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읽고 묵상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말씀을 잘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도록 은혜 주시길 기도합시다. 그리고 오늘의 말씀을 읽으십시오. 본문을 읽고 난 후 아래 해설을 읽습니다.
이스라엘의 번성과 바로의 억압
가나안 땅에 7년 동안 큰 흉년이 들었을 때, 야곱과 가족들은 애굽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오묘한 섭리 가운데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세우셔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생존할 수 있도록 예비하셨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는 그렇게 애굽에 들어간 야곱의 가족 70명이 애굽에서 번성하고 심히 강대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야곱의 가족들이 애굽에 내려간 뒤 약 350년 이후의 일입니다. 그 무렵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애굽을 다스리게 됩니다. 새 왕은 이스라엘 백성이 많고 강한 것이 불안했습니다. 혹시라도 애굽의 대적들과 한 편이 되면 큰 위협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노예로 만들어 억압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를 위해 성을 쌓는 일에 투입시키고 학대를 가했습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더욱 번성하고 퍼져갔습니다. 바로와 애굽 사람들의 근심을 볼 때, 이스라엘 인구는 그야말로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 어렵고 힘든 노동으로 이스라엘을 괴롭힙니다.
이스라엘의 번성과 바로의 억압은 이미 하나님의 뜻 가운데 계획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창 15:13-1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편으로는 이스라엘을 번성하게 하시며, 다른 한편으로는 가나안 사람들의 죄악이 가득 차는 날을 기다리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차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고난을 허락하십니다. 이 고난은 애굽에서 만족하고 안주하려는 이스라엘을 일깨우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창세기는 요셉의 유언으로 끝났는데요, 요셉은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여러분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실 것입니다, 그때 나의 유골을 꼭 가지고 올라가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 약속을 기억하고, 약속의 땅을 소망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애굽에서의 삶이 만족스럽자 약속의 땅은 점차 잊혀졌고, 하나님의 찾아오심에 대한 기대도 약해져갔습니다. 세상에 만족하여 하나님을 잊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고난이라는 확성기를 통해 큰 소리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찾으라,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두 산파
바로는 학대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거기서 더 나아가 히브리 산파 두 사람 십브라와 부아를 불러 명령을 내립니다. 히브리 여성의 출산을 도울 때, 잘 살펴서 아들이면 죽이고 딸은 살려두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이 명령은 그 자체로 끔찍한 명령이었지만, 더 무서운 사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여자의 후손”(창 3:15), 곧 메시아의 혈통을 끊어버리는 일을 초래하는 명령이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구원을 막으려는 사단의 계획이 숨어 있었습니다. 마치 헤롯이 이스라엘 왕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베들레헴의 영아들을 학살했던 것과 본질적으로 같은 일을 시도한 것입니다.
하지만 바로의 계획은 성공할 수 없었습니다. 산파들이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렸기 때문입니다. 바로가 산파를 불러, ‘왜 남자 아기들을 살렸느냐’고 묻습니다. 산파는 히브리 여인은 건장하여 산파가 가기 전에 이미 해산하였기 때문이라고 변명합니다. 하지만 진실은 산파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바로의 명령을 어길 수 있었습니다(17절). 하나님께서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셨고, 그 후손들도 매우 번성하고 강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바로는 모든 백성에게 이 끔찍한 명령을 내립니다. “아들이 태어나면 나일 강에 던지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출애굽기는 애굽 왕의 이름은 무명으로 처리하면서, 두 산파의 이름은 명시합니다. 세상은 애굽의 왕의 이름을 기억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를 기억하시고 존귀하게 여기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바로의 강력한 권세 앞에서 굴하지 않고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좇아 살 수 있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애굽의 왕보다 크고 강하고 더 두려워해야 할 분을 아는 것입니다. 눈 앞에서 위협하는 바로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더 실제적으로 의식하는 믿음입니다.
두 산파, 십브라와 부아처럼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적대적인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고, 하나님의 복주심을 누리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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