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읽고 묵상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말씀을 잘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도록 은혜 주시길 기도합시다. 그리고 오늘의 말씀을 읽으십시오. 본문을 읽고 난 후 아래 해설을 읽습니다.
여호와의 은혜의 해
레위기 25장은 안식년과 희년을 다룹니다. 안식년과 희년은 안식일의 확장으로, 일주일 중 마지막 날(7일)을 거룩한 날로 지키는 것처럼, 7년 중 마지막 해를 안식년으로, 7번째 안식년이 되는 해(또는 그 다음 해)를 희년으로 지키게 하셨습니다. 안식년와 희년을 통해 안식일의 정신이 개인을 넘어 공동체와 사회로 적용될 수 있었습니다.
안식년과 희년의 정신을 잘 보여주는 말씀은 23절입니다.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는니라.” 땅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땅에서 잠시 거주하는 나그네요, 잠시 맡은 청지기라는 것입니다. 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는 안식년과 희년을 통해 우리가 이 땅을 어떤 방식으로 사용하기를 원하시는지 가르쳐 주십니다.
(1) 안식년
안식년은 기본적으로 땅을 안식하게 하는 날입니다(2절). 6년 동안 땅을 사용하고, 7년째 되는 해에는 땅을 쉬게 하라는 것입니다. 첫번째 이유는 땅이 황폐해지는 것을 예방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이 오랫동안 그 땅을 누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잘 보존하고 관리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당연히 우리에게 좋은 일입니다.
두번째 이유는 내게 주신 것을 내 것이라고 여기지 않고 나누게 하기 위함입니다(5-6절). 안식년에는 내 땅에서 난 곡식과 열매를 내 것이라 주장할 수 없습니다. 주인과 종, 일꾼과 나그네, 심지어 들짐승도 자유롭게 먹을 수 있습니다.
세번째 이유는 오직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손길만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안식년을 지키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 땅이 나의 필요를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공급하시고 보존하신다는 사실을 신뢰할 때 안식년을 지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안식년은 하나님이 나의 주님이시요, 우리 모두의 주님이신 것을 기억하게 합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며 많이 소유한 사람은 자신의 소유를 잠시 내려놓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십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좀 더 자유롭게 하시고 풍성하게 베푸십니다. 6년 동안 먹고 사는데 바빠서 이 정신을 잊게 될 쯤, 이 사실을 기억하여 하나님께서 이 땅을 맡기신 본래의 의미를 가르쳐 주시고, 땅이 주는 만족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복과 은혜를 누리게 하시는 날이 안식년입니다.
(2) 희년
희년은 7번째 안식년인 49년이 되는 해(혹은 50년째 해)입니다. 희년은 성경을 제외하고 세상 어디에서도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제도입니다. 희년은 자유와 해방의 해입니다. 희년은 마치 리셋 버튼과 같이 50년에 한 번씩 이스라엘의 토지를 처음 분배받았던 시절로 돌아가게 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원칙적으로 땅의 소유권을 사고 파는 것이 아니라, 희년을 기준으로 땅의 경작권을 매매할 수 있었습니다. 희년에는 땅만 회복되는 것이 아니라 자유를 잃고 종이 되었던 사람들이 해방되어 자유를 찾는 해이기도 합니다.
희년의 제도 아래에서 모든 사람의 부와 신분은 상대화됩니다. 설령 내가 노력해서 얻은 소유라 하더라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기업 이상의 소유는 희년까지만 소유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희년을 지키기 위해서도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 모든 것이 나의 힘과 노력으로 이루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믿을 때에만 가능한 일입니다.
안식년과 희년은 하나님의 주인되심을 배우는 날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나그네요, 청지기일 뿐입니다. 우리는 이런 안식년과 희년의 정신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먼저 우리는 이 정신을 우리의 사회에서 적용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빈부의 격차가 너무 심각해지거나, 영구적으로 벌어지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따라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도 회복될 수 있도록, 그들의 자녀들이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돕는 사회적 제도와 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희년의 정신을 적용하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회적 적용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요. 바로 예수님께서 이 희년을 성취하셨다고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여호와의 은혜의 해를 말하며, 메시아가 오시면 마음이 상한 자, 포로된 자, 갇힌 자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해가 선포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4장 16-21절에서 이 희년이 지금 너희에게 성취되었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희년을 선포하시고, 우리에게 희년을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죄와 죽음의 종이 된 우리를 자유케 하시기 위해, 가까운 친척이 땅을 무르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우리의 기업 무를 자가 되어 주셨고, 자신의 생명을 속전으로 지불하셔서 우리를 구속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선포하신 희년은 주님꼐서 다시 오실 때 완성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희년을 소망하였던 것처럼 오늘 우리도 우리 주님이 다시 오실 그 날, 비로소 우리의 모든 죄를 벗어 던지고 완전한 자유를 얻게 될 것을 소망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전파할 희년의 의미는 단순히 사회, 경제적 차원을 넘어서,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자들을 살게 하시고, 마귀의 종 노릇하는 자들을 해방시켜 주시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진정한 소망을 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아무리 실패해도, 쓰러지고 망가져도 괜찮다. 다시 온전히 회복될 수 있다. 이것이 복음이 주는 위로와 소망이고, 희년이 주는 메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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