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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Lee Juman

매일말씀묵상(210208) : 창세기 39장

말씀을 읽고 묵상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말씀을 잘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도록 은혜 주시길 기도합시다. 그리고 오늘의 말씀을 읽으십시오. 본문을 읽고 난 후 아래 해설을 읽습니다.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므로 형통한 자가 되다


창세기 39장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므로 요셉이 형통한 사람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처음과 끝에 반복해서 이 사실을 말합니다(2, 23절). 이 말씀은 요셉의 삶을, 더나아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삶을 가장 잘 요약해줍니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시고, 형통하게 하신다는 사실은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우리의 형통과 번영은 우리의 환경, 운, 노력 등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형통하게 하십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요셉의 생애에서 이 표현은 창세기 39장에서만 발견되는데, 그때 일어난 일이 요셉이 보디발의 종으로 신실하게 섬겼지만,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이 무엇인지, 형통이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보게 합니다.


요셉은 애굽으로 이끌려 내려가고, 바로의 시위대장 보디발에게 팔립니다.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셔서 요셉은 형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보디발과 주변 사람들에게도 분명하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보디발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 소유를 다 요셉에게 맡깁니다. 요셉이 맡은 후부터 하나님께서 보디발의 집에 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합니다. 요셉의 외모가 준수하였기 때문입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노골적으로 “나와 동침하자”라고 유혹합니다. 요셉은 거절하지요. 그 이유는 그것은 주인의 신뢰에 대한 배신이고, 그녀의 남편의 권리에 대한 침해이고,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서 큰 악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날마다’ 요셉을 유혹합니다. 유혹은 ‘날마다’ 우리에게 찾아옵니다. 한 번 두 번 피하고 이긴다고 끝나지 않습니다. 칼뱅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서 경건한 요셉은 성령의 놀라운 권능을 힘입어 자신이 죽을 각오로 사악한 여인의 온갖 유혹에도 굴복하지 않고 견뎌 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요셉은 거절했을 뿐만 아니라 함께 있지도 않으려고 피해 다닙니다. 한 주석가는 이 장면의 아이러니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녀는 그 집의 여주인이지만 남편의 노예를 향한 욕정의 노예다!” 종이지만 하나님 앞에서 죄에 대하여 자유로운 요셉과, 주인이지만 정욕에 노예가 된 보디발의 아내는 우리로 참된 자유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를 정말로 자유케 하는 것은 우리의 환경이나 신분이 아니라 복음의 진리입니다.


어느날 요셉이 일을 하려고 보디발의 집에 들어갔는데, 보디발의 아내 외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여주인이 있는데 수종드는 종들이 없다는 것은, 이 일이 보디발의 아내에 의해 조성된 환경임을 보여줍니다. 그녀는 요셉이 하나님 앞에서 큰 악을 행할 수 없다는 말의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사람들의 눈치를 본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알 수 없는 환경을 조성하고 유혹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요셉이 거절하고 도망가버립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요셉을 유혹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자기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더이상 요셉을 유혹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요셉에 대한 욕망은 증오로 바뀌었습니다. 그녀는 갑자기 소리를 소리며 자기가 붙잡아 벗긴 요셉의 옷을 들고 나와 요셉이 자기를 희롱하려 했다고 누명을 씌웁니다.


보디발이 이 말을 듣고 심히 분노합니다. 그런데 보디발의 분노의 대상이 분명하지 않습니다. 상황을 보면 요셉에게 분노한 것 같은데요. 요셉이 받은 온건한 형벌을 보면 그렇지 않은 것도 같습니다. 종이 주인의 아내를 강간하려고 시도한 것은 즉각 처형당할 만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보디발은 요셉을 감옥에 가두기만 하는데, 그 감옥도 왕의 죄수를 가두는 감옥이었습니다. 다른 증거나 증인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요셉에게 형벌을 준 것 같은 느낌입니다. 그렇다면 아마도 보디발의 분노는 아내를 향한 것일 수 있습니다. 아내와 요셉을 잘 알았다면 이 일의 내막이 어떠했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요셉은 감옥에 갇힙니다. 그런데 감옥에서도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십니다. 간수에게 은혜를 받게 하셔서 요셉은 전적인 신뢰를 받으며 감옥에 갇힌 자가 아니라 감옥에 갇힌 자들을 섬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고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삶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형들에게 노예로 팔려와 종이 되고, 유혹을 이겨내고, 억울한 누명을 써서 감옥에 갇히는 중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그러면 형통한 삶이란 무엇인가요? 그렇게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 앞에서(Coram deo)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형편이 좋을 때뿐만 아니라 나쁠 때도 형통할 수 있습니다. 왜 모세는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을 때가 아니라, 보디발의 종이 되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을 때 유독 형통하였다고 말했을까요? 당장 우리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가는 그 삶의 과정은 하나님께서 요셉을 높이 세우고 형통하게 하시는 과정이었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더 기억할 것은 그렇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형통하게 하시는 삶은 우리의 이웃에게 드러나고 복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나의 삶의 환경을 바꾸지 않지만, 나를 통해 내가 있는 곳을 복되게 하십니다. 요셉은 종이 되고 죄수가 되었지만, 그는 계속해서 사람들을 섬기고 사람들에게 복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약속하신 복이고, 그리스도 안에서 오늘 우리에게 주신 약속과 복이기도 합니다.


오늘도 우리의 환경과 상황에 낙심하고 불평하기보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매일의 유혹과 싸워 이겨나가고, 주님께서 허락하신 자리에서 섬기며 복이 되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과 해설을 읽고 묵상하며, 성령님께서 깨닫게 해주시는 내용을 정리해 봅시다. 깨닫게 해주신 말씀을 붙잡고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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