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읽고 묵상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말씀을 잘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도록 은혜 주시길 기도합시다. 그리고 오늘의 말씀을 읽으십시오. 본문을 읽고 난 후 아래 해설을 읽습니다.
전쟁보다 중요한 것
신명기 20장은 가나안 땅에서 전쟁을 하게 되었을 때, 이스라엘이 기억해야 할 것과 우선해야 할 것, 그리고 행해야 할 것들에 관한 말씀입니다.
전쟁을 하게 될 때, 특별히 적군의 군사력이 월등히 높다고 해도 두려워 말라고 말씀합니다. 두려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당대 최고의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던 애굽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변함없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즉 이스라엘은 대적의 강함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눈 앞에 아무리 강한 대적이 있다해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 더 강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전쟁이 날 때 제사장은 백성들이 이 사실을 기억할 수 있도록 말해주어야 했습니다. 크고 두려운 문제가 생길 때, 내 힘으로 이기기 어려운 상황 앞에서 우리도 우리 자신에게 이 사실을 말해주고, 기억해야 합니다. 독생자 예수님을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이 어려운 상황에도 변함없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별도로 군대가 없었던 이스라엘은 전쟁이 나면 백성들을 소집해서 군대를 조직합니다. 이때 군사 지도자들이 해야 할 일이 있었는데요. 백성들의 사정을 헤아려서 집으로 돌려보내는 일이었습니다. 집을 건축하고 아직 낙성식을 못한 사람은 집에 가서 낙성식을 하라고 합니다. 포도원을 지었는데 아직 열매를 못 먹어본 사람은 포도원에 가서 잘 가꿔서 그 열매를 먹으라고 합니다. 약혼한 여인이 있는 사람은 돌아가서 결혼을 하라고 합니다.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도 나라가, 전쟁이 더 중요하니 일단 오라고 하지 않습니다. 전쟁보다 집이, 포도원이, 약혼한 여인이 더 중요하니 돌아가라고 하지요. 심지어 여기에 해당되지 않아도 두렵고 겁이 나면 돌아가라고 합니다. 그렇게 다 돌려보내고 남은 백성들(과연 얼마나 남았을까요? 사사기 7:2-3 참고)로 군대를 조직합니다.
지금 대적의 말과 병거와 백성이 이스라엘보다 많은 상황입니다. 그럼 군대를 더 많이 모아야 하지 않나요?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도 전쟁이 우선이라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요? 왜 하나님께서는 먼저 백성들을 돌려 보내셨을까요? 앞서 언급한 세 가지 상황은 ‘무익함의 저주’로 알려진 것들입니다. 소망이 좌절되는 저주이지요. 이것은 약속의 땅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백성들이 받을 저주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전쟁을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선물과 축복을 얻고 누리기 위함인데, 그 일을 위해 선물과 축복을 잃어버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분명한 우선순위를 가지고 있었는데요. 전쟁보다 하나님께서 주신 땅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과 복을 누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상주의적인 생각이 실현될 수 있었던 것은 이 전쟁의 승패는 군사력에 달려 있지 않고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확신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확신하는 백성들은 놀라운 자발성을 보여줍니다. 전쟁에 나가는 것은 군대를 소집하는 사람의 명령보다, 하나님께 대한 신뢰와 순종에서 비롯된 자발성에 달려 있었습니다. 이것은 복음 안에서 우리가 누리는 자유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순종은 두려움과 강압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10절부터는 전쟁의 방식을 설명합니다. 10-14절은 가나안 성읍과 구분되는 멀리 있는 성읍과의 전쟁에 대한 것인데요. 전쟁에 앞서 먼저 평화를 선언합니다. 즉 항복하고 조공을 바친다면 그 외에 다른 불이익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싸움을 선택한다면 전쟁이 시작되는데요. 하나님께서 그 성읍을 붙이실 때, 전쟁의 대상은 오직 성인 남자들에게로 한정됩니다. 이것은 고대 근동의 전쟁을 생각할 때 놀랄만큼 인도적인 접근입니다. 다른 열방이 행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하나님께서는 과도한 잔혹 행위와 약탈, 인권 침해를 제한하십니다.
하지만 가나안 성읍은 이 원칙에서 제외입니다. 가나안 민족들과의 전쟁은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주권적인 뜻에 따라 악에 관한 도덕적 심판의 측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민족의 악이 관영해질 때까지 오래 참으며 기다리셨고, 때가 차매 심판하십니다. 모든 것을 진멸해야 하는 가나안 전쟁의 또 다른 측면은, 그들을 남겨두었을 때, 장기적으로 이스라엘에게 우상숭배와 혼합주의 신앙의 위협을 가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19-20절도 흥미로운데요. 전쟁을 수행할 때 적의 농작물과 과수원을 황폐하게 만드는 일을 막으십니다. 오늘날 환경운동가들이 주장하는 생태적 제한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식물이 사람보다 가치가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신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전쟁에 관한 말씀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전쟁보다 더 중요한 것에 관하여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에게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이 주신 선물과 복을 받아 누리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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