지하게 하였는데 곧 요나단이 그에게 이르기를 두려워 말라 내 부친 사울의 손이 네게 미치지 못할 것이요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을 내 부친 사울도 안다 하니라(삼상 23:15-17)
이처럼 요나단은 다윗을 사랑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사랑하시는 다윗을 뜨겁게 사랑하였습니다. 요나단은 자기 생명을 아끼고 사랑하듯 다윗을 사랑하였습니다. 요나단은 말과 혀로만 다윗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다윗을 사랑하였고, 자신의 모든 것을 기꺼이 다윗에게 내어주었습니다. 자신의 겉옷, 군복, 칼과 활과 허리띠까지. 자신의 유불리를 생각하지 않았고 다윗을 택하시고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기를 간절히 바라며 다윗을 사랑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다윗을 자신도 사랑하였습니다. 다윗을 위해 아버지 앞에서 다윗을 변호했고 다윗이 사울을 피해 광야를 떠돌 때에도 그의 믿음을 격려하고 그의 마음을 굳게 해 주었습니다.
우리의 신실한 친구, 예수님
다윗을 향한 요나단의 사랑을 보면,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자기 목숨보다 더 사랑하셨습니다.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우리 죄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신 데에서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목숨보다 우리를 더 소중하게 여기셨고, 우리는 그것을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일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셨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6-8)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셨고,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사랑하신 우리 또한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은 하나님을 향한 예수님의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를 위해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서 우리를 변호하시며 기도하시고 우리의 연약한 믿음을 북돋아 주시며 우리를 위로해주시는 우리의 가장 좋은 친구입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를 향해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십니다(요 15:12).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목숨을 버리신 것처럼, 우리도 우리 곁에 있는 친구들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다”(요 15:13)고 하셨는데,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심으로 우리를 가장 큰 사랑으로 사랑하신 다는 사실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 예수님의 친구가 된 우리도 예수님과 같이 서로 사랑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요나단이 다윗을 자기 생명과 같이 사랑했던 것처럼,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려고 자기 자신의 목숨까지도 버리셨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 친구를 사랑하고 서로를 더욱 뜨겁게 사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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