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읽고 묵상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말씀을 잘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도록 은혜 주시길 기도합시다. 그리고 오늘의 말씀을 읽으십시오. 본문을 읽고 난 후 아래 해설을 읽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이스마엘이 태어났을 때 아브라함의 나이는 86세였습니다. 창세기 17장은 그로부터 13년 후의 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이 99세 때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먼저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전능한 하나님”(엘 샤다이)이라고 알리셨습니다. 이 칭호는 하나님의 주권과 권능을 담는 표현입니다. 다음으로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고 명령하십니다. ‘내 앞에서 행하다’라는 말은 에녹과 노아에게도 사용되었던 ‘동행하다’라는 말과 같은 단어입니다. ‘완전하라’는 말은 법적인 의미에서 죄가 없이 완전하라는 말이 아니라 관계의 온전함, 진실함을 의미합니다.
즉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서 무엇을 받아내시기 위함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요구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마음껏 신뢰하고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언약으로 표현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즉 모든 것을 그 뜻대로 행하시는 분께서 언약으로 자신을 아브라함과 묶으셔서, 아브라함의 어떠함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하여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창세기 16장을 보며,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사람의 지혜와 방법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것이 얼마나 무익한 것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과 사람의 경험과 상식은 하나님의 구원과 복을 온전히 신뢰하기 어렵게 합니다. 아브라함도 그랬습니다. 창세기 17장 17-18절에서 하나님께서 사라에게 아들을 주겠다고 말씀하시자 아브라함은 속으로 ‘어떻게 그게 가능합니까’라고 생각하면서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네 아내 사라가 정녕 네게 아들을 낳으리라”고 말씀하시며, 하나님께서 그와 영원한 언약을 세우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멀게만 느껴질 때, 현실은 다르다고 생각될 때, 오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우리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온전히 신뢰하고 의지할 수 있는 분이십니다.
5절과 15절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이름을 바꿔주십니다. 이름은 곧 그 존재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이름이 바뀐 것은 그 사람의 정체성이 바뀐 것입니다. ‘아브람’은 존귀한 아버지라는 뜻인데, 여러 나라의 아버지라는 의미의 ‘아브라함’으로 이름을 바꿔주십니다. 이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아브라함의 이름에 담아주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99세의 할아버지이고, 하나님께서는 아직까지 약속하신 아들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이름은 ‘많은 나라아의 아버지’라고 바꾸시고 부르십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새로운 이름과 정체성을 부여받았습니다. 죄인에서 의인으로,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그리스도와 연함됨으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리고, 성령님의 거하심으로 인해 성도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이름은 우리의 변화된 신분과 정체성을 보여줍니다. 물론 우리는 여전히 의롭지 못하고, 거룩하지 못하고, 그리스도인의 장성한 분량에 한참 미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인이라 인정하시고, 성도라 부르시고, 하나님의 자녀라 부르십니다. 지금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 더 믿을 수 있는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아브라함 언약의 표지 : 할례
하나님의 언약의 가장 중요한 의미가 7-8절에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하나님이 되어주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기업, 백성, 자녀가 되는 것이 언약입니다. 15장의 언약의식은 이 언약을 주도하시고 이루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가르쳐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걸고 맹세하심으로 이 언약이 결코 취소되거나 실패할 수 없음을 확증하셨습니다. 오늘 창세기 17장은 언약에 있어 우리의 책임을 강조합니다. 9절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언약을 지키라고 명령하시고, 14절에서는 이 언약을 배반하는 자는 하나님의 백성에서 끊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언약의 징표로 요구하시는 할례에 그런 의미가 잘 나타나는데요. 할례의 의미는 크게 세 가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첫째, 할례는 언약백성과 이방인들을 구분하는 징표로써, 세상과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둘째, 할례에서 표피를 제거하는 위생적 작업은 언약백성이 거룩하고 정결해야 함을 가르쳐주는 표징이 됩니다. 셋째, 표피를 잘라내는 것은 언약에 불순종할 경우 하나님의 백성에서 끊어질 것을 가르쳐주는 표징이 됩니다. 즉 할례는 언약백성의 거룩한 삶을 요구합니다.
본문은 언약의 대상이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이라고 밝힙니다. 그런데 이 언약의 표징인 할례의 대상에 아브라함의 집에 속한 이방인도 포함되었습니다(12절). 할례가 처음 주어질 때부터 이방인이 이 언약에 포함되었다는 사실에서, 모든 민족이 아브라함을 통해 복을 받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언약을 통해서 이루어질 것임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여자의 후손이요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이 언약의 성취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일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구약에서 할례의 의미는 신약에서 세례로 이어지는데요. 특별히 세례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가리키는 예식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결코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오늘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요구는 동일합니다. 그것은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행하고, 완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언약을 어기면 반드시 하나님의 백성에서 끊어지는 저주와 심판을 받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이라도 죄값을 치르기 위해서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야 했습니다. 언약을 어기고 하나님께 범죄한 우리가 받아야 할 저주와 심판을 예수님이 대신 받으셨기에, 우리는 더이상 저주와 심판의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고 율법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언약을 지키고 율법에 순종하는 의무가 없어졌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동기가 달라진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키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최고의 동기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 요구는 이제 우리에게 기쁨과 복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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