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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Lee Juman

매일말씀묵상(210122) : 창세기 22장

말씀을 읽고 묵상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말씀을 잘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도록 은혜 주시길 기도합시다. 그리고 오늘의 말씀을 읽으십시오. 본문을 읽고 난 후 아래 해설을 읽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청사진

창 22장 16-18절은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 중 하나님의 맹세가 포함된 유일한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는 12장에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고, 15장에서 언약으로 엄숙히 선포하셨으며, 17장에서 언약의 보증을 주신 후에, 22장에서 맹세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될 것을 강력하게 보증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언약을 반드시 행할 것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 언약의 성취는 아브라함의 순종과도 분명히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아브라함의 순종은 믿음의 순종입니다. 언약 관계 안에서 신실하고 충성된 사랑에서 나오는 순종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강력하게 보증하셨지만, 믿음의 순종이 없다면 이 언약은 성취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맹세가 있기 전에 하나님의 시험이 있었습니다.


1절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목적이 분명하게 나옵니다. 바로 “시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시험에 잘 순종했습니다. 그런데 만일 이 시험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네’라고 순종하지 않고 ‘아니요’라고 말했다면, 우리는 그 이유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나는 내 아들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바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을지 모르겠습니다. 또는 “나에겐 아들이 이삭 하나밖에 없어서 바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을 수도 있었겠고요.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면, “하나님이 이삭을 통해서 약속을 이루겠다고 하셨자나요! 그러니 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순종할 수 없는 이유가 많았음에도 아브라함이 순종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히브리서 저자는 아브라함의 순종의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해줍니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히 11:17-19 ).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시험 문제를 주셨는데, 아주 어려운 문제를 주셨습니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도 참이고, 이삭을 통해서 약속의 후손을 주시겠다는 것도 참이라면, 이 둘을 조화시키는 답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이삭을 죽였다가 살리시는 것이지요. 이 부활신앙이 아브라함에게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확신을 갖고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산으로 갈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대화 밑에 있는 보이지 않는 대화를 읽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지시한 한 산에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고 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위에서 우리가 생각했던 변명 중 아무 말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네가 이삭을 사랑하는 것도 알고, 이삭이 하나밖에 없는 아들인 것도 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보이지 않는 대화는 이것입니다. “내게도 아들이 하나 있단다. 그리고 나도 그 아들은 무지 사랑한단다.”


하나님께서 구원의 청사진을 그림동화처럼 아브라함과 이삭을 통해 보여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자기가 받은 이 언약의 핵심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이 시험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곳이 가까워졌을 때, 아브라함은 종들을 두고 이삭과 단둘이 길을 나섭니다. 아브라함이 앞서서 불과 칼을 가져가고, 이삭이 제사에 사용할 나무를 지고 따라가는 모습은 십자가를 지고 힘겹게 골고다로 오르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과 겹쳐집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모든 것을 얘기하지 않았기에, 둘은 일상적인 대화를 하면서 동행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세는 단 하나의 대화만을 기록하였습니다. 이삭이 아브라함에게 묻습니다. “아버지, 번제로 드릴 어린양은 어디에 있나요?” 아브라함이 대답합니다. “아들아, 번제할 어린양은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하실 것이란다.” 아브라함은 “바로 너란다”라고 말하지 않고,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실 것”이라고 진주와 같은 고백을 하였습니다.


“여호와 이레!”(22:14). 아브라함의 고백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준비하셨습니다. 이 어린양이 유월절 어린양이라는 별명이 되었습니다. 모리아 산에서 이삭의 역할이 바뀌었습니다. 이삭의 역할은 여기까지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대신해서 하나님이 준비하신 양을 잡았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번제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됩니다. 바로 우리를 위해 “대속의 죽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아브라함과 이삭은 실존적으로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시험의 핵심은 “번제할 어린양은 어디에 있습니까?”라는 질문으로 모아집니다. 그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16-18절에 나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네 씨”를 말씀하십니다. 이 씨(후손)는 창세기 3장 15절에서 말씀하신 바로 “그 씨”, “그 후손”을 의미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유대인들은 이 후손을 집합명사로 해석하여 유대인 전체를 가리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갈라디아서 3장 16절에서 사도바울은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라고 그 의미를 분명하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고, 구원 계획의 청사진을 보여주셨습니다. 차나 집을 만들 때에도 설계도 없이 만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의 계획을 세우셨고, 그 청사진을 아브라함에게 계시하셨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과 해설을 읽고 묵상하며, 성령님께서 깨닫게 해주시는 내용을 정리해 봅시다. 깨닫게 해주신 말씀을 붙잡고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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