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말씀을 잘 읽고 깨달을 수 있도록 성령님의 은혜를 구하며 기도하고, 말씀과 해설을 읽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내가 듣지 않은 것이다
3절에서 사무엘의 죽음에 대하여 언급합니다. 같은 내용이 25장 1절에서 이미 언급되었는데요. 반복해서 말하는 이유가 있겠습니다. 첫번째 이유는 사무엘의 죽음 기사를 통해 25장과 28장을 연결하여 대조하기 위함입니다. 사무엘의 죽음에 관한 말씀에 이어 다윗은 바란 광야로 갔고, 거기서 지혜로운 여인 아비가일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을 다시 깨닫게 됩니다. 반면 사울은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서 여호와께서 자신을 버리셨고, 죽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듣게 됩니다. 두번째 이유도 하나님의 말씀과 관련이 있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하였고, 각 사람이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살았던 사사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던 선지자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무엘이 죽었습니다. 블레셋이 쳐들어와 위급한 상황이 된 사울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온갖 방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대답하지 않으셨지요. 이렇게 사무엘의 죽음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해진 시대가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사울은 이번에도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합니다. 자신이 쫓아냈던 신접한 자를 찾기로 한 것입니다. 7-8절에서 사울의 말을 주목해 보십시오. 사울은 반복해서 “나를 위하여”라고 말합니다. 신접한 자를 쫓아내는 것은 하나님의 율법이 명하는 것입니다(신 18:9-14). 하지만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 자신이 더 우선이었습니다. 그래서 신접한 여인을 쫓아냈다가 다시 찾아가는 모습이 일관성 없어 보이지만, 자신을 위한다는 점에서는 무섭도록 일관성이 있습니다. 사울은 자기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사무엘이든 신접한 여인이든 상관이 없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사울이 처음부터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경우는 거의 없다는 사실입니다. 사울은 처음에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끝까지 기다리지 못하거나, 전부를 순종하지 않거나, 쉽게 다른 방법을 찾았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합법적인 방법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실패하자 신접한 여인을 찾았지요. 얼핏 보면 사울이 신접한 여인을 찾은 까닭은 하나님이 말씀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이 말씀하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사울이 자신이 듣고 싶은 방식으로 듣고 싶은 말씀을 듣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사울은 이미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신접한 자들을 쫓아냈던 것이지요.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이 있었지만, 사울에게 그 말씀은 당장 블레셋과의 전쟁에서는 소용이 없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나에게 필요한 하나님의 말씀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신접한 여인을 찾았지요. 역대상 10:13-14절은 이 사건을 이렇게 평가합니다. “사울의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음이라 저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시지 않은 것이 아니라 사울이 지키지 않은 것입니다.
사울이 신접한 여인을 만나고 여인은 사울을 위해 사무엘을 불러옵니다. 이때 사무엘은 진짜 사무엘이 아니라 거짓 영일 것입니다. 사울은 하나님이 말씀해주시지 않았기 때문에 나의 행할 일을 배우려고 당신을 불렀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사무엘을 가장한 영은 여호와께서 너를 떠나 대적이 되셨는데 어찌 내게 묻느냐며 책망합니다. 마귀는 거짓 영이지만 진실을 말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죄를 참소하여 우리가 하나님께 버림받았다고 생각하고 절망하게 만들 때이지요. 그때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용서하지 못할 만큼 큰 죄는 없고, 회개하기에 너무 늦은 때도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죄를 책망하시는데요. 절망하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회개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내가 원하는 말씀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겸손히 듣고 순종하고 회개하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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