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읽고 묵상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말씀을 잘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도록 은혜 주시길 기도합시다. 그리고 오늘의 말씀을 읽으십시오. 본문을 읽고 난 후 아래 해설을 읽습니다.
유다와 그의 후손 이야기
창세기 38장은 유다와 그의 후손(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요셉에 관한 이야기가 진행되는 중간에 뜬금없이 유다의 이야기가 들어왔나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창세기 37장부터 시작되는 야곱의 이야기는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는 야곱의 열 두 아들에게 관한 이야기이고, 그 중에서 유다와 요셉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것은 나중에 야곱이 자녀들을 축복할 때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요셉에게는 다른 형제들보다 한 몫을 더 주는데 이것은 장자가 받는 축복입니다(48:22). 유다에게는 형제들의 찬송이 되고, 모든 백성이 복종하게 될 것이라고 축복합니다. 유다의 후손이 이스라엘의 통치자가 될 것이라는 축복입니다(49:8-12). 그런 맥락에서 모세는 요셉과 유다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오늘 유다는 요셉과 대조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요. 요셉은 형들에 의해(특별히 유다의 영향으로) 애굽으로 팔려가게 되었는데, 유다는 스스로 가나안 사람에게 내려갑니다. 38장 1절을 시작하는 ‘그 후에’라는 말을 통해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간 후에 유다가 가나안으로 내려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유다가 며느리 다말과 성적으로 범죄했을 시점과 39장에서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이겨내고 성적으로 범죄하지 않았을 때가 거의 비슷한 시기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오늘 유다의 이야기는 여러 모로 요셉과 비교되는데, 유다의 죄악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유다는 자기 형제들에게서 내려가서 가나안 사람과 친구가 됩니다. 언약 백성들에게서 이탈하여 가나안 사람과 가까워진 것입니다. 그리고 가나안 여자를 아내로 취합니다. 2절에서 ‘보고 취하다’라는 말은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었을 때 사용되었던 표현입니다. 가나안 여자의 외모를 보고 아내로 삼은 것입니다. 이 무명의 아내로부터 세 명의 아들을 얻게 되는데요. 유다는 장자 엘을 가나안 여자 다말과 혼인하게 합니다. 그런데 7절에서 보면 유다의 장자인 엘이 여호와 목전에서 악하여 여호와께서 죽이셨다고 말합니다. 어떤 악인지 알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즉시 심판하실 만큼 큰 죄악을 범했다는 사실은 분명하지요. 당시 법에 따라 형이 후손을 낳지 못하고 죽게 되면, 동생을 통해 아들을 낳아서 형의 가문을 이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유다는 둘째 아들인 오난에게 그 의무를 행하라고 하지요. 하지만 오난은 그 의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습니다. 9절을 보면 오난은 그 씨가 자기 것이 되지 않을 줄 알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형의 후손이 없는 상황에서는 오난이 장자의 몫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형수를 통해 아들을 낳을 겨우 그가 장자의 몫을 받게 될 것이고, 그러면 오난이 받을 몫은 확연히 줄어들게 될 것입니다. 이 일이 하나님 앞에 악한 행위였고, 오난 역시 하나님의 심판으로 죽게 됩니다. 두 아들의 악은 유다와 그의 가족의 실상을 잘 보여줍니다. 셋째 아들 셀라는 아직 어렸고, 유다는 다말에게 셀라가 장성할 때까지 친정에 가서 기다리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11절 후반부에 보면 유다는 셀라도 형들같이 죽게 될까 염려하였다고 합니다. 즉 다말을 친정으로 보낼 때 이미 유다는 셀라를 통해 다말에게서 후손을 낳게 하지 않겠다고 결정한 것이지요. 자기 아들들이 악하여 하나님께 심판을 받았다면 그 악을 두려워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유다는 악은 두려워하지 않고 죽음만을 두려워합니다.
이후 유다의 아내가 죽고, 유다는 가나안 친구인 아둘람 사람 히라와 함께 양털을 깎기 위해 딤나로 갑니다. 다말이 그 소식을 듣고, 창녀와 같이 옷을 입은 후에 유다가 지나가는 길목에서 기다렸습니다. 14절은 그 이유를 셀라가 장성하였음에도 다말을 그의 아내로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유다는 다말을 창녀로 알고 그녀와 잠자리를 갖습니다. 당장 돈이 없었던 유다는 돈을 지불하겠다는 약속으로 자신의 도장과 끈과 지팡이를 다말에게 맡깁니다. 나중에 유다는 친구인 히람을 통해 약속한 값을 지불하려고 하였지만, 그녀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세 달이 지났고, 유다는 며느리 다말이 행음하여 임신하였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유다는 즉시 그녀를 끌어 내어 불사르라고 말합니다. 그는 자신의 부끄러운 음행은 생각하지 않고 며느리의 음행에 분노합니다. 다말은 도장과 끈과 지팡이를 제시하면서 이 물건의 주인으로부터 잉태하였다고 말하지요. 그것을 보고 유다가 말합니다.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창세기 38장은 그 내용 전부가 유다의 죄에 대한 폭로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본문은 유다가 죄를 깨닫게 되고, 유다의 후손이 복을 받는 것으로 마무리 됩니다. 유다가 자신의 죄를 결정적으로 깨닫게 되는 계기가, 다말에게 “그가 나보다 옳다”고 말한 때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유다가 셀라를 다말에게 주지 않은 것과 다말이 유다와 행한 일을 비교해서 한 말이 아닙니다. 유다는 다말에게서 어떻게든 남편의 후손을 이어가려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반면 유다와 그의 아들들은 언약의 후손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다말이 분명한 언약백성의 신앙을 갖고 이 일을 행하였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적어도 유다보다 언약의 후손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였던 것이 분명합니다. 이것이 ‘그가 나보다 옳다’고 말한 의미입니다.
유다가 다시는 그녀를 가까이 하지 않았다는 말은 유다가 자신의 죄를 깨닫고 뉘우쳤음을 보여줍니다. 다말은 쌍둥이를 출산하게 됩니다. 먼저 손이 나온 아이의 손에 붉은 실을 매었습니다. 그런데 그 손이 도로 들어가고 다른 형제가 먼저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산파가 ‘왜 네가 먼저 터뜨리고 나오느냐’라고 말해서 어뜨리다라는 의미로 그 이름을 베레스라 짓습니다. 다말이 쌍둥이를 낳은 것은 리브가가 에서와 야곱을 낳은 것과 비슷합니다. 쌍둥이라는 공통점 외에도 먼저 나온 세라에게 붉은 줄을 매어 준 것과 에서의 털이 붉었다는 것, 결과적으로 동생이 언약의 복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 그렇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복을 주신 것처럼, 유다의 아들 베레스에게 복을 주실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마태복음 1장의 예수님의 족보에는 유다, 다말, 베레스, 세라의 이름이 모두 언급됩니다. 오늘 창세기 38장이 유다와 그의 후손이야기라고 말씀드린 이유입니다. 유다의 많은 죄악과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유다를 돌이키게 하시고, 유다를 통해 약속하신 여자의 후손을 주셨습니다. 마태는 예수님의 족보에서 유다와 다말의 부끄러운 행위를 선명하게 기록하여, 우리의 죄와 수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신실하게 자신의 언약을 이루셨음을 보여줍니다.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유다와 다말과 같은 우리를 죄와 수치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죄로 얼룩지고 연약한 우리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복된 삶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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