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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Lee Juman

[벨직 신앙고백] 제21조 그리스도의 속죄

제21조 그리스도의 속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맹세로 확증되신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것을 믿으며(히 7:1,17,21), 또한 그는 선지자들이 미리 예언한 바와 같이 우리 죄를 깨끗이 씻기 위하여 친히 십자가 나무에 달려 자신을 드리고 그의 보배로운 피를 쏟으심으로 그의 완전한 속상(속죄, 배상)으로 성부의 진노를 진정시키기 위하여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성부 앞에 드리신 것을 믿습니다(벧전 2:24). 성경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의 아들에게 임한 징계를 인하여 우리는 평화를 누리게 되었으며,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입었습니다(사 53:5). 그는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같았으며(사 53:7), 그는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으셨으니(사 53:12), 비록 본디오 빌라도는 처음에 그를 무죄로 선언하였지만, 결국 빌라도에 의해 범죄자로 정죄를 받았습니다. 그는 취하지 아니한 것도 물어주게 되었습니다(시 69:4). 그는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여 죽으셨으며(벧전 3:18), 우리의 죄악을 인하여 몸과 영혼에 끔찍한 형벌을 받아 고통을 겪으셨고, 그의 땀은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었습니다(눅 22:44). 그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는 이 모든 것을 우리의 죄 사함을 위하여 참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 바울과 함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 2:2)고 말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우리는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하여 모든 것을 해로 여깁니다(빌 3:8). 우리는 그의 상처에서 모든 위로를 발견하기에,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하게”(히 10:14) 하신 (그리스도의) 이 유일한 단번의 제사 외에 하나님과 화목하게 할 다른 어떤 방법을 찾거나 고안할 필요가 없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천사가 그를 “예수” 곧 구주(Saviour)라고 부른 이유이니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기(마 1:21) 때문입니다.


벨직 신앙고백 제21조는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에 대하여 크게 3가지를 가르칩니다. 첫째, 그리스도께서는 어떻게 우리의 죄를 속죄하셔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셨는가 하는 것을 가르칩니다. 둘째, 그리스도의 죽음이 우리를 위한 대속의 죽음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지를 가르칩니다. 셋째, 우리는 그리스도와 그의 속죄 사역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를 가르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속죄의 사역을 어떻게 이루셨는가?


벨직 신앙고백은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에 관하여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한 대제사장이 되셨다는 것과 동시에 우리를 위한 속죄 제물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심과 동시에 우리를 위한 속죄 제물이 되셔서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심으로 속죄 사역을 이루셨습니다.


벨직 신앙고백은 그리스도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영원한 대제사장이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에는 크게 두 종류의 제사장 계열이 있습니다. 첫째는 레위 지파의 아론 계열의 제사장입니다. 아론 계열의 제사장 직분은 세습으로만 맡아 섬길 수 있습니다. 둘째는 멜기세덱 계열의 제사장입니다.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자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나타나 아브라함을 축복하고, 그에게 제사장이 그러하듯 십분의 일을 받습니다(창 14:17-20, 히 7:1,6). 시편 110편에서 다윗은 성부 하나님 외에 “내 주”라고 부르는 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시 110:1). 그 분을 향해 여호와께서 맹세하시며 말씀하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계열)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시 110:4)고 하셨습니다.


히브리서는 유다 지파에서 나신 예수님을 보며 이 멜기세덱과 같은 제사장이 일어나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히 7:15). 그리고 레위 지파의 아론 계열의 제사장 직분을 통해서 온전함을 얻을 수 있다면 멜기세덱의 계열을 따르는 다른 한 제사장이 세워질 필요가 있겠냐고 말씀하였습니다(히 7:11). 즉 아론 계열 제사장이 짐승의 피로, 반복해서 드리는 제사로는 온전한 속죄가 이루어질 수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멜기세덱의 계열을 따르는 영원한 한 제사장이신 예수님을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친히 제물이 되셔서, 자신의 피로 단번에 완전하고 영원한 속죄를 이루는 제사를 드리셨습니다. 우리의 큰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히 4:14)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완전한 속죄를 이루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를 위한 대속의 죽음이었다


벨직 신앙고백 제21조에 “완전한 속상(속죄, 배상)”이란 표현이 나옵니다. ‘속상’은 ‘만족’(satisfactio)이란 말을 번역한 것인데, 그리스도께서 죄에 대한 모든 형벌을 받아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셨다는 의미로 ‘속상, 속죄’라고 표현하고, 죄인인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을 그리스도께서 대신 받으심으로 이루어진 속죄라는 의미에서 ‘대리 속죄’, 이를 줄여서 ‘대속’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죽음이 우리를 위한 대속의 죽음이라는 사실을 여러 곳에서 말씀하심으로 확증해 주셨습니다.


