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말씀을 잘 읽고 깨달을 수 있도록 성령님의 은혜를 구하며 기도하고, 말씀과 해설을 읽습니다.
하나님의 판단을 신뢰하라
다윗이 사울을 피해 광야에서 보낸 시간은 결코 무의미한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담대하게 골리앗과 싸워 이긴 믿음의 사람이었지만 또한 사울이 두려워 가드 왕 아기스에게 도망갈 정도로 연약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의 시간을 통해 다윗을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왕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다윗은 환난 당한 백성들의 피난처가 되었고, 약탈당하는 백성들의 구원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고 쫓아오는 원수인 사울의 생명을 지켜줍니다.
다윗을 쫓다가 블레셋의 침략으로 돌아갔던 사울은 다윗이 엔게디 황무지에 있다는 첩보를 듣고 다시 다윗을 잡기 위해 나섭니다. 엔게디 황무지는 바위로 이루어진 산악지대로 동굴이 많아서 숨기 좋았고, 1년 내내 계곡물이 흐르는 오아시스였습니다. 엔게디에 도착한 사울은 ‘발을 가리기 위해’ 한 동굴로 들어갑니다. 발을 가린다는 표현은 대변을 본다는 말입니다. 당연히 사울 혼자 굴 속으로 들어갔겠지요. 그런데 바로 그 동굴에 다윗과 다윗의 사람들이 숨어 있었습니다. 사울은 무방비 상태였고, 다윗과 그의 부하들은 사울을 쉽게 사로잡거나 해칠 수 있는 상황입니다. 누구라도 이건 ‘하나님이 주신 기회’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다윗의 사람들도 이것은 하나님께 원수를 갚으라고 주신 기회라고 말했습니다(4절). 하지만 다윗은 이 상황은 원수를 갚기 위한 기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할 기회, 선을 행할 기회로 삼았습니다. 다윗은 상황이나 사람들의 말을 따라 움직이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움직였습니다. 다윗이 분명하게 아는 사실은 여호와께서 기름부어 세우신 왕을 사람이 해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울은 아무 일 없이 볼일 다 보고 나갑니다. 그리고 잠시 후 다윗이 그 뒤를 따릅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다윗이 사울에게 소리쳐 말합니다. 사울을 부르는 호칭을 보면 다윗이 사울을 얼마나 존중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다윗에게 사울은 여전히 여호와의 기름부은 자로 이스라엘의 존귀한 왕이요, 주인이요, 아버지였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그 이유를 12, 15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다윗은 “여호와께서 재판장이 되셔서 나와 왕 사이를 판단하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재판장이 되신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먼저 사울이 재판장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사울이 자기 뜻대로 행하는 이 모든 일들은 악하고 불의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다윗이 재판장인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 일에 대해 자신의 뜻대로 행하지 않습니다. 여론도 재판장이 아닙니다. 그래서 다윗은 많은 사람들이 왕을 해치라 하였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의로운 재판장이시고, 그렇기 때문에 다윗은 모든 처분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었습니다. 성경은 친히 원수를 갚지 말라고 말씀하는데요(롬 12:19-21). 그 이유는 원수 갚는 것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의로운 재판장이심을 신뢰할 때 우리는 복수심에 사로잡히지 않고 선으로 악을 이길 수 있습니다.
다윗의 말을 들은 사울은 감격한 듯 합니다. 사울은 다윗의 옳음과 선함을 인정하고, 다윗이 왕이 되어 이 나라가 다윗의 손에서 견고히 세워질 것도 인정합니다. 그래서 다윗이 왕이 되면 자신의 가문을 멸하지 말 것을 맹세해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게 끝입니다. 그렇게 말하고 사울은 왕궁으로 돌아갑니다. 변한 것이 없지요. 잘못을 깨닫고 은혜를 입는다고 사람이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사람을 신뢰하고 의지하면 반드시 실망하게 됩니다. 사람은 그렇게 믿을 만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사람을 사랑하고 선을 행하기를 포기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사람을 신뢰하기 때문이 아니라 의로우신 재판장이 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하나님이 기회를 주시는대로 선을 행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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