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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Lee Juman

[벨직 신앙고백] 제15조 인간의 원죄

제15조 인간의 원죄


우리는 아담의 불순종에 의해 원죄가 전 인류에게 확산되었음을 믿습니다. 원죄는 인간의 전(全) 본성의 타락이자 모태 속의 유아들까지 오염시키는 유전적인 부패이며 인간 안에서 온갖 종류의 죄를 산출하는 뿌리입니다. 그러므로 원죄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사악하고 거대하여 인류를 정죄하기에 충분하며, 원죄는 없어지지 않으며, 심지어 세례로도 근절되지 않는데, 이는 죄가 오염된 샘으로부터 솟아오르는 물처럼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죄는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정죄를 위해 전가되지 않고,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로 용서를 받습니다. 이 말은 신자들을 (죄 가운데에서) 평안하게 잠들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러한 부패함을 깨달아 이 사망의 몸으로부터 자유하게 되기를 갈망하며 자주 탄식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죄를 단지 모방의 문제라고 말하는 펠라기우스주의자들의 오류를 거부합니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발생한 원죄가 온 인류에게 확산되었다


아담의 첫 범죄로 말미암아 온 인류가 죄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이것이 원죄 교리의 핵심입니다. 로마서 5:12은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한 사람”은 아담입니다. 아담은 온 인류를 대표하여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다가 그 언약을 깨뜨렸기 때문에, 아담의 범죄는 아담 한 사람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온 인류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아담 안에서 내가 함께 죄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의인이 되었다는 사실도 믿을 수 없습니다. 성경은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된 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롬 5;19)고 말씀하고,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 15:22)고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모든 사람은 아담 안에서 죄인이 되었고, 인간이 가지게 된 이 죄성을 가리켜서 “원죄”라고 부릅니다.


펠라기안주의자들은 인간이 나면서부터 죄인으로 태어난다는 원죄 교리를 부정하고, 인간이 죄를 짓는 것은 다른 사람의 죄를 모방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죄인으로 태어나는 것이지 살면서 조금씩 죄를 짓다가 비로소 죄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아담과 함께 죄인이 되어서 죄인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다윗은 인간이 죄악 중에 잉태되고 죄악 중에 출생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증거했습니다.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 51:1). 그래서 “우리는 아담의 불순종에 의해 원죄가 전 인류에게 확산되었음을 믿습니다.”



원죄로부터 온갖 죄가 샘물처럼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원죄는 인간의 전 본성의 타락이자 모태 속의 유아들까지 오염시키는 유전적인 부패이며 인간 안에서 온갖 종류의 죄를 산출하는 뿌리입니다.” 이 원죄는 참으로 사악한 것이고 끈질긴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이 점에 있어서 다 똑같습니다. 물론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은 죄의 노예가 아니라는 점에서 거듭나지 못한 자들과는 다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원죄의 죄성은 신자에게나 불신자에게나 없어지지 않고 그 뿌리가 뽑히지 않습니다.


이 원죄로부터 온갖 죄가 오염된 샘으로부터 솟아오르는 물처럼 끊임없이 솟구쳐 올라옵니다. 원죄를 말하지 않고서는 인간에게서 샘솟듯 나오는 인간의 죄의 원천에 대해서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인간은 얼마나 많은 죄를 짓는지 모릅니다. 사람은 생각으로, 말로, 행동으로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죄를 짓습니다. 은밀한 중에 짓는 죄도 있고 공개적으로 짓는 죄도 있습니다. 알고도 고의로 짓는 죄도 많고, 무지해서 부지부식 간에 모르고 짓는 죄도 많습니다. 사람들은 죄를 지을 때 그것이 죄인 줄 알지만, 욕심에 끌리고 미혹을 받아서 죄를 짓는 것입니다. 이러한 온갖 죄가 다 원죄로부터 샘솟듯 솟구쳐 올라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이 원죄를 가진 죄인이요, 이 원죄로부터 온갖 죄가 언제든지 올라올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여전히 죄인이라는 사실을 늘 인식해야 합니다. 또한 인간은 짓지 못할 죄가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도 늘 기억해야 합니다. 그럴때 우리는 건강하고 균형잡힌 인간론을 가지고 현실감 있게 다른 사람들을 상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 때문에 실망도 하고 사람 때문에 분노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인간이란 원죄를 가지고 있는 죄인이요, 이 원죄는 근절되지 않으며, 이 원죄로부터 온갖 죄가 솟구쳐 올라오며, 그래서 사람은 못 지을 죄가 없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늘 생각해야 합니다.


이 사실을 생각할 때 우리는 사람에게 지나치게 실망하거나 분노하지 않을 수 있고, 다른 사람을 지나치게 비난하거나 비판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살다보면 자기도 잘못할 때가 있고 실수할 때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눈에 티끌이 있다면 우리 눈에는 들보가 있습니다(눅 6:41-42). 이런 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더욱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


이처럼 원죄 교리는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어주며, 다른 사람들을 보다 깊이 이해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이 죄인인 줄 알고 더욱 힘써 회개해야 하고, 형제와 이웃의 연약함에 대해 안타까워하고 함께 마음 아파하며 위해서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사망의 몸으로부터 자유하게 되기를 갈망하라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원죄가 전가되어 있지만, 신자들에게 원죄는 정죄(condemnation)를 위해 전가되지 않고, 원죄와 자범죄 모두에 대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로 용서를 받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원죄 문제가 해결되고, 또 원죄로부터 솟아나오는 모든 죄악들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로 용서를 받습니다. 누구든지 우리를 위하여 세워주신 한 분 구원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아오면, 죄 용서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말을 오해하여 우리는 죄 가운데 있었도 괜찮다거나, 죄악 중에도 평안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원죄 교리는 우리가 우리 자신의 “이러한 부패함을 깨달아 이 사망의 몸으로부터 자유하게 되기를 갈망하며 자주 탄식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비록 원죄가 우리의 정죄를 위해 전가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에게 이러한 죄와 부패함이 끊임없이 솟구쳐 올라온다는 사실로 인해 우리는 자주 탄식하면서, 이 사망의 몸으로부터 좀 더 자유하게 되기를 갈망해야 합니다.



원죄 교리를 기억합시다. 우리 모두에게는 죄가 한 뿌리씩 있으며, 세상의 넘치는 온갖 죄들이 원죄라고 하는 샘에서 솟구쳐 나오고 있음을 생각하고, 인간과 인간의 죄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지고 우리 자신을 바라보고 다른 사람들과 이 세상을 상대해야 하겠습니다. 우리와 타인의 죄로 인하여 놀라거나 상처를 받거나 낙망하거나 체념하기보다는 자주 탄식하면서 죄에서 좀더 자유하게 되기를 갈망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 <벨직 신앙고백 해설> ‘벨직 신앙고백 제15조’(251-262)의 내용을 요약했습니다.



학습을 위한 질문


1. 원죄 교리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2. 아담 안에서 내가 함께 죄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의인이 되었다는 사실도 믿을 수 없다고 말해주는 성경 구절을 찾아서 적어 보세요.




나눔을 위한 질문


1. 원죄 교리는 신자 안에서 여전히 원죄가 남아 있다고 말합니다. 이 원죄 교리를 아는 것이 우리 신앙에 어떤 유익을 줄 수 있을까요?



2. 원죄 교리는 우리가 건강하고 균형잡힌 인간론을 가지고 현실감 있게 다른 사람들을 상대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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