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읽고 묵상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말씀을 잘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도록 은혜 주시길 기도합시다. 그리고 오늘의 말씀을 읽으십시오. 본문을 읽고 난 후 아래 해설을 읽습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공의
가나안 땅을 정탐한 12명의 정탐꾼들은 동일한 것을 보고 왔지만, 해석과 결론은 달랐습니다. 10명의 정탐꾼은 그 땅은 좋은 땅이지만 그 땅의 사람들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합니다. 반면 2명의 정탐꾼, 갈렙과 여호수아는 그 땅은 좋은 땅이고 그 땅 사람들이 강한 것도 사실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땅이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충분히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똑같은 상황을 보면서도 전혀 다른 해석과 실천을 하게 되는 이유는, 바로 ‘믿음’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품과 말씀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눈에 보이는 현실이 전부이고, 유일한 판단의 근거가 됩니다. 반면 믿음의 사람들은 현실을 분명하게 인식하되, 선하고 신실하신 하나님을 더욱 크게 인식합니다.
10명의 정탐꾼의 말을 듣고 온 백성들은 깊은 절망에 빠졌습니다. 밤을 새서 통곡할 만큼의 절망이었습니다. 차라리 죽음이 낫다고 생각할 만큼의 절망이었습니다. 애굽에서 건져내셔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을 전부 부정할 만큼의 절망이었습니다. 그들의 절망은 곧 하나님에 대한 절망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구원하심과 하나님의 백성됨을 모두 버려버리겠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교회 열심히 다녔는데, 어려운 일만 생기고 힘든 일만 생긴다며 더 이상 예수님도 믿지 않고 교회도 나오지 않겠다고 떠나는 것과 같은 모습이지요.
갈렙과 여호수아는 이 참담한 말에 옷을 찢으면서도, 백성들을 설득하기 위해 힘씁니다. 하나님께서 갈렙과 여호수아를 통해 백성들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신 것이지요. 두 사람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이 얼마나 좋은 땅인지 말하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두려울 것이 없다고 설득합니다. 하지만 불신과 절망에 사로잡힌 백성들의 귀에는 그 메시지가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불신도 두려운 일이지만 불신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것은 더욱 두려운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주셨지만, 백성들은 자신들의 죄를 더욱 드러내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백성들이 갈렙과 여호수아에게 돌을 던지려 할 때, 하나님께서 영광 중에 나타나셔서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라고 하시는데요. 오랜시간 참고 참으며 기다렸음에도 여전히 불신과 불순종을 일삼는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탄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염병으로 그들을 심판하시고 모세를 통해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루겠다고 하십니다. 과거 금송아지 사건이 있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었습니다(출 32:10). 하나님의 말씀도, 모세의 반응도 그때와 비슷합니다. 모세는 이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는데요. 기도의 핵심은 하나님의 이름, 명예, 영광을 위해서 이 백성을 용서해 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큰 능력으로 구원하신 백성들을 중간에 멸망시키시면,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이 그들을 인도할 능력이 부족해서 광야에서 죽였다고 생각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세의 기도의 첫 번째 근거였습니다.
모세가 백성들을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께 내세운 두 번째 근거는 하나님께서 친히 계시하신 하나님의 성품이었습니다. 모세는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가 많아 죄악과 과실을 사하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사하지 아니하고 아비의 죄악을 자식에게 갚아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리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며,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따라 백성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이 말씀은 금송아지 사건 이후 모세가 다시 돌판을 만들어 하나님께 계명을 받기 위해 올라갔을 때,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내용입니다(출 34:6-7). 하나님은 자비로우신 분이셔서 죄를 용서하시지만, 형벌받을 자의 죄를 결단코 면제하지는 않으시는 분이라고 하셨는데요. 모세는 이 말씀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를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과 자비에 호소하며 백성들을 위해 기도했다는 것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은혜와 용서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하나님의 영광과 자비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기 위해 내세울 수 있는 다른 근거는 없습니다. 우리가 과연 무엇으로 하나님의 용서를 구할 수 있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모세의 말대로 용서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과연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대로 이스라엘을 용서하시되, 하나님의 선하심과 구원을 멸시하고 부인했던 자들에게는 형벌을 주십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죽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사로잡힐 것이라고 말했던(3절) 그들의 자녀들은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약속과 구원을 이루실 것입니다. 이 일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본보기로 하나님께서는 악평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원망하게 만든 10명의 정탐꾼은 즉시 재앙으로 심판하시고, 여호수아와 갈렙에게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겠다는 약속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자비와 공의를 행하실 때, “이 백성들의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행하겠다”(28절)고 하십니다. 차라리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겠다고 말한대로 광야에서 죽게 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가나안 땅에 능히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한 갈렙과 여호수아에게는 그들의 말대로 들어가게 해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에 따르면 복과 저주는 하나님의 은혜와 심판인 동시에, 우리가 원한 것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을 믿지 않고, 불순종하는 자들이 지옥에 가는 것은 하나님이 억지로 보내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원한 결과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을 원하지 않고, 하나님과 함께 있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흔히 상상하듯 지옥에서 사람들이 괴로움 속에서 하나님께 구원해달라고 울부짖고, 하나님께서는 천국에 앉아서 그들을 매정하게 거절하시는 이미지는 결코 사실이 아닙니다. 누군가 말했듯이 지옥의 문은 밖에서 잠긴 것이 아니라 안에서 잠겨 있기 때문입니다. 지옥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원하지 않아 하나님이 없는 지옥으로 갔고, 지옥에서도 하나님을 찾거나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원하는대로 하나님의 임재가 철저히 가리운 곳이 바로 지옥입니다.
모세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반응하였을까요? 놀랍게도 그들은 회개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들은 다시 크게 슬퍼합니다. 그러더니 우리가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곳으로 올라가겠다고 말합니다. 이번에는 모세가 말립니다. 왜냐하면 이미 하나님께서 “너희는 내일 돌이켜 홍해 길로 하여 광야로 들어갈지니라”(25절)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지 말라고 하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니 너희가 대적에게 패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기어이 가나안을 향해 나아갔다고 크게 패배하고 맙니다.
과연 이스라엘은 회개한 것일까요? 그들이 정말 회개하였다면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 눈물로 참회하며, 하나님께서 내리신 징계를 달게 받으면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광야에서 40년 동안 방황하다가 죽는 것이 싫어서, 즉 하나님의 징계를 받기 싫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억지로 바꿔보려고 고집을 부렸던 것이지요. 모세가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근거하여 기도하였던 모습과 얼마나 대조되는 모습인지요.
민수기 13-14장은 민수기의 주제를 잘 보여줍니다. 즉 출애굽한 1세대는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광야에서 죽고, 2세대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따라 하나님께 순종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오늘 본문과 민수기는 하나님의 자비와 공의에 의한 구원을 잘 보여줍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중보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비와 공의를 나타내셨는데요. 모세가 가리키는 더 위대한 우리의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우리를 대신하여 모든 형벌을 받으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자비와 공의가 가장 선명하게 계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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