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작성자 사진Lee Juman

매일말씀묵상(210827) : 사사기 11장

말씀을 읽고 묵상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말씀을 잘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도록 은혜 주시길 기도합시다. 그리고 오늘의 말씀을 읽으십시오. 본문을 읽고 난 후 아래 해설을 읽습니다.


바른 신앙고백, 잘못된 서원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께 회개하며 나아가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고통을 더이상 두고 보실 수 없다고 생각하셨던 그 때에, 암몬 자손이 길르앗을 침략합니다(10:17). 길르앗 사람들도 모여서 진을 치긴 했는데요. 그들을 이끌 사람이 없었습니다. 길르앗 백성과 방백들이 모여서 ‘누가 먼저 나가서 암몬 자손과 싸울까, 그 사람이 우리의 지도자가 될 것이다’(10:18)라는 말에서 다들 눈치만 보고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1:1-3은 잠시 시간을 앞으로 돌려 길르앗 사람 입다에게 초점을 맞춥니다. 그는 기드온과 같은 ‘큰 용사’였습니다. 하지만 ‘창녀의 아들’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다른 형제들에 의해 집에서 쫓겨나 ‘돕’이라는 성읍에 거주하게 되었고, 여러 불량배들이 그에게 모여들었습니다. 이렇게 입다는 ‘큰 용사’라고 인정받을 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의 출신 배경으로 인해 차별과 따돌림을 당했습니다. 그는 가족과 공동체로부터 추방자가 되었고, 범죄자들과 함께 하게 됩니다.


4절은 다시 시간을 돌려 암몬이 이스라엘을 침략할 때로 돌아옵니다. 길르앗의 장로들이 입다를 데려 오려고 돕으로 갑니다. 그들은 “우리가 암몬과 싸우려 하니 당신이 우리의 장관이 되어주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입다의 입장에서는 기분이 상할 일이지요. 자신을 공동체에서 쫓아낼 때는 언제고, 이제와서 자신들이 어려워지자 나에게 찾아와 도움을 구하느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장로들은 다시 한 번 간절히 부탁하는데, 이번에는 ‘장관’이 아니라 ‘머리’가 되게 해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장관은 일종의 군사지도자라면, 머리는 말그대로 길르앗의 최고지도자라는 의미입니다. 입다는 과연 여호와께서 암몬을 내게 붙이시면 정말로 내가 너희의 머리가 되겠느냐고 확인하고, 장로들의 맹세를 받은 후에 그들을 따라 나섭니다.


그런데 이 장면, 어디서 한 번 본 것 같지 않습니까? 10:10-16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의 대화와 비슷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와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같았다는 점은 우리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사람은 우리의 필요에 따라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렇게 대한다면, 어쩌면 우리는 하나님도 그렇게 우리의 필요에 따라 이용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도 진정으로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암몬과의 전쟁에서 입다가 먼저 시도한 것은 외교적 협상입니다. 입다는 암몬 왕에게 “네가 왜 우리 땅을 침범했느냐”고 묻고, 암몬 왕은 “이 땅은 원래 우리 땅이니, 좋게 말할 때 돌려주라”고 답합니다. 입다는 다시 사자를 보내 암몬 왕의 주장의 부당성을 입증합니다. 입다의 말은 세 가지 측면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역사적 측면입니다(14-22절). 암몬 왕의 주장과 달리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올 때 이 지역은 아모리 족속이 차지하고 있었고, 하나님께서 아모리 족속을 우리에게 붙이셔서 우리가 정복하여 지금까지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 신학적 측면입니다(23-24절). 하나님이 아모리 족속을 물리치고 자기 백성인 이스라엘에게 주신 땅을 암몬이 요구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암몬이 그들의 신 그모스가 준 땅에서 사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셋째, 선례에 관한 것입니다(25-26절). 모압이나 암몬이나 다를 바가 없는 상황인데, 모압은 가만히 있는데, 암몬은 쳐들어와서 자기 땅이라고 우기냐는 것이지요. 암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이 여기서 산지 300년이 되었는데, 그 동안 아무말도 없다가 왜 이제와서 자기 땅이라며 달라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이 모든 말을 마친 27절에서 입다는 이스라엘은 죄가 없고 암몬이 악을 행하였다고 말하면서, “원컨대 심판하시는 여호와는 오늘날 이스라엘 자손과 암몬 자손의 사이에 판결하시옵소서”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사사이신 여호와께서 오늘날 이스라엘과 암손 사이에서 사사로 행하여주소서”라고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입다는 단순히 암몬 왕을 설득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을 판단하시는 하나님, 이스라엘의 진짜 사사이신 하나님의 판단을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암몬 왕이 입다의 말을 듣고 동의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암몬 왕은 입다의 말을 듣지 않아 전쟁이 일어났지만, 하나님께서는 암몬을 입다의 손에 붙이심으로 이 일을 판결해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입다의 이야기에 담겨 있는 한 가지 끔찍한 사건을 생각해보려 합니다. 암몬과의 전쟁이 시작될 때 입다는 하나님께 서원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셔서 평안히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내 집 문에서 나와 나를 영접하는 사람이 누구든지 그 사람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겠다는 것입니다. 이 서원은 우리를 매우 당혹스럽게 합니다. 서원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서원의 내용이 문제입니다. 인신제사는 “여호와께서 꺼리시고 가증히 여기시는 일”(신 12:31)이기 때문입니다. 왜 입다는 이런 서원을 하였을까요? 입다의 말(24절)과 행동(인신제사, 39절)을 볼 때, 입다는 이방 사람들의 문화와 종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 같습니다. 이방 문화와 종교의 특징은 사람의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신의 호의나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그 만큼의 정성을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영향으로 인해 입다는 하나님께 서원하였지만, 하나님이 가증하게 여기시는 것으로 서원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도 두려운 마음으로 우리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도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믿지만, 동시에 세상의 문화와 가치관의 영향으로 인해 하나님이 요구하시지도 않고 기뻐하시지도 않는 것들로 하나님을 섬긴다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부지런히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야 함과 동시에 성경에 비추어 세상과 우리 자신을 점검하고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과 해설을 읽고 묵상하며, 성령님께서 깨닫게 해주시는 내용을 정리해 봅시다. 깨닫게 해주신 말씀을 붙잡고 기도합시다.




조회수 75회댓글 0개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Comments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