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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2_14]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신이에요

본 문 사도행전 17장 16~34절 읽을말씀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였다.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주님이시므로 손으로 지은 신전들에 계시지 않으시고, 또한 무엇인가가 부족한 것처럼 사람들의 손으로 섬김을 받지도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모든 이들에게 생명과 호흡과 모든 것들을 친히 주신다”(사도행전 17장 22절상, 24-25절).


빌립보서, 감옥에 갇혔던 바울과 실리가 풀려났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도시를 떠나기 전에 루디아의 집에서 성도들을 만나 그들을 위로했습니다.

그 후, 바울과 실라는 데살로니로 갔습니다. 그리고 회당에 들어가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유대인에게 전했습니다. 많은 헬리인과 귀부인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그 도시의 유대인들은 바울과 실라를 시기하기 시작했고, 강제로 그들을 도시에서 떠나게 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바울의 가르침에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데살로니가에는 성도 수가 점점 늘었고, 교회도 세워졌습니다(데살로니가 교회).

다음으로, 바울은 베뢰아로 갔습니다. 그곳에서도 많은 사람이 복음을 듣고 믿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데살로니가에서 따라온 유대인들이 훼방했고, 바울은 아덴(아테네) 으로 옮겨 갔습니다. 베뢰아에서 32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아덴은 문화의 중심지였습니다. 아덴 사람들은 최신 사상과 지식에 관해 듣고 연구하기를 즐겼습니다.

아덴의 유대인들과 철학자들은 바울의 말에 흥미를 보였지만, 바울은 그가 본 것들로 인해 격분했습니다. 아덴 사람들은 수많은 우상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알지 못하는 신’에게 바쳐진 제단도 있었습니다.

아덴 사람들에게는 종교적 갈망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의 종교심(신들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인정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그들이 예수님을 만난다면, 그 갈망이 충족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헬라적 사고와 성경의 유사점들을 잘 활용하여, 그들이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직면하도록 합니다. 바울이 그들이 예배하는 ‘알지 못하는 신’이 바로 자신이 선포하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주장하였습니다.

헬라사상
1.(신들을 포함하여) 우주는 “우연”의 결과이고, 신들은 세상일에 간섭하지 않는다(에피쿠로스).
2.헬라의 많은 신들은 그들이 거주할 곳과 “제사”를 필요로 한다.
3.“영적인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스토아).
4.몸의 부활이란 없고, 인생의 목적(삶의 기준)은 “쾌락”이다(에피쿠로스).
성 경
1.오직 유일하신 하나님이 세상과 모든 것들을 “창조”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든 세상의 역사를 “주관”하신다.
2.하나님은 부족함이 없으셔서 어떠한 숭배나 제사도 필요로 하지 않으신다.
3.하나님이 작정하신 심판 날이 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회개해야 한다.
4.예수님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다. 그리고 마지막 날, 그분이 세상을 심판할 재판관으로 오실 것이다.

바울의 설교를 듣고, 어떤 사람들을 바울을 조롱하고 비웃었습니다. 특별히 헬라 사람들은 ‘부활’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조롱하였습니다. 그들의 (소위 합리적인) 세계관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같은 말씀을 듣고, 회심한 어떤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중에는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와 여인 다마리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죄 용서와 영생을 얻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구주이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생각하기]

바울은 헬라 시민들 앞에서 설교했습니다. 특히 바울은 아테네 사람들 가운데 종교적인 열망이 높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가지고 있던 철학을 사용하여, 참되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설교했습니다. 비록, 바울이 아테네 사람들의 철학과 그들의 언어를 사용했지만, 바울은 그들의 종교적 신념(종교 다원주의)과 관행을 명백히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신을 위한 신전을 버리고, 제사를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바울의 태도는 종교 다원주의로 물들었던 헬라 사회에서 매우 위험할 수 있었지만, 바울은 성경에서 증언하는 명백한 사실을 말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가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세계관은 우리의 현재뿐 아니라 영원을 결정짓는 중요한 “기준”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세상은 기준을 잃어버렸습니다. 특별히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세상에는 기준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신은 죽었고, 인간의 자아와 지식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선(善)이라고 규정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사회의 선이 될 수 있습니다.

세상은 여전히 하나님의 능력과 위대하심을 보여 주시만, 죄가 들어온 이후, 우리의 눈은 어두어져 세상을 바로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안경’이 필요한데, 종교개혁자 존 칼빈은 ‘성경’이야말로 “우리의 눈을 교정해 주는 안경”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이라는 안경을 쓸 때, 우리는 비로소 세상을 ‘바른’ 눈으로 보게 됩니다.

성경은, 세상을 창조하신 유일하신 하나님이 계시다고 선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을 창조하시고 또한 다스리시는 유일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피조물로서,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갑니다. 비록 죄로 인하여 우리는 타락하였고 세상은 아무런 의미와 소망이 없는 곳이 되어 버렸지만, 하나님은 자기 아들의 피를 흘려 모든 죄를 도말하고, 세상을 회복시키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원한 아버지가 되셔서 자기 백성을 보호하시고 지키십니다. 또 하나님은 마지막 날, 반드시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날에 모든 사람은 부활할 것이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만이 영원한 나라에 거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가지고 이 땅에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그 순간이 올 때까지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은 더 부지런하고 적극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의 일을 행하고,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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