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말씀을 잘 읽고 깨달을 수 있도록 성령님의 은혜를 구하며 기도하고, 말씀과 해설을 읽습니다.
은혜의 원리를 따르는 교회
블레셋을 의지했던 다윗은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블레셋의 편에 서서 이스라엘을 공격하라는 요구를 받았지요. 가까스로 안정된 삶을 포기하기 어려웠고, 그렇다고 하나님의 백성을 공격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이었습니다. 다윗이 자초한 일이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다른 블레셋 방백들을 통해 다윗을 돌려보내게 하셨습니다. 시글락으로 돌아오는 다윗의 발걸음이 얼마나 가벼웠을까요? 입에서는 찬송이 흘러나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보니 성읍에서 모락모락 연기가 올라오고 있습니다. 서둘러 들어가보니 성은 다 불태워졌고, 아내와 자녀들은 모두 사로잡혀갔습니다. 아말렉 사람들의 소행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게 되는데요.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와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 우리에게 익숙한 은혜라면, 그것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다 알 수는 없지만 우리의 삶에 고통과 슬픔을 허락하시는 것은 우리에게 낯선 은혜입니다.
이것이 왜 은혜인가요? 첫째, 이 일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삶, 가정, 왕국을 세우고 지키는 것은 다윗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셨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시글락을 비운 것은 3일에 불과했습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시지 않는다면 세우는 자의 수고와 지키는 자의 깨어있음이 소용이 없습니다. 둘째, 참으로 의지할 만한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셨기 때문입니다. 사울에게 쫓길 때부터 충성스럽게 다윗을 섬겼던 사람들도 처자식이 사로잡혀가자 다윗을 돌로 치려합니다. 다윗에게 책임을 묻고자 하였던 것이지요. 셋째, 무엇보다 이것이 은혜인 이유는 이 일로 다윗이 낙심하고 절망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6절에서 다윗이 ‘크게 군급하였다’는 말은 28:15에서 사울이 신접한 여인이 불러낸 사무엘의 영에게 한 말과 같습니다. 똑같이 다급하고 난처한 상황이었지만, 다윗은 하나님께 힘과 용기를 얻었고, 사울은 신접한 여인을 찾았습니다. 고난이 신자에게 은혜요 유익이 되는 까닭은 하나님께서 그 고난을 선하게 사용하셔서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다윗에게 이 낯선 은혜가 없었다면, 다윗은 여전히 시글락에서의 삶에 안주했을지 모릅니다. 하나님을 떠난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정신차리도록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우리에게 낯선 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께 힘과 용기를 얻은 다윗은 가장 먼저 하나님의 뜻을 구합니다. 다윗은 이 군대를 좇으면 잡을 수 있을지 물었고,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잡을 수 있고, 반드시 찾을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낙심한 사람들을 일으켜 추격을 시작합니다. 600명이 출발했지만 200명은 너무 지쳐서 브솔 시냇가에 머무르게 하였습니다. 그렇게 400명이 다시 추격을 시작할 무렵 한 사람이 들에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가족의 생사가 걸려 있는 다급한 순간에 들에 쓰러진 한 사람의 생명을 돌아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 사람을 데려와 먼저 음식과 물을 먹이고 돌봅니다. 그는 자신이 애굽 소년이고 아말렉 사람의 종임을 밝힙니다. 그리고 자기가 병들어 버림을 받았다고 말하지요. 그리고 아말렉 사람들이 시글락을 침략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다윗은 버림받은 애굽 소년의 도움으로 아말렉 진영을 찾아내고, 잃어버린 것을 모두 되찾았고, 거기에 더해 아말렉의 재물과 가축도 전리품으로 챙길 수 있었습니다(8-19절). 문제가 잘 해결되고 돌아왔을 때, 약탈한 전리품을 분배하는 일로 갈등이 생깁니다. 아말렉과 싸운 400명 중 일부가 이 전리품은 우리가 고생하고 싸워서 얻어낸 것이니 우리끼리 나누고 200명은 그들의 가족들만 데려가야 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다윗은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23절). 이것은 우리가 얻어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의 합당한 태도는 그 은혜를 베푸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나는 건강해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고 부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옆에 있는 형제는 몸이 약하여 일을 할 수 없고, 가난합니다. 이때 나의 건강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믿는 사람은 어떻게 행동할까요? 건강도, 일도, 소유도 자격 없는 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고 하나님께 감사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내게 이런 은혜를 주신 것은 약하고 일을 하지 못하고 가난한 지체들에게 나누라고 주셨음을 생각하고 기꺼이 나누고 베풀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그 은혜의 원리를 따르는 공동체가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가 이 은혜를 잊을 때, 교회는 세상보다 더 끔찍한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만 달란트 탕감받은 것에 감사한다고 고백하며, 동시에 백 데나리온 빌린 동료에게 빚을 갚으라고 협박하는 사람들의 공동체가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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