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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Lee Juman

매일말씀묵상(210222) : 출애굽기 3장

말씀을 읽고 묵상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말씀을 잘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도록 은혜 주시길 기도합시다. 그리고 오늘의 말씀을 읽으십시오. 본문을 읽고 난 후 아래 해설을 읽습니다.


모세를 부르시고 보내시는 하나님


40년 동안 애굽의 왕자로 살았던 모세는 이제 40년 동안 광야에서 목자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잊고 하나님의 백성도 잊은채 하루 하루를 살았습니다. 그무렵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의 압제로 큰 고통을 받고 있었지요. 하나님께서도 모세를 잊으셨을까요? 이스라엘 백성을 돌보시지 않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시간에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기억하셨습니다(출 2:25). 이 말은 모세가 광야에서 양을 치는 시간들이,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고통받는 시간들이 무의미하거나 헛되지 않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섭리적 돌보심은 우리가 잊고 싶은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허용하십니다. 특별히 이스라엘에게 이 시간은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준비되는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찾아오셨습니다. 모세는 여느 날과 다르지 않게 장인 이드로의 양 떼를 치고 있었습니다. 양 떼를 몰고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을 때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불이 붙은 떨기나무 가운데서 모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모세는 이 기이한 모습을 보고 놀라서 가까이 다가갑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먼저 이곳은 거룩한 곳이라고 하십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냥 광야에 떨기나무였을 뿐입니다. 하지만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임재하셨습니다. 떨기나무와 같이 흔하고 평범한 목자였던 모세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때 모세는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이 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이지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성도라 부르시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죄인에게 하나님의 임재는 두려운 일입니다.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나님의 임재는 다른 의미에서 두려운 일입니다.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라고 하십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언약의 하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지낸 40년 정도가 아니라 400년 전부터 지금까지 자기 백성을 잊지 않으시고 찾아오십니다.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았다.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려가겠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보고 듣고 알고 계십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내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그러자 모세가 대답하지요.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겠습니까?”라고 답합니다. 나는 못합니다. 나는 그럴 자격도 능력도 없는 사람입니다. 라는 말이지요. 40년 전 자기 힘으로 애굽 사람에게서 동포를 구하려는 모습과는 사뭇 다릅니다. 겸손해졌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하나님보다 자기 자신에게 집중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나에게 힘이 있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나에게 힘이 없다고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지요. “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우리를 태워 불을 피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불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을 때 우리의 능력을 보고 부르시지 않았습니다. 우리를 보내실 때도 우리의 능력을 보고 보내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답은 이것입니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겠다.


모세는 하나님께 묻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갔을 때, 너를 보냈다는 그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합니까? 나중에 이스라엘 백성 중 누구도 하나님의 이름을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몰라서 하나님의 이름을 물었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일까요?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정말 알고 싶다는 질문이 아니었을까요? 부모님께 들어 알고 있는 이름,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이름이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내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말씀해 주십시오. 라는 요청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질문에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고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고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대해서 네덜란드의 신학자 헤르만 바빙크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하나님은 족장들에게 계셨고, 지금 계시며, 앞으로도 계속 계실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그리고 자기 백성을 위해 모든 것이 되실 것이다.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오신 하나님은 새롭고 낯선 하나님이 아니었다. 오히려 선조들의 하나님, 변하실 수 없는 분, 신실하신 분, 영원히 시종일관한 분, 결코 자기 백성을 떠나거나 버리지 않으시고 언제나 다시 찾으시고 구원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그 은혜, 사랑, 도우심에 있어 변하실 수 없고, 언제나 자기 자신이시기 때문에 지금 스스로 계신 그대로 언제나 계실 분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사야서에서 자신을 ‘처음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라고 부르셨다.”


구원은 시간 안에 있어 연약하고 변덕스러운 우리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변함이 없으신, 영원하시고 자존하신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따라서 시간 안에서 우리의 상황의 어떠하든지 우리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신실하심은 변함이 없다는 사실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모세에게 이 믿음이 필요했고,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조건과 능력, 형편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과 해설을 읽고 묵상하며, 성령님께서 깨닫게 해주시는 내용을 정리해 봅시다. 깨닫게 해주신 말씀을 붙잡고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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