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신구약 중간사’라는 용어의 의미 :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사이의 역사를 말합니다. 말라기-마태복음 사이, 약 400년의 기간입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다른 말씀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이 기간을 ‘침묵기’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기간에 하나님께서 아무 것도 하지 않으신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침묵기’란 말보다는 ‘준비기’라는 말이 더 좋은 표현일 수 있겠습니다. 이 기간은 하나님께서 구약성경에서 약속하신 메시아, 예수님이 오실 때를 준비하는 기간이었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4:4-5을 보면,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오실 가장 좋은 때를 준비하셨습니다.
신구약 중간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 : 성경을 더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 입니다. 구약의 마지막 성경인 말라기는 페르시아 시대를 배경으로 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한 장 넘겨서 마태복음으로 오면, 어느새 로마 시대가 배경이 되어 있습니다. 그 사이에 그리스(헬라) 제국과 제국의 분열, 유대 독립 전쟁 등의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이 기간에 구약성경의 예언들이 성취되기도 하고(예, 다니엘 8장),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낯선 배경들이 등장하게 됩니다(예, 헤롯 왕조,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등). 그러므로 우리는 신구약 중간사 공부를 통해 신구약 성경을 좀 더 온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신구약 중간사 공부 방법 : 신구약 중간사 공부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400년이란 시간도 짧지 않지만, 특별히 이 시대의 근동 역사는 격동의 시기였기 때문에, 공부해야 할 분량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목적은 단순히 그 시대를 알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성경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공부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시간에 그 모든 것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는 없겠습니다. 우리는 신구약 중간사의 역사적 흐름을 대략적으로 살펴보고, 특별히 신약성경을 이해할 때 도움이 되는 내용들을 선택적으로 살펴보는 방식으로 신구약 중간사를 공부하겠습니다.
구약성경의 역사 흐름
큰 흐름은 주요 인물을 중심으로 대략 500년 간격으로 정리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먼저 주전 2000년 무렵에 아브라함이 살았습니다. 이후 족장시대가 이어집니다. 주전 1500년 무렵에는 모세가 활동했고, 출애굽, 가나안 정복 후 사사시대로 이어집니다. 주전 1000년은 다윗이 활동했던 시기입니다. 이스라엘 왕국 시대가 시작됩니다. 솔로몬 때까지 통일왕국으로 유지되다가, 솔로몬 사후 왕국은 남과 북으로 분열됩니다. 분열왕국의 역사는 대체적으로 좋지 않았습니다. 죄와 우상숭배에 빠져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기기 일쑤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번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경고하셨음에도 그들은 끝내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결국 북이스라엘은 주전 722년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하고, 남유다는 주전 586년 바벨론에게 멸망당합니다.
앗수르 제국과 북이스라엘의 멸망(주전 722년) : 신약성경에 ‘사마리아인’이 나옵니다. 요한복음 4장 9절을 보면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이 상종하지 않았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 배경은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멸망당한 후에 일어났던 일과 관련이 있습니다. 앗수르는 정복한 나라의 반란을 억제하기 위해 혼혈정책을 폈습니다. 그래서 북이스라엘 사람들 일부가 앗수르가 정복한 다른 나라들로 흩어지고, 다른 나라의 사람들도 북이스라엘로 와서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북이스라엘에 남겨진 사람들과 이방인들은 혼인을 하며 섞여 살게 되었습니다. 신앙적으로 변질되고 맙니다. 북이스라엘의 수도가 사마리아여서 이 사람들을 사마리아인으로 부르게 되었는데요. 사마리아 사람들이 이방인들과 결혼하고 그들의 신앙과 문화를 수용한 것 때문에, 유대인들은 그들을 이방인과 노예보다 못한 존재라고 경멸하였고, 상종하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유대지역(남쪽)에서 갈릴리지역(북쪽)으로 갈 때 사마리아지역을 통과하면 빠른데, 유대인들은 굳이 요단강 동편으로 돌아서 갔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지역을 지나가셨고, 거기서 사마리아 사람들을 만나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자들에게 성령님이 임하시면 땅끝까지 복음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실 때,”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밉다고 복음을 전할 때 쏙 빼놓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의 역사 깊은 반목은 복음 안에서 회복됩니다.
바벨론 제국과 남유다의 멸망(주전 586년) : 강성했던 앗수르 제국은 점차 약해지고, 바벨론이 신흥 강국으로 부상하게 됩니다. 결국 주전 612년 바벨론은 니느웨를 함락시키고, 앗수르를 멸망시킵니다. ‘사마리아인’의 배경이 앗수르와 관련이 있다면, ‘유대인’이라는 명칭은 바벨론과 관련이 있습니다. 앗수르와 달리 바벨론은 정복한 나라의 귀족들과 인재들을 바벨론으로 데려와서 바벨론의 교육을 받고 바벨론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바벨론에는 많은 나라 사람들이 모여들게 되었고, 그들을 구분해서 부를 이름이 필요했습니다. 이때 남유다 백성들을 ‘유대인’이라 불렀는데, 이후 자연스럽게 이스라엘을 지칭하는 이름이 됩니다. 바벨론 포로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성전은 파괴되고 백성들은 타국에 와서 지내야 했기 때문에, 성전과 제사를 중심으로 하는 신앙생활에서 회당과 율법을 중심으로 하는 신앙생활로 바뀐 것입니다. 율법을 가르치는 학사와 서기관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고,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것을 강조하게 되었습니다.
