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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Lee Juman

매일말씀묵상(210503) : 민수기 6장

말씀을 읽고 묵상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말씀을 잘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도록 은혜 주시길 기도합시다. 그리고 오늘의 말씀을 읽으십시오. 본문을 읽고 난 후 아래 해설을 읽습니다.


나실인에 관한 규례


민수기 6장은 나실인에 관한 규례를 말합니다. 나실인이란 특별한 서원을 통해 자기 몸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린 남자와 여자를 말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유명한 나실인은 삼손, 사무엘, 세례요한 등이 있는데요. 이들과 달리 본문에서 말하는 나실인은 자신이 정해 놓은 기간 동안만, 일시적으로 나실인으로 살았던 사람을 말합니다.


나실인 제도는 이스라엘의 부르심을 잘 보여주는 제도인데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여 구원하신 이유는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게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 중에서 더 거룩한 삶으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대)제사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제사장은 혈통적으로는 아론의 후손들로, 성적으로는 남성으로만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나실인은 혈통과 성별의 제한 없이 누구든지 제사장과 비견되는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열어 놓으신 제도였습니다.


나실인이 지켜야 할 세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첫 번째로 나실인은 서원한 기간 동안 포도주와 독주를 마실 수 없었고, 심지어 포도나무에서 난 모든 것을 먹을 수 없었습니다. 제사장도 성소에서 섬길 때를 제외하고는 포도주를 마실 수 있었음을 생각할 때 제사장 보다 더 높은 기준을 요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머리카락을 자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르지 않은 긴 머리는 나실인을 알아보게 하는 외적 표지였습니다. 나실인의 긴 머리는 마치 대제사장의 의복 중 머리에 쓴 거룩한 관과 같이 특별히 구별된 거룩한 신분을 보여줍니다. 세 번째로 나실인은 사체에 접촉할 수 없었습니다. 부모와 형제에게도 이 원칙이 적용되었다는 점에서 대제사장과 같은 높은 기준의 요구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나실인은 이렇게 자기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 여호와께 거룩한 사람으로 살아갑니다(8절). 그런데 나실인으로 살아가는 중 갑자기 가족이 죽어 나실인의 규례를 깨트리게 될 때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예기치 못하게 서약을 깨뜨렸을 때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는데요(9-12절). 정결케 되는 7일에 머리를 밀고 8일에는 비둘기 두 마리로 속죄제와 번제를 드려서 성결케 하고, 다시 새롭게 나실인으로 살아갈 기간을 정하여 서원합니다. 이때 속건제를 드려야 했는데요. 하나님께 거룩하게 바쳐진 그의 삶이 훼손된 것에 대한 배상의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나실인으로 서원한 기간이 끝나게 되면 그는 다시 일반인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이때 돌아가는 절차가 있는데요. 속건제를 제외한 번제, 속죄제, 화목제, 소제를 드려야 했습니다. 이것은 아론의 대제사장 위임식때 드렸던 제사와 비슷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에는 나실인으로 서원하여 특별히 거룩하게 하나님을 잘 섬기고 이제 그 기간을 다 채웠을 때, 하나님께서 칭찬하시고 상을 주셔야 할 것 같은데, 오히려 서원을 잘 마친 나실인이 많은 제사와 헌물을 드리고, 특별히 온전히 서원을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속죄제까지 드리는 것이 선뜻 이해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우리는 본문을 통해 우리의 섬김과 헌신이 결코 우리의 구원의 공로가 될 수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의 순종과 섬김이 아무리 최선을 다한 것일 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께 온전히 받아들여질 만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희생제사가 필요했습니다. 서원한 기간 동안 아무리 거룩하고 정결하게 살았다 하더라도 그는 여전히 속죄가 필요한 죄인입니다. 처음 구원받았을 때 뿐만 아니라 우리가 최선을 다해 거룩한 삶을 다 살고 난 후에도 여전히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필요합니다.


나실인은 하나님께 자신을 성별해 자신의 삶을 바친 특별한 신분의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제사장처럼 성소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이 아니었고, 수도사처럼 속세를 떠나 살았던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백성들과 동일한 삶의 자리에서 평범하게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런 점에서 나실인 규례는 오늘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헌신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줍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이루어진 일이기도 한데요. 우리 주님께서는 종종 ‘나사렛 예수’라고 불리셨는데요. 이때 나사렛은 지역 이름이기도 하지만, 오늘 나실인이란 말과 같은 단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사장, 선지자, 왕의 직분만 성취하신 것이 아니라 나실인의 직분도 성취하셨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예수님은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시체를 만지셨고 살리기도 하셨지요. 예수님께서는 나실인 규례를 문자적으로 지키는 것이 아닌 진정한 의미를 살아내심으로 성취하셨습니다. 바로 성자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온전히 헌신된 삶을 사신 것이지요.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살아야 할 나실인의 삶도 이 규례를 문자적으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온전히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겠습니다.


이렇게 끝까지 주님을 위해 헌신된 삶을 산 후에, 겸손히 ‘우리는 여전히 무익한 종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본문은 제사장의 축복으로 끝나는데요. 우리는 여전히 예수님이 필요한 죄인이고 무익한 종일 뿐이지만,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부족한 섬김과 헌신을 기뻐하시고 복을 주십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과 해설을 읽고 묵상하며, 성령님께서 깨닫게 해주시는 내용을 정리해 봅시다. 깨닫게 해주신 말씀을 붙잡고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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