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성령을 위하여 심어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둡시다
본문: 갈라디아서 6장 6-10절
요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 6:7하반절-8)
지난 시간에 우리는 전도서를 통해 우리 인생의 참된 의미와 보람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전도자는 일평생 자기 마음이 즐거워하는 모든 일을 하였지만, 그는 자신의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모든 수고가 다 헛된 것이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전 2:10-11). 사람이 해 아래서 행한 모든 일이 이처럼 헛된 이유는 인생의 유한함 때문입니다. 일평생 수고하며 많은 것을 이루고 많은 것을 소유했을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그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말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도 때가 되면 늙고 쇠약해져 죽게 될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있는 소망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14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 앞에서 행한 일들 그리고 그러한 삶만이 영원한 의미와 보람을 우리에게 줄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이 끝나는 그 날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의 삶과 수고를 영원히 기억하시고 우리를 위로하시며 영원한 상급으로 갚아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세상의 끝 날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모든 수고가 다 헛된 것이었음을 보게 될 것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리라
오늘은 이와 관련하여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인 7절 하반절을 보면,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은 한 사람의 인생을 심고 거두는 일, 농사에 빗대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는 이 말, 원리는 세상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말입니다. 콩을 심으면 콩을 심은 데서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맡을 심은 데서 팥이 납니다. 사과나무를 심고서 거기서 사과가 열릴 것을 기대하지 포도나 감이 열릴 것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무엇으로 심든지, 심은 대로 거둘 것입니다. 즉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 따르는 결과를 얻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내신 질서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 사실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무언가를 심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깊이 고민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되는 대로 살고, 자신이 심는 삶을 살고 있는지, 심고 있다면 무엇을 심고 있는지를 고민하지 않습니다. 대충 ‘어떻게 되겠지?’라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계시고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질서가 있지만, 그런 질서를 무시합니다. 심지어 신자들조차도 이런 고민을 하지 않습니다. 어떤 씨를 심어야 할 것인지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인지 고민하지 않고 묻지 않습니다. 그대신 그저 되는 대로 살아갑니다. 신자들까지 이런 삶을 살아가는 것은 은혜로 말미암는 구원을 오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이렇게 살아가는 것은 ‘은혜로 말미암은 구원’에 대해 오해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의 구원은 우리가 한 일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 때문에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은혜입니다. 하지만 이 말이 우리가 아무렇게 살아도 구원을 받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스스로를 속이지 말라고,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시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이 계시며 하나님께서 심는 자에게 거두게 하시며, 좋은 것을 심는 자에게 좋은 것을 얻게 하시고, 나쁜 것을 심는 자에게 나쁜 것을 얻게 하시는 분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공의로 세상을 심판하실 것임을 알고 우리 자신의 삶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성령을 위하여 심으라
우리는 무엇을 심는 삶을 살아갈 것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농부들은 추수를 하고 나면 그것을 다 먹지 않고 그 중에 종자로 쓸 씨를 추려냅니다. 그리고 종자 씨를 추려낼 때에는 가장 실한 것들을 추려냅니다. 왜냐하면 어떤 씨를 심느냐 하는 것이 어떤 열매를 맺느냐 하는 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나쁜 열매에서 씨를 받아 그것을 심는다면, 거기서 나쁜 열매를 거둘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반면 좋은 열매에서 씨를 받아 그것을 심으면, 거기서 좋은 열매를 거둘 것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 모두는 무언가를 심는 인생을 살아갑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심느냐, 무엇을 위하여 심느냐 하는 것입니다. 8절을 보면, 인생을 두 부류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한 부류의 사람들은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습니다. 다른 한 부류의 사람들은 “성령을 위하여 심”습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해 심는 사람은 어떤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는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으며,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 없이 자기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육체를 위해 심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아갑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인간은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는 대신 스스로가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합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아갑니다. 그것이 육체를 위하여 심는 삶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육체를 위하여 심는 삶을 살아가는 이들은 그에 걸 맞는 수확을 하게 됩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그렇다면 ‘성령을 위하여 심’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성령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알면 우리는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성령께서는 진리의 영이십니다. 우리에게 복음을 알려주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끔찍하고 무익한 죄인인 것과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믿게 해 주십니다. 또 성령께서는 그 모든 일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알려주십니다. 그래서 비록 우리는 우리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얼굴로 보지 못하지만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을 마음으로 사랑하게 됩니다. 또한 성령께서는 주님을 사랑하는 우리가 주님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려주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그리스도의 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고, 그 법을 따라 살아갈 수 있는 의지와 힘을 주십니다. 즉, 성령을 위하여 심는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사랑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선행이라고 부릅니다. 즉 성령을 위하여 심는 삶은 성령을 좇아 살아가는 것이고 선을 행하는 삶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성령을 위하여 심는 사람은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육체를 위하여 심는 삶이 아니라 성령을 위하여 심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낙심하지 말고 심으라
성령을 위하여 심는 삶을 살아갈 때, 한 가지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낙심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라고 말씀합니다. 낙심이 무엇입니까? ‘바라던 일을 이루지 못하여 마음이 상’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위하여 심는 삶을 살아갈 때, 왜 우리는 낙심하기 쉽습니까? 우리가 낙심하는 이유는 우리 수고의 결실을 얻기까지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씨를 뿌리는 족족 하루 이틀이 지나 싹이 나고 줄기가 자라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닙니다. 파종하여 추수하기까지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은 조급해지기 쉽습니다. ‘왜 씨를 뿌렸는데, 성령을 위해 심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 왜 내 삶은 점점 힘들어지는 것일까? 왜 내가 수고한 대로 결실을 볼 수 없는 것일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다가 낙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낙심하는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악한 자, 마귀가 나와 있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성령을 위해 심고 선을 행하는 우리가 그 일을 지속해서 하지 못하도록 우리에게 여러 시험거리를 가져다줍니다. 마귀는 마치 수풀 속에 매복해 있는 원수와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시간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법과 수단을 통해 우리를 낙심케 합니다. 선한 일을 행하고자 하는 우리의 의지를 꺾어놓는 것입니다. 또 때로는 우리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 마음을 낙심케 하기도 합니다. 욥이 고난 가운데 있을 때에, 그의 세 친구 빌닷과 소발과 엘리바스가 찾아와 그가 당하는 고난이 욥의 죄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말들은 욥의 마음을 낙심케 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가까이에 있는 이들의 불신앙적인 말과 행동들로 인해 우리는 낙심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 때에 우리는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성령을 위해 심는 일을 포기하지 않고 인내하며 계속해서 선을 행할 때에 반드시 거둘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물론 거두는 때가 언제일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일 년 후가 될지, 십 년 후가 될지, 죽기 직전이 될지 언제가 될 지 알 수는 없습니다. 심지어 이 땅을 살아 있는 동안에도 우리 수고의 열매를 거두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모세를 생각해 보십시오. 모세는 40년 동안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였습니다. 그 일은 매우 힘들고 고단한 일이었습니다. 오죽했으면 모세는 하나님께 자신의 목숨을 거두어달라고 했겠습니까?하지만 모세는 포기하거나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모세는 그토록 원했던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느보산에서 생을 마감해야 했습니다. 수고의 열매를 거두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확실한 한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선을 행할 때, 우리는 그에 따르는 열매를 반드시 거둘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금생에서 거두지 못한다할지라도 다가올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우리는 거두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강림하실 때, 성령을 위해 심기를 포기하지 않은 우리는 의와 영생의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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