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말씀을 잘 읽고 깨달을 수 있도록 성령님의 은혜를 구하며 기도하고, 말씀과 해설을 읽습니다.
룻과 보아스의 헤세드
룻에게 베들레헴은 모든 것이 낯설고, 위험으로 가득한 땅이었습니다. 룻은 이방인이었고, 보호자 없는 여성이었기 때문입니다. 고대 근동에서 남성 보호자(아버지, 남편, 아들)가 없는 여자의 삶은 매우 위태로웠습니다. 이방인이었고, 젊은 과부였던 룻은 성적인 위험에 취약했고, 재정적으로 궁핍했고, 친구가 없어 외로웠고, 차별과 배제의 대상이 되기 쉬웠습니다. 나오미를 따를 때 어느 정도 각오는 했겠지만, 막상 현실을 마주하게 되면 두렵고 피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일 것입니다. 하지만 룻은 용기 있는 여성이었습니다. 그녀는 시어머니를 봉양하며 살기 위해 기꺼이 위태로운 삶 속으로 들어갑니다. 내 삶도 충분히 힘든데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 우리시대에는 어리석게만 보일 뿐입니다. 희생하고 싶지 않아 결혼과 출산도 기피하는 시대이니까요. 하지만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는 희생이 없이는 진정한 사랑도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희생이 없는 우리시대는 사랑이 없는 시대이기도 합니다.
본문에 재미있는 표현이 나옵니다. 룻이 ‘우연히’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줍게 되었는데, ‘마침’ 보아스가 그 밭에 와서 룻을 만나게 됩니다. ‘우연’을 강조하고 있지요. 룻과 보아스 모두 의도하거나 기대하지 않은 일이 ‘우연히’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우연’ 같은 건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자에게 ‘우연’이란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손길로 인도하심’과 동의어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다 알지 못합니다. 우리의 선택이 옳은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고 인도하신다는 사실만큼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계획 대신 길이 있다. 그래서 굳이 모든 것을 미리 알 필요가 없다”(폴 밀러). 몰라도 괜찮습니다. 선한 목자이신 그리스도를 따르기만 한다면(시편 23편과 함께 묵상해 보세요).
보아스는 낯선 이방인 소녀를 발견하고, 사환에게 누구인지 묻습니다. 보아스는 그녀가 나오미와 함께 온 모압 소녀라는 것과 이른 아침부터 성실하게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을 신뢰한다는 것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막연히 기다린다는 것은 아닙니다. 나의 삶과 미래를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하나님께서 오늘 내게 주신 일을 성실하게 감당하는 것이지요. 대가나 보상을 바라는 열심은 우리를 지치게 하지만,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을 신뢰하는 열심은 우리에게 힘과 용기를 줍니다.
이어지는 보아스와 룻의 대화가 참 아름답습니다. 보아스는 “내 딸아”라고 친근하게 말하며, “다른 밭에 가지 말고 여기서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고 말합니다. 양식을 충분히 얻을 수 있게 해주겠다는 약속이고, 룻이 언약 백성 안에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배려한 것입니다. “함께 있으라”는 말은 1:14에서 룻이 나오미를 ‘붙좇았다’라는 말과 같은 단어입니다. 룻은 나오미를 ‘붙좇아’ 언약백성이 되고자 하였고, 하나님께서는 보아스를 통해 룻을 언약백성 안에 ‘함께 있게’ 하셨습니다. 보아스는 소년들에게 룻을 건드리지 말라고도 하였습니다. 보호자가 없는 여성은 성적 착취에 취약하였는데, 유력한 자 보아스가 룻의 보호자가 되어 주겠다는 말입니다. 룻을 건드린 사람은 곧 보아스를 건드리는 것과 같습니다. “목이 마르거든 그릇에 가서 마시라”는 말은 공동체의 일원으로 온전히 받아들인다는 표현입니다. 1950년대까지도 미국 남부에는 음수대가 백인용과 흑인용으로 구분되었다고 합니다.
룻은 보아스의 과분한 은혜에 감사를 표합니다. 보아스는 룻이 나오미에게 행한 일을 언급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상주시기를 원하노라”라고 축복합니다. 말뿐인 축복이 아닙니다. 보아스는 자신을 통해 하나님의 복이 전달되도록 합니다. 식사 시간이 되자 보아스는 룻을 불러 직접 자리를 마련해 주고 먹고 남을 만큼 풍성한 양식을 줍니다. 그래서 룻은 풍성한 곡식과 양식을 가지고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나오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비어 돌아오게 하셨다고 말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풍성히 채워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잘못된 자리에 있을 때 우리를 비우셔서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시는 것도 동일한 이유입니다. 본문은 하나님의 헤세드가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어떻게 서로를 섬기고 채워주는지 아름답게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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