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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Lee Juman

매일말씀묵상(210118) : 창세기 18장

말씀을 읽고 묵상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말씀을 잘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도록 은혜 주시길 기도합시다. 그리고 오늘의 말씀을 읽으십시오. 본문을 읽고 난 후 아래 해설을 읽습니다.


언약백성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창세기 18장 1-15절은 아브라함이 지나가는 나그네를 아주 극진히 대접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아브라함은 세 명의 나그네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달려나가 영접합니다. 100살에 가까운 노인이 달려나가서 환영하며, 그들을 대접하게 해달라고 간절하게 요청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지요? 오히려 세 사람이 아브라함에게 간절히 도움을 요청해야 할 것 같은데 말이지요. 아브라함의 호의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사라에게 고운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해서 떡을 만들라고 말하는데요. ‘3인분 정도 되겠지’라고 생각하기 쉬운데요, 한 스아는 8리터 정도로, 세 스아면 대략 12kg정도 됩니다. 세 사람을 대접하기에는 매우 많은 양이지요? 거기에 더해 기름진 송아지를 잡습니다. 이 정도면 손님 대접이 아니라 잔치입니다. 요리가 나오자 아브라함이 음식을 나르고, 직접 서서 시중을 듭니다.


성경이 아브라함의 손님 대접을 이렇게 자세하게 설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본문의 의미를 잘 요약해서 보여주는 말씀이 히브리서 13장 1-2절인데요.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본문은 형제 사랑과 손님 대접에 대해 설명하는데요. 전후 문맥을 고려할 때 이것이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는 언약백성의 특징으로 제시됩니다. 17장에서 할례를 통해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아브라함은 신분만 바뀐 것이 아니라 삶의 모습도 바뀌었습니다. 아브라함과 대조되는 모습을 19장의 소돔 사람들이 잘 보여줍니다. 소돔 사람들은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이 아니라 해치기 위해 몰려옵니다.


사실 나그네를 대접하는 일은 어려운 일입니다. 오늘날 개인주의화된 사회에서는 더욱 부담스러운 일이지요. 안타까운 것은 교회 역시 다른 사람을 대접하는 일, 또는 대접받는 것을 부담스럽게 생각하여서,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를 내어주고 나누는 모습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할례를 통해 세상과 구별된 언약백성의 삶을 제시할 때, 나그네를 극진히 대접하는 것으로 말합니다. 히브리서 말씀에 의하면 형제 사랑입니다. 당시 나그네란 기본적으로 내가 모르는 사람입니다. 어떤 보답, 보상을 기대할 수 없고, 대접만 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힘써서 극진히 대접하는 것이 언약백성의 마땅한 삶의 모습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그렇게 영접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25장에서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실 때, 우리가 나그네와 병든 자, 옥에 갇힌 자를 대접하는 것을 예수님을 대하는 것과 동일하게 보신다고 하셨습니다.


1절과 13절을 볼 때, 세 사람 중 한 분은 사람의 모습으로 오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의 극진한 대접을 받으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내가 정녕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언약백성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신 약속에 더 큰 확신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나그네요, 원수와 같은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용납하시고 환대하셨는지 생각합시다. 아브라함이 손님을 대접하다가 부지 중에 천사를 영접한 것처럼, 우리도 나그네와 이웃을 대접하고 우리의 삶을 나눌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

아브라함에게 극진한 대접을 받은 세 사람이 일어나 소돔을 향합니다. 배웅을 나온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을 아브라함에게는 숨기지 않겠다고 하시면서,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을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후에 말씀은 우리에게 익숙하지요. 아브라함은 ‘만일 소돔 성에 의인이 50명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50명의 의인을 위해 그 성을 용서해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합니다. 공의로 세상을 심판하시는 하나님께서 의인과 악인을 동등하게 대우하시는 것은 불가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말대로, 소돔 성에서 의인 50명을 찾으면 그들을 위해 온 지경을 용서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아브라함의 계속되는 간청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의인이 10명만 있어도 소돔 성을 멸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시고 돌아가셨습니다.


본문은 마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기도에 따라 뜻을 바꾸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의 기도로 하나님의 뜻을 바꿀 수 있는 것일까요? 본문을 조금 더 깊이 생각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소돔 성을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시기 전에 먼저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하시면서, 18-19절을 보면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이 아브라함을 통해 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신 이유는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따라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소돔과 고모라 심판 계획을 말씀해주신 이유는 아브라함의 기도를 통해 소돔성의 의인들이 복을 받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고 가르쳐야 할 아브라함이 의와 공도를 따라 하나님께 간구할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말씀하신 이유는 결국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시려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설득하여 하나님의 뜻을 바꾼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계획을 가르쳐 주셔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께 간구하도록 하신 것이고,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는 그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말씀으로 교훈해 주시는 이유도 그와 같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악한 시대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따라 하나님의 백성들을, 의인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 세상이 이토록 악하고 죄로 가득함에도 불구하고 심판을 미루고 계신 것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을 교회로 부르셔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단 한명의 의인도 멸망하지 않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도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의 의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어둡고 악한 시대를 살아가는 교회와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과 해설을 읽고 묵상하며, 성령님께서 깨닫게 해주시는 내용을 정리해 봅시다. 깨닫게 해주신 말씀을 붙잡고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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