페르시아 시대(주전 538-331년), 신구약 중간사의 시작
주전 539년,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이듬해인 538년을 페르시아의 통치 원년으로 삼습니다. 페르시아는 바벨론에 의해 포로로 잡혀온 사람들을 본국으로 돌려보내는 지방화 정책을 펼칩니다. 세금 징수를 원할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시기를 ‘포로기 이후 시대’라고 부릅니다. 고레스의 정책에 의해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고, 종교와 자치권을 보장받게 됩니다. 그러나 제국 안에서 안정된 삶을 누리고 있었던 유대인들이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아무 것도 없는 황폐한 땅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본토로 귀환한 백성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습니다. 위험을 각오하고 고난도 감수하여 돌아왔지만, 무너진 성전(신앙)과 성(공동체)을 재건하는 일은 역시 어렵고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다”라고 말씀하실 때,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습니까?”라고 냉소적으로 묻습니다(말 1:2). 하나님이 정말 우리를 사랑하신다면 우리의 삶과 형편이 왜 여전히 이 모양입니까? 라는 불평일 것입니다. 이 질문은 신구약 중간사 기간 동안 백성들의 마음 속에 풀리지 않고 남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신실하게 준비하셨고,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답해 주십니다. “내가 이만큼 너희를 사랑한다”(요 3:16).
구약의 마지막 성경인 말라기가 페르시아 시대에 기록되었기 때문에, 페르시아 시대를 신구약 중간사의 도입부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바벨론 포로기에 유대인들의 신앙 생활은 회당과 율법 중심으로 바뀌었다면, 페르시아 시대에는 소위 ‘유대교’라고 말하는 종교의 색채가 결정되었던 시기였습니다. 본국으로 돌아온 유대인들은 대제사장을 중심으로 제사장과 서기관 그룹이 종교적-정치적 지도력을 발휘하며 유지됩니다. 여전히 페르시아 제국의 지배 아래 있고 세금도 내야 했지만, 유대 지역에서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자치 정부로 존재하게 됩니다. 페르시아 제국 전역에 흩어져 살던 3백만 명 정도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모국을 잊지 않고 예루살렘에 경제적 후원을 계속하였고, 그 덕분에 성전과 유대 사회는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페르시아 제국은 아하수에로 왕(크세르크세스) 때 가장 넓은 영토를 갖게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 침략 전쟁(유명한 마라톤 전투, 테르모필레 전투, 살라미스 해전 등이 이때 있었습니다)에서 연거푸 패배하며서 페르시아는 힘을 잃어가고, 결국 다리오 3세 때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에게 제국의 자리를 내어주게 됩니다. 참고로 그리스 침공에서 크게 패배를 당하고 돌아온 아하수에로 왕이 에스더서에 나오는 그 아하수에로입니다.
헬라 시대(주전 331-164년)와 헬레니즘 문명
유명한 알렉산더 대왕, 그는 20살의 젊은 나이에 아버지를 이어 마케돈의 군주가 됩니다. 알렉산더는 테베, 아테네, 스파르타를 차례로 진압하여 순식간에 그리스를 정복하고, 곧바로 페르시아로 침공합니다. 알렉산더는 3년 만에 이집트와 페르시아를 무너뜨리고 헬라 제국을 건설합니다. 헬라 제국의 영토는 그리스에서 출발해서 인도와 남부 러시아, 북부 아프리카에 미쳤습니다. 당연히 팔레스타인 지역도 헬라의 지배 아래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알렉산더는 유대인들에게 많은 호의를 베풀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페르시아 시절과 동일한 예배와 정부의 자유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전광석화와 같이 세계를 정복해 나가던 알렉산더는 주전 323년, 33세의 젊은 나이에 열병으로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습니다. 알렉산더 사후 제국은 큰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알렉산더는 어려서부터 훌륭한 선생들로부터 헬라의 문학과 철학을 배웠습니다. 특별히 위대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철학, 문학, 정치, 예술 과학 등 폭넓은 교육을 받습니다. 알렉산더는 헬라 사상과 문화에 큰 자부심을 느꼈고, 동방과 서방의 문명을 통합시켜 헬레니즘 문명 위에 하나의 언어, 하나의 종교, 하나의 문화, 하나의 시민이 있는 제국을 건설하고자 했습니다. 비록 그의 생애는 짧게 끝났지만, 하나의 언어,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자 했던 그의 꿈은 어느정도 성공하게 됩니다. 유대지역을 포함하여 헬라 제국의 광대한 영토 안에서 헬라어는 공용어가 됩니다. 신약성경이 쓰여진 코이네 헬라어도 이런 헬레니즘 문화권에서 태동하였고, 이는 헬라 제국과 이후 로마 제국에서 복음의 확산에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게 됩니다. 바울을 비롯한 사도들과 전도자들이 복음을 지중해 세계의 전반에 걸쳐 자유롭고 신속하게 전달할 수 있는 중요한 준비 작업이 알렉산더 대왕을 통해 이루어진 셈입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때’는 점점 준비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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