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수훈(2) 복 있는 사람
마태복음 5:3-10
예수님은 첫 번째 설교에서, 가장 먼저 복에 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복을 추구하고, 행복을 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복이 아닌 것을 복으로 알고 추구하는 것입니다. 잠시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 같지만, 참되고 영원한 행복을 주지는 않는 것들입니다. “팔복”이라 부르는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가 구해야 하는 가장 좋은 복이 무엇인지 가르쳐 줍니다. 이 복을 하나씩 살펴보기 전에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팔복의 특징을 먼저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복의 개념과 다릅니다. 예컨대 사람들은 많은 것을 소유해야 복이 있다고 말하지만,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세상은 “웃으면 복이 온다”고 말하는데요. 예수님은 슬프게 우는 사람이 복되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복은 왜 이렇게 세상과 다른 것일까요? 그 이유는 복에 대한 관점의 차이 때문입니다. 우리는 내가 보기에 좋은 것을 복이라고 생각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것이 진짜 복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둘째, 복은 소유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존재와 관련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복이 있다는 것은 무엇을 소유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돈을 소유하면, 건강을 소유하면 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조금만 생각해도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이 옳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돈이 있어도, 건강해도 행복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참된 행복 또는 복은 소유에 관한 것이 아니라 존재에 관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팔복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말씀입니다.
셋째,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 복입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었고, 따라서 가장 행복하셨던 분은 예수님입니다. 팔복은 그렇게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안에서 행복하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팔복은 예수님의 인격과 성품의 요약이요, 예수님의 초상화와 같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신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에게는 이미 이 팔복이 주어진 것이지요. 문제는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죄와 연약함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처럼 온전히 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팔복은 그럴 때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고, 우리가 회복해야 할 모습이 무엇인지 께닫게 합니다.
넷째, 팔복은 한 존재의 인격과 성품에 관한 것이므로, 우리는 팔복을 여덞 가지 다른 종류의 복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존재의 인격과 성품의 다채로움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예컨대 심령은 가난하지만 애통해 하지는 않는 신자는 없습니다. 온유하지만 의에 주리고 목마르지 않는 신자도 없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신자에게 팔복은 하나의 인격과 성품으로 존재합니다.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이 복을 하나씩 말씀하실 때, 그 순서와 전후 관계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본래 하나의 통합된 복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 가장 좋은 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복은 무엇인가요? 혹시 하나님이 주시는 최고의 복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우리 눈에 좋게 보이는 복들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묵상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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