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수훈(18)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의 의미
마태복음 5:43-48
레위기 19:18은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라고 말씀합니다. 당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이 말씀을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는 말씀으로 이해했습니다. “원수를 갚지 말라”는 말씀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식으로 이해했습니다. 이웃 사랑에 대한 계명을 이런 식으로 이해하면 누가 이웃이고 누가 원수인지 구분하는 것이 아주 중요해집니다. 누가복음 10장에 보면 한 율법사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냐고 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에 기록된 모든 것을 행하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율법사가 “누가 나의 이웃입니까?”라고 묻습니다. 29절은 율법사가 자기를 의롭게 보이기 위해 이 질문을 했다고 말합니다. 자기는 이웃 사랑을 제대로 실천했다는 것이지요.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 유명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이 이야기를 마치시고 율법사에게 물으시지요. “누가 강도만난 자의 이웃이냐?”라고요. 본래 율법사는 사마리아인을 이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원수 혹은 멸시의 대상일 뿐이었습니다. 이렇게 당시 유대인들은 동족인 유대인들은 이웃, 사마리아인이나 로마인은 원수라고 생각했습니다. 혈통이 다르고, 신앙이 다르고, 우리를 박해하는 자들은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미움의 대상이었습니다.
율법사는 예수님의 물음, “누가 강도만난 자의 이웃이냐”라는 질문에, 마지못해 자비를 베푼 사람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도 가서 이와같이 행하라고 하셨지요. 누가 이웃인지 따지고 구분해서 사랑하지 말고 사랑이 필요한 자, 긍휼이 필요한 자, 도움이 필요한 자 모두가 너의 이웃이니 따지지 말고 사랑하고, 긍휼을 베풀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의 의미입니다. 이웃과 원수를 구분하여 사랑하지 말라는 것이지요. 44절은 대구를 통해 ‘너희 원수’는 ‘너희를 핍박하는 자’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것’은 곧 '기도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사람, 원수 같은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은 그를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이렇게 하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아들이 될 것이라”(45절)고 말씀하십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조건이라는 말씀이 아니지요.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악인과 선인,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 모두에게 차별없이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라고 말씀합니다. 이웃과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이런 하나님을 닮은 모습입니다. 자녀는 부모를 닮는 법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까? 본래 하나님의 원수였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원수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신을 죽이는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입니다. 이 은혜와 사랑이 우리로 원수를 사랑할 수 있게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아는 사람을 그것을 모르는 사람(세리, 이방인)과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 차이는 무엇인가요? 은혜와 사랑입니다. 사람들은 내게 은혜를 베푼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알고 경험한 사람은 나를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할 수 있고,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그 사람을 따뜻하게 대할 수 있습니다. 위선이나 가식이 아닌 진심어린 사랑으로 말이지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고, 그래서 예수님께서 신자에게 이 일을 명령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48절). 이것이 우리의 의무요,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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