벨직 신앙고백이 가장 먼저 인용하는 구절은 이사야 53:5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 53:5). 구약성경에서 이미 여호와의 종, 우리의 구원자가 오셔서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하여 우리를 대신하여 찔리고, 우리의 죄를 인하여 상하고,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징계를 받고, 우리르 낫게 하시기 위하여 채찍에 맞을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이사야 53:7의 말씀처럼 도수장에 끌려가는 어린양같이 잠잠히 십자가를 지고 가셨고, 이사야 53:12에서 그는 범죄자 중 하나라 헤아림을 받으셨다고 하신 말씀처럼 본디오 빌라도에 의해 범죄자로 정죄를 받으셨습니다. 시편 69:4에서 다윗은 장차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당하실 고난을 시로 예언하면서, 무고히 예수님을 미워하는 많은 자들, 원수가 되어 예수님을 끊으려 하는 강한 자들로 인해 “내가 취하지 아니한 것도 물어주게 되었나이다”(시 69:4)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빼앗거나 취하지 않은 것, 곧 배상할 책임이 전혀 없는 것들을 대신 물어내고 배상하셨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3:18의 말씀처럼 그리스도는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몸과 영혼에 끔찍한 고통을 겪으시고, 성부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받으신 것은 모두 우리의 죄를 대신 속죄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상처에서 모든 위로를 발견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와 그의 속죄 사역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겠습니까? 이에 대해 벨직 신앙고백 제21조는 신약성경의 세 구절을 인용하여 가르쳐 줍니다. 먼저 우리는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의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해야 합니다(고전 2:2).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른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긴다고 말하였습니다(빌 3:7-8).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의미 없고 무가치하니 버려야 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를 알고 나니 이전에 내가 중요하게 생각했고 가치 있게 여겼던 모든 것들도 그리스도와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설령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 다른 모든 것을 버리고 포기해야 한다면 기꺼이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상처에서 우리의 모든 위로를 발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기”(히 10:14)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상하심에서 우리의 치료와 나음, 곧 죄 사함과 영원한 생명을 발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유일한 단번의 십자가 제사와, 제물 되신 그리스도만을 의지하여야 합니다. 그 외에 하나님과 화목하게 될 다른 방법을 찾거나 고안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시는 분, 곧 우리의 구주이십니다. 우리에게 이런 구주가 있으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구주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고, 그리스도만을 의지하여 그에게 나아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상처에서 우리의 모든 위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를 아는 것만큼 고상한 것이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얻는 것만큼 우리를 부요하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자랑할 만한 것이 있다면 오직 그리스도뿐입니다.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은 값비싼 그리스도의 피로 이루어진 것이지만, 그 속죄의 은혜는 우리에게 값없이 거저 주어지는 것이니, 그리스도께 나아오십시오.



* <벨직 신앙고백 해설> ‘벨직 신앙고백 제21조’(323-334)의 내용을 요약했습니다.



학습을 위한 질문


1. 성경에 나오는 두 종류의 제사장 계열은 무엇입니까?



2. 아론 계열 제사장이 아닌 멜기세덱 계열의 ‘영원한 한 제사장’이 세워져야 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3. 벨직 신앙고백 제21조에 “완전한 속상(속죄, 배상)”이란 표현이 나오는데요, ‘속상’이란 말의 의미를 설명해 보세요.




나눔을 위한 질문


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한 대속의 죽음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셔서 완전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가장 고상한 것으로 알고 자랑하며, 거기서 우리의 모든 위로를 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은 몰라도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를 알기를 소원합니까? 그리스도를 얻기 위하여 기꺼이 다른 모든 것을 잃어버려도 괜찮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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