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읽고 묵상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말씀을 잘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도록 은혜 주시길 기도합시다. 그리고 오늘의 말씀을 읽으십시오. 본문을 읽고 난 후 아래 해설을 읽습니다.
약속의 땅을 소유하게 된 아브라함
창세기 23장은 사라의 죽음으로 시작합니다. 성경에 여성의 수명이 기록된 것은 사라가 유일합니다. 그만큼 사라를 중요한 인물로 보는 것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은 사라의 죽음과 그녀에 대한 아브라함의 슬픔에 대해서는 간략하게 기록하고, 사라의 매장지를 구매하는 이야기를 길고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문이 우리에게 교훈하려고 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엿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창세기 22장과 23장은 동일한 주제를 다룹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22장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후손(씨)에 대한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여준다면, 23장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 대한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여줍니다. 아브라함은 사라의 매장지를 구매함으로 가나안 땅 전체가 자신과 후손들에게 주어질 것이라는 믿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 사라가 죽었고, 이제 아브라함은 사라를 매장해야 했습니다. 가나안 땅에 그냥 사라를 묻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사라를 가나안 사람이 소유한 땅에 장사하면 안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요? 사라를 매장하고, 얼마 후에 아브라함 자신도 죽고 무덤에 묻히게 될 것입니다. 그의 후손들도 그렇게 되겠지요. 그리고 그 매장지에는 가나안 사람들의 무덤도 들어서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면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언약 백성인지, 아니면 가나안 사람인지 모를 정도로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6절에서 헷사람들이 자신들의 묘지 중에 좋은 것을 택하여 그냥 사용하라고 했음에도, 아브라함이 기어이 땅을 구매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거래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이방인들에게 땅을 영구적으로 파는 것은 매우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협상은 서로를 존중하는 가운데 매우 정중하게 이루어졌지만, 헷사람은 어떻게든 땅을 팔지 않으려 하고, 아브라함은 어떻게든 땅을 사려고 하는 가운데 팽팽한 대화를 주고 받습니다. 이 일은 성문 앞에서 진행되었는데요(10절). 고대사회에서 성문은 공식적인 재판과 결정이 이루어지는 장소였습니다. 즉 이 협상의 결과는 많은 증인들 앞에서 법적 효력을 갖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에브론에게 막벨라 굴을 팔라고 하고, 에브론은 그 밭과 굴을 그냥 주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기어이 값을 주고 사겠다고 하자, 에브론은 밭의 가격이 400세겔이라고 말하며, 그렇지만 우리 사이에 어떻게 돈을 받고 거래하겠냐고 말하지요. 당시 은 400세겔은 매우 큰 금액입니다. 참고로, 나중에 다윗이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을 구매할 때 가격이 은 50세겔이었습니다. 단순히 비교해봐도 굴이 있는 들판의 값으로 은 400세겔은 매우 비싼 금액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에브론의 말을 듣자마다 이 돈을 지불하고 밭을 구매합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어리석게 보였을 것이 분명합니다. “매장지를 사려고 그 큰 돈을 쓴다고? 그것도 그냥 주겠다는 것을 거절하고?”라고 생각했겠지요.
여기에 오늘 본문의 의미가 잘 드러납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에 대한 시험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을 분명하게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100세의 노인에게도 약속대로 아들을 주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아들이 죽으면 다시 살리셔서라도 하나님의 언약을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그런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한 땅을 구매했습니다. 비록 이 땅을 차지하는 것은 아주 먼 미래의 일이지만, 하늘의 별들, 바다의 모래같은 자손에 대한 약속을 독자 이삭으로 붙잡은 것처럼, 막벨라 굴을 소유함으로 하나님이 이 땅 전체를 주신다는 약속을 붙잡은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구원이고, 장차 임할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약속으로 받았고, 장차 완성될 미래를 소망하며 살아갑니다. 아브라함과 같이 우리는 이 약속을 품고 나그네처럼, 잠시 거주하는 사람처럼 이 땅에서 살아갑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살아가기 위해서 비싼 대가를 지불해야 했던 것처럼, 우리도 이 땅에서 믿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세상에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어리석고 바보처럼 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천국은 밭에 감추인 보물을 발견한 사람과 같고, 가장 값진 진주를 찾은 진주장사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가장 귀한 것, 가장 가치 있는 것을 얻기 위해 그보다 가지 없는 것들을 포기하는 것은 결코 어리석은 일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얻는 것은 우리의 전부를 지불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